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 출신 조경곤(47·사진)씨는 국내 첫 시각장애인 고수(鼓手)다. 작년 4월 말 인천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23호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북을 잡은 지 20년 만에 꿈에 그리던 문화재가 됐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 않다. 무대에 설 기회가 없어, 여전히 영세민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지관이나 학교 방과 후 강사도 100% 비(非)장애인만 써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강좌도 저에게 맡기지 않으니까요. 어렵게 문화재가 됐지만, 설 수 있는 무대가 없으니…."
조경곤씨는 고 1 때 운동하다 눈을 다쳤다.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20대 후반 완전히 실명했다. 어릴 때 집안에서 들은 판소리 가락에 끌려 스물여섯 살 때 고수 김청만(68·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 선생을 찾아갔다. "고수는 소리꾼의 입과 가야금 연주자의 손을 보지 못하면 반주할 수 없다. 나도 가르칠 방법은 없다. 스스로 터득해야지…."
조씨는 스승의 북소리를 수없이 되풀이해 들으며 감(感)을 익혔다. 북을 너무 세게 잡아 왼손 손가락 살점이 떨어져 피투성이가 될 만큼 연습에 매달렸다. 2004년 전국국악경연대회 장려상을 비롯, 주요 대회에 잇달아 입상했다. KBS 국악 프로그램에 출연한 안숙선 명창의 반주를 즉석에서 했다가 "북, 참말로 잘 친다"는 칭찬도 받았다.
하지만 문화재가 된 후에도 무대에 설 기회는 늘지 않았다. 작년 5월 금요상설무대 등에 두 번 선 게 전부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북을 칠 수 있겠느냐는 편견이 행정 당국과 국악계에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물어봐요. 문화재도 됐으니, 수입이 괜찮겠다고. 나도 영세민을 벗어나서 국가에 당당하게 세금을 내고 싶은데, 부끄러울 뿐입니다."
조씨는 그간 국립국악원과 국립창극단 같은 공공기관에 기회 있을 때마다 민원을 냈다. "시험 볼 수 있는 기회라도 달라고 했지요. 1년간 월급도 안 받겠다고도 했어요. 하지만 답이 없네요." 조씨는 17일 오후 2시 인천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정기연주회를 갖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