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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왕조국가의 퍼레이드, 행행幸行
글쓴이 tntv 등록일 [2011.01.11]





행행의 범위와 과정

조선시대 국왕의 행차는 행행이라고 한다. 행행은 고대부터 국왕이 궁궐을 나가서 행차 지역의 백성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행행은 국왕이 궁궐 밖으로 행차하여 도성의 중심부를 지나 목적지에 이르는 형식이므로 오늘날의 퍼레이드와 유사한 양상을 지니고 있다. 다만 퍼레이드는 행렬 전체가 주인공이지만, 행행에서는 국왕이 유일한 주재자였다. 국왕이 행행의 주재자인 것은 행행의 종류와 범위에서도 파악된다. 선대 국왕과 왕비의 능침에 가는 능행陵幸, 사친事親의 묘소에 가는 원행園行, 지병의 치료를 위해 온천에 가는 온행溫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으며, 이동거리의 원근에 관계없이 궁궐을 벗어나면 모두 행행이라고 하였다. 또한 종묘의 춘추대제를 거행하거나, 전염병 예방과 피서를 위해 궁궐을 옮기는 것도 행행이라고 했으며, 국왕이 왕비를 혼례에서 맞이하는 친영, 왕족과 신하의 사저에 가는 것조차 행행이라고 할 정도로 그 종류와 범위가 광의적이다.


 



행행의 시대적 변화

조선시대 국왕은 궁궐 내에서만 주로 생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많은 국왕들이 제사나 행사를 거행하기 위해 자주 도성 밖까지 행차하였다.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태종, 세종, 세조는 사냥과 온천욕을 위해 수시로 도성 외부에 행차하였다. 태조와 태종은 무사집안 출신답게 기마병을 거느리고 전국의 사냥터를 누볐다. 세종은 안질을 고치기 위해 초정온천을 찾기도 했고, 세조는 동래온천까지 왕래하려고 할 정도였다. 조선전기의 국왕들이 사적인 이유로 행행을 거행한 것에 반해 조선후기에는 종묘와 왕실 사당에 행행하는 것과 선대 국왕과 왕비의 능침에 행차하는 능행이 수시로 이루어졌다. 역대 국왕의 능침이 후기로 갈수록 증가하여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물론 국왕의 궁궐 및 도성 외부로의 출입을 신료들이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국왕의 행행은 중종대 이후로 많은 제약에 따라 잠시 감소되는 양상을 보였다. 신진사대부들이 조정에 등용된 이후 성리학 통치 질서가 강조되면서 국왕의 행동거지도 그에 따라 제약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행행은 국가 의례의 한 부분으로 정비되었으며 국왕은 그 절차에 따라 움직여야만 했다. 이후 국왕들은 대체적으로 의례절차를 준수하며 행행을 거행하였는데, 왕권의 강약에 따라 절차가 강조되거나 무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왕위 정통성의 확인

국왕이 왕릉에 행행하는 것은 그 자체가 효심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보위에 등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국왕에서 연로한 국왕까지 비가 내리거나 혹은 혹한의 날씨에도 도성 내의 주요 거리를 거쳐 왕릉에 이르는 행행은 유교의 핵심인 효심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이었다. 조선 국왕에서 행행을 통해 효심을 잘 나타낸 국왕은 영조와 정조이다. 영조는 생모인 숙빈최씨의 사당 육상궁毓尙宮과 묘소 소령원昭寧園, 정조는 생부인 장조(사도세자)의 사당 경모궁景慕宮과 묘소 현륭원顯隆園에 100회 이상의 행행을 거행하였다. 영조와 정조가 생모와 생부의 사당과 묘소에 자주 행행한 것은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숙빈최씨는 하급궁녀로 입궐하여 숙종의 승은을 입어 후궁의 지위에 올랐지만, 그 집안은 한미한 출신이었다. 따라서 영조는 숙빈을 사후 왕비와 같은 반열로 추숭하면서, 그에 맞추어 수시로 육상궁과 소령원에 행차하였다. 특히 육상궁은 경복궁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시사철 주야를 가리지 않고 시간만 나면 차비도 갖추지 않은 채 행차하던 곳이다. 도성 내 백성들에게 영조의 행차가 주목되었을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며, 숙빈최씨의 위상도 그에 따라 재조명되었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된다. 정조가 경모궁과 현륭원에 행행한 것도 영조와 동일한 양상이다. 역적으로 죽임을 당한 생부의 신원을 대외적으로 공인시키는 것과 함께 정조의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확인시키는 기능을 하였다. 그렇지만 이들이 사당과 묘소에 자주 행행하는 모습은 정치적인 효과에 앞서 효심의 실행이라는 유교의 실천윤리를 현실화했다는 것에도 큰 비중이 있었다.


