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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월미도의 두 얼굴' |
이 프로그램은 2015년 1월 30일 KBS 1 TV '열린채널'을 통해
방송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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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 '화각장 이재만 인간문화재'의 풀 스토리
황소 뿔의 놀라운 변신 |
이 프로그램은 2015년 12월 4일 KBS 1 TV '열린채널'을 통해 방송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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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예능보유자 없는 구례잔수농악의 위기' |
이 프로그램은 2017년 2월 17일 KBS 1 TV를 통해 방송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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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고향을 빼앗긴 월미도 원주민의 눈물' |
이 프로그램은 2017년 12월 15일 KBS 1 TV '열린채널'에 방송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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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문화재에 미쳤다, 나 홀로 방송국 1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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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09 03:00 |

▲ '문화재방송 한국' 김종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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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방송국 ‘문화재방송 한국’을 10년간 운영해온 김종문씨가 그동안 사용한 카메라들 뒤에 서 있다. “문화재에 미친 노인이지만 말년을 보람 있게 산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 김지호 기자
기획부터 촬영, 음악, 편집, 내레이션까지 전부 혼자 한다. 김종문(80)씨는 걸어 다니는 1인 방송국이다. 문화재만 다루는 '문화재방송 한국'(www.tntv.kr)의 사장 겸 직원. 일흔 살이던 2008년부터 이 일을 10년간 해왔다. 그는 자신을 '문화재에 미친 노인'이라고 소개했다.
"문화재에는 민족의 얼과 혼이 스며 있잖아요. 세계화와 다문화에 떠밀려 우리 문화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2007년 말 남인천방송국에서 은퇴하기 전부터 1인 방송을 구상했어요."
명함엔 '영상기자(VJ) 김종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퇴직금으로 카메라를 비롯한 방송 장비와 녹음실부터 마련했다. 문화재 현장을 누비며 '유네스코 무형유산 영산재'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봉산탈춤' '줄타기 명인 김대균' 등 25분 분량의 동영상 200여 편을 만들었다. 공중파나 실버TV, 복지TV 같은 케이블 방송국에 이 프로그램을 판매한다. 홈페이지에 올린 자료는 무료로 퍼갈 수 있다. 팔순의 VJ는 "보존 가치가 있는 옛것을 지키고 알리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인천 월미도에서 그를 만났다.
1인 방송국은 절간처럼 고요했다. 한 명 들어가면 꽉 차는 녹음실 앞에 카메라와 삼각대가 여럿 놓여 있었다. "아날로그 시대부터 디지털 시대까지 그동안 나를 도와준 자식들"이라고 그는 말했다.
―1인 5역을 하십니다.
"녹음이 가장 힘들어요. 한여름에 비좁은 녹음실에 들어가 내레이션을 할 때면 숨이 막히고 땀범벅이 돼요. 목소리가 늘 맑은 것도 아녜요. 날씨처럼 오락가락하죠. 컴퓨터와 씨름해야 하는 편집도 어려워요."
―이 일을 10년 한 감회라면.
"2009년에 강화도에서 신미양요(1871년)를 재현하는 행사가 있었어요. 촬영 갔다가 비탈길에서 넘어졌는데 삼각대가 척추를 치는 바람에 허리를 다쳤습니다. 그 후론 촬영하려면 진통제를 먹어야 해요. 그래도 이 나이에 몰두할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지요."
―이만큼 오기까지 과정이 궁금합니다.
"전주KBS에서 기자와 앵커로 일하다 1989년부터 미국·일본으로 '뉴미디어' 연수를 3년 다녀왔어요. 우리나라가 지방자치제 실시를 앞둔 때였지요. 미국의 1인 미디어와 일본의 지역 케이블TV에 매료됐습니다. 쉽게 말해 비디오 저널리즘인데, 배우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지요."
―은퇴 전 어떻게 준비했나요?
"제가 마지막엔 남인천방송국 부사장을 지냈어요. 이북에서 내려온 문화재는 대부분 인천에 주저앉았습니다. 1인 제작 시스템을 써먹고 싶어 안달이 났지요. 직접 캠코더 메고 현장으로 달려가 '인천의 숨결'이라는 20분짜리 문화재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격주로 3년을 했습니다."
