제목 :	되살아나는 고대문서
이름 :	최영창(문화) Read: 16   Date: 2011.02.15
칠지문서를 보면 古代 역사가 보인다 국립나주문화재硏, ‘되살아나는 고대문서…’ 출간 지난 1981년 일본 이와테(岩手)현 오슈(奧州)시에 있는 고대 성책 유적인 이사와조아토(胆澤城跡) 정청(政廳) 북동의 관청지구 발굴조사에서 원형의 종이 앞뒤에 달력이 적힌 ‘칠지문서(漆紙文書)’가 발견됐다. 칠지문서란 원래 고대 일본의 옻칠공방에서 옻칠 용기의 종이 덮개로 사용된 휴지를 말한다. 고대 일본에서 종이는 귀중품이었기 때문에 폐기된 관아의 공문서를 원형 옻칠 용기의 종이 덮개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옻칠 작업을 할 때 버려진 종이 덮개에는 옻칠이 스며들어 코팅되면서 지하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썩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칠지문서는 ‘지하의 쇼쇼인(正倉院)문서’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적외선 텔레비전 카메라로 판독한 결과, 이 칠지문서의 앞뒷면에서 총 124문자, 각각 5일분의 달력이 확인됐는데 앞면은 엔랴쿠(延曆) 22년(803) 4월 하순, 뒷면은 엔랴쿠 23년(804) 9월 하순 달력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관심을 끈 것이 바로 803년 4월의 달력 중에 나오는 ‘해/목욕(亥/沐浴), 축/제수갑(丑/除手甲)’이란 기록이었다. 말 그대로 해일(7일)에 목욕하고 축일(9일)에 손의 갑(甲·손톱)을 깎을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다. 당시 달력은 구추레키(具注曆)라고 불리는 것으로 날짜와 간지, 절기 외에도 길흉화복 등의 역주(曆注)가 기록된 것이 특징이었는데, 고대 일본 귀족들은 손톱을 깎는 일에도 날을 가렸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헤이안(平安)시대 우대신(右大臣)을 지낸 권력자였던 후지와라노 모로스케(藤原師輔·908~960)가 자손을 위해 써서 남긴 유훈(遺訓)인 ‘구조전유계(九條殿遺誡)’에도 “3일에 한 번 머리를 빗고 축일에는 손톱, 인일(寅日)에는 발톱을 깎는 것이 좋으며 목욕은 날을 가려 하되 5일에 한 번 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지난 2008년 나주 복암리 유적에서 백제 지방 목간을 발굴해 주목을 받았던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연웅)가 일본에서 목간(木簡)과 함께 출토되는 고대 문자자료인 칠지문서를 소개하는 ‘되살아나는 고대문서-칠지문서가 전해준 고대의 세계’(주류성출판사·사진)를 최근 펴냈다. 목간 연구의 권위자이자 칠지문서 연구의 제일인자인 히라카와 미나미(平川南)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장이 1994년 이와나미 신쇼(岩波新書)로 출간한 책을 김성범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장(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과 하시모토 시게루(橋本繁) 일본 학술진흥재단 특별연구원, 이은선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등이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사실 히라카와 관장하면 국내에서는 목간 연구의 권위자로만 알려졌을 뿐 그가 칠지문서 연구의 개척자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칠지문서는 히라카와 관장이 1970년 고대 일본에서 동북지방을 지배하는 행정·군사의 중심지였던 미야기(宮城縣)현 다가조(多賀城)시 다가조터 조사연구소의 일원으로 발굴조사에 참여했을 때 처음 발견했으나 당시는 성격을 몰라 ‘가죽제품’으로 분류했던 유물이다. 사방 30㎝ 이상 지면에 달라붙어 있는 가죽과 같은 유물이 옻칠 용기의 종이 덮개로 쓰였던 칠지문서임을 알아내고 해독 성과를 공표한 것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78년의 일이었다. 이후 곳곳에서 칠지문서가 보고되면서 지금까지 일본 전역의 100군데 달하는 유적에서 검출됐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히라카와 관장의 저서를 번역한 것은 국내에서도 칠지문서가 출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히라카와 관장은 한국어판에 붙인 저자 서문에서 “고대에 칠을 다양하게 사용한 한국에서도 고대 호적 등의 여러 장부와 달력, 편지, 토지매매문서 등 고대 종이에 적힌 문서가 칠의 힘에 의해 한국 내 각지의 땅속에 다수 묻혀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 고고학자도 발굴할 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칠지문서가 검출되는 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칠지문서 가운데는 백제 성명왕(聖明王·성왕)의 5대손으로 쇼무(聖武)천황에게 중용돼 무쓰노카미(陸奧守)로서 749년 도다이지(東大寺) 대불(大佛) 도금을 위해 황금 700량을 헌상한 ‘백제왕경복(百濟王敬福)’의 이름도 나오며 8세기 후반 고대 일본의 인구(국가장악인구)를 540만~590만명으로 추정·계산할 수 있는 문서 등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많다. 히라카와 관장은 책에서 자신의 발굴 경험과 연구 성과를 토대로 호적·계장(計帳·인구 변동을 알기 위해 매년 만드는, 공민을 파악하는 기초대장)과 달력 이외에도 ‘고문효경(古文孝經)’ 등 교과서나 병사명부, 결근부 등 고대 학제 및 병제와 관련된 칠지문서가 가진 의미와 중요성을 실감있게 소개하고 있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