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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국보 제135호 신윤복의 '혜원풍속도(蕙園風俗圖)'와 보물 제527호 '김홍도필 풍속도 ...
 


김홍도 신윤복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화첩의 대표작이다.

보름달이 훤하게 뜬 밤, 인적이 없는 담벼락 아래서 젊은 연인이 만났다. 어찌나 애절했던지 얼굴을 맞대고 꼬옥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남의 눈에 띌까, 안절부절 하는 듯도 하다. 그 모습을 조금은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여인의 표정도 묘하다. 이들을 안타까워 하는 건지, 부러워하는 건지, 질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은은하고도 야릇한 분위기에 눈길이 절로 가는 작품이다. ‘남녀상열지사’였던 조선 시대라 할지라도, 남녀 사이에 불꽃 튀는 사랑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좀 더 자유로워진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그림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국보 제135호 신윤복의 '혜원풍속도(蕙園風俗圖)'



조선 후기 화가 신윤복(申潤福)이 그린 풍속 화첩. 종이 바탕에 담채. 세로 28.2㎝, 가로 35.2㎝.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 소장.

 

혜원(蕙園)은 화원 신윤복(申潤福)의 아호이다. 그의 자(字)는 입부(笠夫), 고령신씨(高靈申氏)였으며 그의 부(父) 또한 정조왕(正祖王)의 어용화사(御用畵師)이던 신한평(申漢枰)이었으므로 그 가업을 이어 화원이 되었다. 혜원(蕙園)의 생사년(生死年)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대체로 늦은 18세기(世紀)부터 이른 19세기(世紀) 무렵에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와 더불어 활동한 작가였다. 다만 김홍도(金弘道)보다 혜원(蕙園)이 약간 후배였음은 그의 부(父) 신한평(申漢枰)이 김홍도(金弘道)와 더불어 정조왕(正祖王)의 어진(御眞)을 그렸다는 『정조실록(正祖實錄)』의 기사(記事)로써 짐작이 된다. 

원래 혜원(蕙園)은 틀잡힌 산수화가로서도 주목받을 만한 필격을 드러낸 사람이었으나 김홍도(金弘道)와 더불어 그 당시(當時) 이른바 속화를 개척해서 오늘날 그는 풍속화가로서 그 업적을 더 평가받게 되었다. 그의 풍속화는 주로 서민사회의 생태 특히 풍류 남아들과 기녀, 주인과 여비(女婢), 양가의 부녀와 승려에 이르는 넓은 분야에 걸친 조선인(朝鮮人)들의 사랑과 색정(色情)의 생태를 그리기에 매우 재분(材分)을 발휘한 작가였다.


이 화첩은 그러한 내용은 30면(面)에 나누어 그린 작품으로서 이제까지 알려진 혜원(蕙園)의 대표적인 연작 풍속화첩이며 따라서 그의 이 부문 작품 중에서는 가장 화의(畵意)와 그 기법이 세련되어 있다. 이 작품은 미술작품으로서뿐만 아니라 당시의 적나라(赤裸裸)한 사회상의 일면과 풍부한 민속을 사실한 희귀한 자료로서도 그 의의가 적지 않다.

당시의 사회적 배경은 천주교(天主敎)를 타고 침투(浸透)한 서양의 과학기술이 서울 학계에 자극(刺戟)을 주어 실사구시를 표방하는 실학파의 학문이 대두(擡頭)될 무렵이었으며 아울러 국문으로 이루어지는 서민문학이 일어나는 등 스스로 서민을 의식하는 시대였다. 따라서 이러한 서민의 생태 즉 속세간사를 주제로 한 풍속화의 개척은 그러한 일련의 문화운동(文化運動)의 일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화첩은 언제 일본으로 유출되었었는지 그 경위는 알 수 없지만 1930년대(代)까지 일본 오사카시(大阪市)에 있는 고미술상 산중상회(山中商會)의 소유이었으나 고(故) 간송 전형필씨(全鎣弼氏)가 이것을 다시 사들여온 것이다. 원래의 표장(表裝)은 어떠했는지 알 수 없으나 전형필씨(全鎣弼氏)의 소장이 된 후 새로이 제첩(製帖)하면서 첩미(帖尾)에 위창 오세창(吳世昌)의 제발(題拔)을 첨가했으며 원첩의 것으로 보이는 행서체로 된 '혜원전신(蕙園傳神)'이라는 제첨(題簽)이 붙어 있다.