―고령에 몸도 불편하신데 방송국을 어떻게 꾸려가나요.
"가벼운 장비를 쓰고 한 달에 두 편 정도 제작해요. 지금은 강릉 단오제 영상을 편집 중이에요. 그런 프로그램을 방송국에 판매하면 1분당 4만원을 받아요. 그 수입으론 어림없지요. 연금 생활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방 갈 땐 30% 할인받는 무궁화호 기차를 타요(웃음)."
―현장에서 애로 사항도 있을 텐데요.
"최소 한 시간, 길게는 네 시간쯤 촬영해요. 서해안 풍어제는 꼬박 이틀 걸리고요. 장시간 촬영할 땐 생리 현상을 참아야 해 괴롭습니다."
―보람도 있겠지요.
"문화재를 촬영하면 출연자들과 막걸리를 한 잔씩 하고 금방 친구가 돼요. 그렇게 제작한 영상이 선정돼 방송될 때 보람을 느낍니다. 출연자들이 '잘 봤다'고 연락해오면 기분이 더 좋아요. '방송 불가 판정' 받을 땐 울고 싶고요."
그는 가족을 떠나온 지 10년이 넘었다고 고백했다. "집과 땅을 아내에게 증여하고 나오면서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오늘로 죽었다. 찾지 마라' 했다"며 "그렇게 미치지 않고는 이 일에 전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10년간 집에 안 들어갔다고요?
"네. 2014년 전주에 국립무형유산원이 문을 열었어요. 집이 바로 근처에 있는데 눈에 띌까 봐, 붙잡힐까 봐 못 갔죠. '축 문화융성'이라고 쓴 화환만 보냈습니다."
―아무리 문화재가 좋아도 그렇지, 이해가 안 됩니다.
"출가(出家)하는 심정으로 나왔는데 제가 나쁜 놈이죠. 저라고 왜 손주들이 보고 싶지 않겠어요. 가족도 친구도 버렸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어떤 이익을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잖아요. 이것만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요."
―우리 문화재 분야의 문제점을 짚어주신다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상스러운 이야기가 나오는 무형문화재가 여럿 있어요. 해학과 풍자를 넘어 외설과 욕설, 인신매매가 난무하죠. 조상을 욕되게 하는 일 아닙니까. 탈놀이 중에 다른 지역엔 없는데 경상도 오광대에만 '문둥이'가 등장하는 것도 이상하고요."
―원형 보존의 필요성도 있을 텐데요.
"원형은 원형대로 보존하되 공연하거나 교육할 땐 용어를 순화시키는 방법도 고민해야지요."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재는 무엇인가요?
"강릉관노가면극이에요. 연기자가 모두 관노(官奴)였지요. 한국의 가면극 중 유일한 무언극이고, 춤과 몸 짓으로만 놀이를 구성합니다. 볼 때마다 눈물이 날 만큼 감동을 받아요."
―남은 목표라면.
"조선시대에 지은 돈대(墩臺)가 강화도에 54개 있는데 허물어진 채 방치된 게 많아요. 민통선 안에 있는 돈대까지 국방부 협조받아 촬영할 생각입니다. 복원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해야 한다는 방송을 하고 싶어요. 재미없으면 이 일 못해요. 몸이 허락하는 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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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ESSAY] 日 벚꽃 외교에 맞선 이승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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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20 03:10 |

▲ 김종문 문화재방송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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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진해군항제와 비슷한 시기에 세계 외교 1번지인 미국 워싱턴DC에서도 벚꽃 축제가 열린다. 포토맥 강변을 따라 만개한 벚꽃을 즐기기 위해 전 세계에서 100만 명 이상이 찾는다고 한다. 이곳 벚꽃 거리는 1912년 미국과 일본 우호의 상징으로 당시 도쿄시장이던 오자키 유키오가 3000여 그루의 벚나무를 기증하면서 조성됐다. 매년 열리는 축제에는 일본 문화 행사가 열리는 등 일본을 홍보하는 거대한 문화 상품이 되었다.