 

 

 

모범군주와 관광민인觀光民人의 소통 마당   

행행은 국왕이 주인공으로 혼자 주관하는 국가행사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행사에 참여하는 인원은 왕족과 궁인, 관료, 군병, 일반 백성에 이르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행행의 현장에서 보인 모습과 일화도 다양하다. 행행에서 국왕과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일치되는 미담은 정조대가 대표적이었다. 1788년 정조가 선릉과 정릉에 능행을 가면서 한강을 건너기 위해 선창에 이르렀을 때 강물이 범람하여 배가 정박할 수 없자 구경나온 백성들이 다투어 물속으로 들어가 선착장을 만들고 국왕의 배를 전송하였다. 당시 정조를 비롯한 누구라도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강제로 시킨 일이 아니라 행행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스스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이 상하에 고르게 잘 전달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렇다고 행행에서 국왕을 두려워하여 몸을 사리고 숨는 경우도 보이지 않는다. 정조가 생부의 묘소가 있는 화성에 원행을 갈 때 백성들은 행렬이 잘 보이는 언덕이나 건물에서 음식을 나누며 구경하였다. 행행의 구경꾼들은 관광민인으로 불렸는데, 많은 신료들이 그들을 물리치도록 한 것에 반해 국왕들은 누구라도 근접하여 구경하도록 지시하였다. 자연히 국왕의 행행이 거행되는 날은 도성 내외가 임시공휴일로 수많은 인파가 관광하는 장관을 연출하였다. 이외에 행행에서 국왕과 백성이 직접 대면하는 것이 직소直訴였다. 18세기 행행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백성들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직소였다. 힘없는 개인의 원통함을 행정 라인을 통해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 행행 이동로에 자리 잡고 꽹과리와 징을 울려 국왕에게 직접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법적으로 직소한 자들은 처벌을 받았지만, 국왕이 그들의 사연을 알게 되면 재수사 내지는 민원을 해결할 수 있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감행하였다. 특히 국왕이 직접 그들을 대면하고 해결책을 지시하였으므로 행행은 민원인들이 국왕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매체이기도 하였다.
 

왕조의 안정을 위한 권위와 정통성의 확보 

베버는 권력의 특징이 “전통에 의해 정통성을 부여받은 권력자의 신성함을 믿는” 것이라고 하였다. 행행이 지니는 내적 가치는 국왕의 권위와 존재를 피지배층에게 시각적으로 압축된 구조로 보여주어 조선왕조의 정당성을 무의식적으로 되새기게 하는 점이다. 국왕의 행행에 동원되는 화려한 기물과 사람들은 왕조의 권력구조를 응축시킨 한 장의 그림처럼 사람들의 시선과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행행 의례는 시대가 지나도 크게 변화되지 않고 반복되는 공식적인 국가행사이다. 이 점은 현존하는 행행 관련 반차도와 행사도의 기본구도가 동일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국왕별로 반복되던 행행의 의식 절차와 화려한 차림은 왕권의 권위와 상징성을 문화적인 기억으로 접합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조의 전통을 강조하는 문화 없이 권력을 지속시키기 어려운 배경이기도 하다. 그래서 행행이 정치적 성격을 짙게 내포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문화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글·이왕무 장서각 전임연구원  
사진제공·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장서각 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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