 

강희언(姜熙彦)과 김홍도 풍속화의 성향을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고, 명 말기와 청대 연정소설의 삽화나 일본 에도[江戶]시대 우키요에[浮世繪]와 유사한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제재와 필묵법, 설채법, 인물 표현 등에서 신윤복의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화풍은 조선 말기의 유운홍(劉運弘)과 유숙(劉淑) 등을 거쳐 1930년대 이용우(李用雨)의 인물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혜원 전신첩 中 ‘단오풍정’



누구나 한번쯤 봤을 법한, 역시 유명한 혜원의 작품이다. 큰 명절의 하나였던 단옷날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그네 타기, 머리 감기 같은 단옷날 풍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데, 그냥 풍습만 그려져 있었다면 그저 그런 ‘기록화’였을 텐데, 혜원은 유머와 위트까지 그림에 담았다.

치마를 훌렁 걷고 그네에 오르는 여인, 웃옷을 다 벗어놓고 개울에 몸을 씻는 여인들, 아마도 남자들의 눈에 띠지 않는, 여인들만 아는 ‘금남’의 장소였을 것이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여인들의 태도가 그걸 말해준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시선이 있다. 바로 바위 틈 사이다. 호기심 가득한 까까머리 동자승들이 숨어 키득대며 훔쳐보고 있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단오를 즐기는 새초롬한 여인들의 표정과, 눈의 호사를 누리고 있는 동자승들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참 재밌다
.


‘월하정인(月下情人)

국내외 어느 작가의 그림 속에도 월하정인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모양의 달이 그려져 있지 않다. 때문에 월하정인에 그려진 달은 초승달이 잘못 그려진 것으로 여겨져 왔다. 신윤복은 왜 저런 모양의 달을 그렸을까? 만약 신윤복이 그림 속의 달을 실제로 보고 그렸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과연 저런 모양의 달이 보일 수 있을까?

그림 속에 쓰인 글에는 그림을 그린 시간대가 야 3경으로 나온다. 이것은 자시(子時)로 밤 12시를 전후한 시간이다. 월식이 일어나는 날은 보름달이 뜨는 날로, 자시 무렵에는 달이 가장 높이 뜬다. 처마 근처에 달이 보이는 것은 보름달의 남중고도가 낮다는 것이다. 즉 여름을 말한다. 보름달은 태양의 반대쪽에 있기 때문에 겨울에는 남중고도가 높고 여름에는 낮다.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과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사진=간송미술관


김홍도와 신윤복의 실제 삶은 어떠했을까? 사제지간이자 연인으로 그려지는 '바람의 화원'과 달리 실제 두 사람이 교류한 흔적은 역사적으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두 화원 가문 출신으로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김홍도는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반면, 신윤복은 당대 실력을 인정받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이고, 역사적 기록도 찾아보기 힘들어요.

특히 아쉬운 것은 정조가 승하한 이후 김홍도는 극히 어려운 생활을 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신윤복의 말년에 관한 기록을 찾지 못 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김홍도 '풍속도화첩'이 보물로 지정됐으나 신윤복의 '혜원풍속도'가 왜 국보

지정됐는지 스스로 평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운영자> 


보물  제527호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金弘道筆 風俗圖 畵帖)'

김홍도필(金弘道筆) <풍속도 화첩(風俗圖 畵帖)>은 조선 후기의 화가인 김홍도가 그린 그림책 형태의 풍속화 25점이다. 단원 김홍도(1745∼?)는 신선그림이나 초상화, 산수화 등 다양한 주제로 그림을 그렸지만, 풍속화가로 더 유명하다.

풍속화는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을 하여 그렸는데, 각 장의 크기는 가로 22.4㎝, 세로 26.6㎝ 정도이다. <씨름>, <대장간>, <글방> 등과 같이 서민사회의 일상생활 모습과 생업에 종사하는 모습이 구수하고도 익살스럽게 표현된 그림들이 실려 있다. 풍속화의 대부분은 주변의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을 중심으로 그렸는데, 특히 인물은 웃음 띤 둥근 얼굴을 많이 그려 익살스러움을 한층 더하였다. 선이 굵고 힘찬 붓질과 짜임새있는 구도는 화면에 생동감이 넘치게 하는 한편 서민들의 생활감정과 한국적인 웃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풍속화들은 활기차게 돌아가는 서민들의 일상생활의 사실성과 사회성을 그 생명으로 삼았고, 또한 서민의 일상생활을 주제로 한 것이어서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자리짜기 - 방안에서 자리를 짜고 있는 남편과 물레를 돌려 실을 잣는 아내, 그 뒤편에서 책을 펴놓고 글자를 막대기로 짚어가며 글을 읽는 떠꺼머리 아들의 모습이다.