일본의 벚나무 기증은 일제(日帝)의 조선 강점 도화선이 된 미·일 간 '가쓰라-태프트 협약' 이후 양국이 가까워진 것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워싱턴 벚꽃 축제의 이면에는 이 협약을 통해 한국의 보호권을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고, 벚꽃을 미·일 친선 외교에 이용한 두 얼굴의 일본이 숨어 있는 것이다.
당초 이곳의 벚꽃은 일본이 주산지로 알려져 '재패니스 체리 트리(Japanese Cherry Tree)'라고 불렸는데, 사실은 한국이 원산지라는 것을 알린 이가 이승만이다. 사연은 이렇다.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자 미국에서는 벚나무들을 베어버리자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미국에 망명 중인 이승만은 자신이 설립한 한미협회를 통해 미국 정부에 "저 재패니스 체리의 원산지는 한국의 제주도와 울릉도이며, 삼국시대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니 이름을 코리안 체리(Korean Cherry)로 불러달라"고 요청하고 벌목을 막았다. 미 의회도서관에서 일본 백과사전을 뒤져 일본의 왕벚꽃이 한국에서 전래되었다는 내용을 찾아내 미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미 정부는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승만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대신 '오리엔탈 체리(Oriental Cherry)'라는 중립적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이승만이 실망하자 한국에서 선교사 활동을 했던 폴 더글러스 아메리칸대 총장이 "그럼 우리 학교에 한국 벚나무를 심자"고 제의했다. 이승만은 1943년 4월 8일 워싱턴DC 아메리칸대 교정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24주년을 기념하는 제주 왕벚나무 심기 행사를 열었다. 미국의 일간지 아메리칸 이글(THE AMERICAN EAGLE)은 같은 해 4월 13일 자에 "일본산으로 잘못 알려진 워싱턴의 벚나무들에 진짜 이름을 찾아주기 위해 이승만 박사 등이 한국 벚나무 네 그루를 심었다"고 보도했다. 표석에는 '이승만 박사가 한국 독립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담아 식수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날 제주 왕벚나무 식수는 30여년 동안 일본 이름으로 불려온 우리 벚나무의 또 다른 '독립선언'이었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의 김찬수 박사는 지난 2008년 워싱턴을 방문해 포토맥 강변의 벚나무 표본을 채취해 수차례 유전자(DNA) 검사를 한 결과, 제주산 왕벚나무와 같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승만이 독립을 염 원하며 심은 벚꽃나무는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했고, 이것이 인연이 돼 2011년에는 아메리칸대 교정에 '한국정원'이 들어섰다.
100여년 전 일본은 벚꽃을 미·일 간 친선의 상징으로 삼으려 했고, 이승만은 한국 벚나무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면서 민족의 염원을 담아 벚나무를 심었다. 워싱턴 벚나무의 우리 이름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것은 또 다른 독립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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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땅엔 나무를, 바다엔 해조류를 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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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04 03:08 |

▲ 김종문 문화재방송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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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은 여섯 번째 맞는 '바다 식목일'이다. 정부가 2012년 국가 기념일로 정했다. 바닷속 생태계의 중요성과 갯녹음(해조류가 죽으면서 정착 생물이 사라지는 등 불모로 전락하는 것) 등 황폐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국민적 관심 속에서 바다 숲이 조성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육상에서 나무를 심듯 바다에 해조류를 심는 날'이다.
근래 세계적으로 해조류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해조류가 온실가스 흡수는 물론 단백질 식품, 의약품 제조, 무공해 연료 등 인류의 과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해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바이오 에너지를 생산한다. 2012년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연안 해조류가 ㎢당 연간 8만3000t의 탄소를 흡수, 육지 숲의 3만t을 크게 앞질렀다.