양반집의 풍경은 아닌데도 당시 18세기 후반의 조선시대 후기의 사회 변화가 느껴진다.

비록 고된 노동임에도 아들의 글 읽는 소리에 피곤함을 잊은 듯, 부부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비치며 서민 가정의 희망을 읽을 수 있다.

자리를 짜는 사람은 사방관을 쓰고 있다. 사방관은 양반이 아니면 쓰지 못한다.

그런데 양반이 웬일로 노동을 하고 있는가.

조선 후기로 오면서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양반이 속출하였다. 대부분의 양반은 육체적 노동을 기피하였지만 이 그림에서 보듯 일하는 양반도 있다. 당연히 이 자리는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자리를 짜는 데 생계가 달려 있을 것이다.

 

 

 

벼타작 - 농부들이 볏단을 통나무에 내리 치며 타작하는 모습은 노동의 피로함보다 신명이 더 난다.

갓을 비껴쓰고 담뱃대를 물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양반의 모습은 그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림감상 - 선생님인지 아니면 그림의 주인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수염을 기른 나이 든 사람이 그림을 들고 있고, 여러 사람이 주위에 둥그렇게 둘러서서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부채로 입을 가리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그림 설명을 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림을 볼 때는 항시 입을 가리고 이야기를 하여야 침이 튀지 않아 그림에 손상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 감상〉에는 그림 볼 때의 예절까지도 세밀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길쌈 - 옛날 여인의 한이 서려있는 길쌈짜기다.          

           위에는 날실에 풀을 먹이고 아래는 베틀에서 바디를 잡고 북질을 하면서 베를 짜는데 뒤에서 시어머니로 보이는 노인이

           손자를 데리고 지켜보고 서 있다.

           자리짜기와 마찬가지로 길삼 역시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광경이었다.

 

 

 

편자박기 - 말굽에 징을 박고 있다.

 

 

고기잡이 - 어살위로 갈매기가 날아오른다. 어선 두 척이 고기잡이에 분주하다.

어살속의 두 사람은 생선을 담은 광주리를 너머에 있는 동료에게 넘긴다. 생선광주리를 받는 사나이는 미소가 환한 가운데 뒤쪽에서 쪼그리고 앉아 담뱃대를 물고 있는 어부는 삼매경에 빠졌다. 고기 담을 독이 두개 놓여 있고 사공은 양손으로 노를 꽉 잡고 배가 움직이지 못하게 용을 쓰고 있다.

앞쪽의 배는 아궁이에 솥이 두 개나 걸렸다. 어탕을 끓이는지 꽁무니에 앉은 아이는 불을 지피고 독 옆의 사내는 구수한 냄새에 어서 음식이 다 되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맨 앞의 어부는 생선 두 마리를 들고 신명이 났다.

맨 앞의 배는 고기잡이를 마치고 육지로 들어가는 듯 하다. 햇살을 가리기 위해 짚으로 엮은 가리개로 배를 덮었다. 노를 쥔 사공은 두 배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재미있는지 아니면 부러운지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마도 먼저 가네. 수고하세나...     

 

 

신행 - 초례를 치르러 신부 집으로 향하는 신랑의 행렬.

          청사초롱을 앞세우고 오리아범이 매우 조심스럽게 전안을 받쳐 들고 가고 있다.

 

 

 

점심 - 농부의 아내가 광주리에 밥과 반찬을 가지고와서 일꾼이 점심을 먹는 장면이다.

큰 사발에 숟갈로 밥을 먹으며 작은 사발에 생선도 보인다. 상투를 하지 않은 총각은 술항아리로 술을 따라주고 한 사람은 술을 마시고 한 사람은 큰 바가지로 물을 먹고 있다.

농부의 아내는 어린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그의 아들은 큰 그릇에 밥을 먹고 있는데 배가 유난히 부르게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장터길 - 물건을 다 팔고 돌아가는 길인 듯 하다.

말을 타고 가는 사람들은 장사가 잘 되어 신이 났는지 서로 떠들며 담배도 나눠 피워가며 한가롭고 흥청거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말을 거꾸로 타고 가는 사람들도 있어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한층 더 띄워주고 있다.

그림의 오른쪽에서부터 세 무리로 나누어 각각 4명, 3명, 2명의 구도로 점점 줄어들게 배치하여 운동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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