이주영 가톨릭대 교수는 해조류인 감태에서 추출한 '다이에콜'을 활용해 아토피 피부염을 치료할 수 있음을 알아냈다. 박대훈 동신대 교수 등은 해조류에서 천식 억제 물질을 찾아내기도 했다. 유종수 국립해양생물자원관 해양바이오연구본부장은 "해조류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온실가스, 식량, 질병 등 인류의 난제들을 해결하는 마스터 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내 연안에서는 해조류가 사라지는 갯녹음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바닷속 해조류가 자취를 감추면서 바위가 하얗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이 2014년부터 2년간 동해와 남해 연안의 갯녹음 실태를 조사한 결과 동해의 경우 전체 암반 지역 1만7054㏊ 중 62%에서 갯녹음이 심하게 발생했거나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김남길 경상대 해양생명과학부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성게처럼 해조류를 먹는 초식동물이 크게 증가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관할 해양 면적은 44만 3000㎢로 남한 육지 면적의 4배가 넘는다 . 무한한 자원 보고인 바다를 누가 잘 활용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도 바다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해양수산부와 수산자원관리공단은 2009년부터 2030년까지 서울시 면적에 가까운 크기의 바다 숲 조성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올해도 지난 21일부터 제주에서 열리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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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발언대] 11월 11일 11시, 1분간 묵념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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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6.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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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입력 : 2016.11.10 03:10

▲ 김종문 문화재방송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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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1월 11일이면 '빼빼로데이'라며 마치 명절이나 되는 듯 젊은이들이 들뜬다. 이날 21개국 사람들이 한국을 향해 1분 동안 고개 숙여 묵념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왜 이렇게 여러 나라에서 한국을 향해 묵념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이 탄생하기까지는 숱한 순국선열의 피 이외에도 많은 이의 희생이 있었다. 미국·캐나다·영국 등 21개국 젊은이 195만7616명이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대한민국이 백척간두 위기에 처했을 때 한국으로 달려왔다. 그중 무려 3만5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10만명 넘게 부상했다. 이름조차 처음 듣는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이들이 아낌없이 젊음을 바쳤기에 오늘과 같은 자유 대한이 존립할 수 있었다. 물론 무수한 우리 국군 용사의 희생이 더 큰 힘이 됐지만 말이다.
당시 희생된 외국 병사들이 부산시 남구 'UN기념공원'에 잠들어 있다. 휴전협정이 조인될 무렵에는 1만여 위(位)였으나 차츰 본국으로 이장해 가 지금은 2300여 위가 남았다. 'UN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UN군 묘지이자, UN에서 지정한 유일의 성지(聖地)이다. 캐나다의 6·25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87)씨는 1951년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연합 3개 대대가, 밀려 내려오는 중공군을 막아낸 '가평전투'에 참전했던 사람이다. 그가 2007년 매년 11월 11일을 기해 전 세계의 6·25 참전 군인과 유족들에게 '부산을 향하여 1분간 묵념하자'고 제안했다.
나라마다 시차가 있는 점을 감안해 부산 시각에 맞추기로 했고, 그해 11월 11일 밤 9시 캐나다 오타와에서 참전 군인 100여 명이 모여 머리를 숙였다. 이렇게 첫해 4개 나라가 참여했고, 2012년부터는 미국도 동참하고 있다.
11일(금) 오전 11시에도 세계인이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묵 념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행사가 대규모로 열린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부산 전역에서 사이렌을 울려 산화한 참전용사들의 헌신을 기린다. 그 어느 때보다 나라가 어지러운 이 시점에 온 국민이 하나 되어 그날 그 시각에 부산 쪽을 향해 고개 숙이고 대한민국의 국운 융성과 UN군 전사자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올리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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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생각해 봅시다] 6·25 참전 소년병들도 국가유공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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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5.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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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입력 : 2015.06.19 03:00

▲ 김종문 문화재방송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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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로 대한민국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하자 당시 중학생이던 18세 미만의 미성년 학생들까지 펜 대신 총을 잡았다. 7월 25일, 대전·광주·순천에서 입대한 학생들로 편성된 국군 제5사단 제15연대는 경남 하동군 화개교를 건너려던 북한군의 남하를 며칠간 지연시켰다. 8월 11일 포항여중에 포진한 학생 71명은 북한군 유격부대와 11시간 동안 네 차례나 혈전을 벌여 그중 48명의 학생이 전사했다.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도 많은 소년병이 참전했다.
특히 500여명의 학생만으로 편성된 제1사단 수색 대대의 활동은 눈부셨다. 인천상륙작전 이틀 전인 9월 13일, 교복 차림의 학생 772명이 경북 영도 장사해안 상륙작전을 전개했다. 이 위장 상륙작전에서 139명 전사, 92명 부상, 수십 명이 실종됐지만 북한군의 발을 묶어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
12월 18일 인천의 애국 청소년 3000여명이 축현초등학교 교정에서 발대식을 갖고 악천후 속에서 육군본부가 있는 대구로 도보 행진을 했다. 이 과정에서 1000여명은 실종되거나 귀가하고, 1300여명은 육군으로, 600여명은 해병대로 입대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자 정부는 학생 전원을 귀가시켜 학업을 이어가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일선 부대에서는 지시를 무시하고 계속 군인으로 복무하도록 했다. 소년병들이 고참순으로 제대한 것은 휴전협정 체결 후 5년이 지나서였다. 집에 돌아왔지만 배움의 기회를 놓쳐 생계가 막막했다. 반면 재일학도의용군은 법정 단체로 인정받아 국가에서 취업도 시켜주고 매월 생활보조금도 받았다. 더구나 정부는 미성년 참전 학생들을 현역병과 똑같이 '6·25참전유공자회' 소속으로 묶어버렸다.
6·25 참전 미성년 학생들은 억울하다는 탄원서를 정부 요로에 수없이 전달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2012년 7월, 10명의 국회의원이 6·25 참전 미성년 학도병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나 지금까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소년병들은 80이 훌쩍 넘어 상당수가 저세상으로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죽기 전에 '재일학도의용군'처럼 법정 단체로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또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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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발언대] '전통문화산업 진흥법' 제정 급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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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2.0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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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입력 : 2012.06.17 22:16

▲ 김종문 문화재방송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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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총강 제9조의 내용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전통문화가 미래 산업의 최후 승부처"라고 전망했다. 한마디로 21세기는 경제강국과 문화강국의 각축장이 될 것이다. 한국이 경제강국 일본과 중국을 압도할 수 있는 지름길은 '화각공예'와 같은 우리만의 전통공예품을 특화시켜 문화강국이 돼야 한다. 특히 전통문화산업은 관광산업과 연계된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전통문화 계승·발전'의 헌법 정신이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길을 잃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일본은 1975년 '전통공예품 산업진흥법'을 제정했다. 통산성은 매년 11월 대규모로 '전통공예품의 달' 행사를 열어 전통공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있다. 일본 전역엔 크고 작은 전통공예촌이 40여곳, 전통공예기술연구소가 230여개나 된다. '비물질 문화유산법'을 새로 제정한 중국은 '국가 브랜드화 전략'으로 전통공예산업 육성에 나섰다. 미국 연방기관 국립예술진흥기금(NEA), 영국 공예진흥원 등이 전통문화상품 개발에 주력한다.
우리는 어떤가? 벼루장 등 5개 분야는 전통기법이 사라져 아예 문화재 명단에서 삭제됐고, 소반장 등 12개 분야는 기능보유자가 없어 전통기능이 멸실될 위기이다. 기능장의 고령화가 심각하고, 젊은 후계자는 절대 부족하다. 훌륭한 공예품을 만들어도 팔 길이 없어 생계가 막막한 탓이다. 기능장에 못지않은 훌륭한 전통공예기능을 지닌 무명의 장인들은 소리없이 죽어가고 있다. 변변한 전통공예관, 전통공예촌, 전통공예기술연구소도 없다 심지어 여수세계박람회장에도 한국 전통공예품 전시공간은 없다.
2006년 박찬숙 의원이 '전통공예산업진흥법안'을, 2010년 황우여 의원이 '전통문화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상정했으나 사장되고 말았다. 19대 국회는 헌법정신에 입각해 전통문화의 산업화로 한국이 문화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법안을 조속히 제정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