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0일 오전 10시. 숭례문 화재 현장에서 복원 공사의 시작을 알리는 착공식이 열렸다. 이날 누각 상단에 가로로 놓인 목재인 평방을 해체하면서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당시 문화재청은 보도자료를 내고 “숭례문 복구는 전 과정이 전통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현장 인부는 한복을 입고 작업을 하고 숭례문에 대장간을 설치해 전통 도구를 직접 제작해 사용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침은 철저한 대외 홍보용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숭례문 복구 자문단 6차 회의록(2010년 3월 11일)에는 문화재청의 당초 발표가 과장됐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날 회의에는 박언곤 기술위원장을 비롯한 자문위원 8명과 최종덕 복구단장을 포함한 문화재청 관계자 8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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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서 도구 제작” → 극히 일부
▶A씨=“현실이 당초 의도나 발표만큼 전통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B씨=“전통 복장 착용도 개량 방법을 적용하는 절충이 필요하다. 활동성 좋은 복장을 고안할 필요성이 있다.”
이날 회의에선 “전통 방식대로 거중기를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도 나왔다. 회의록에는 ‘운반·조립·쌓기는 현대식 도구를 사용한다’고 명기돼 있다. 한 참석자는 “거중기는 수원 화성 공사 때도 실험적으로 1대만 만들었고 실제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중기는 문헌기록상에만 있을 뿐 제작·사용 방법 등이 전승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복 입고 작업” → 대부분 개인 옷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인 2011년 2월 10일. 문화재청이 언론을 상대로 개최한 복구 설명회에 거중기가 등장했다. 한복 차림의 인부들이 기둥과 줄을 이용한 옛 거중기로 석재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공개했다. 1년 전 자문단회의에서 이미 쓰지 않기로 결정했던 거중기였다. 실제 숭례문 복원 공사에서 거중기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전통 방식으로 공사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도 하지 않는 거중기로 대대적인 ‘쇼’를 펼친 것이다.
문화재청은 숭례문 복원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전 과정을 전통 방식으로 공사한다”고 홍보해왔다. 본지가 입수한 ‘숭례문 복구사업 결산 내역’에 따르면 숭례문 전시관 건립 등 홍보성 사업에 약 21억원을 배정하면서 홍보에 집중했다. 역대 문화재청장들도 “철저하게 전통 기법으로 복원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러나 본지 취재진이 공사에 참여했던 인부들과 장인 등을 취재한 결과 숭례문 복원은 “철저한 전통”이 아닌 ‘무늬만 전통’인 방식으로 이뤄진 공사였다.
문화재청은 목재를 자르지 않은 상태에서 가져와 목수들이 톱으로 직접 손질한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현장 인부들 얘기는 다르다. 목공사에 참여한 한 인부는 “목재 일부를 제재소에서 공수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응수 대목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모두 손으로 했다”고 부인했다.
숭례문에 설치한 대장간도 사실상 큰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은 “전통 도구를 대장간에서 만들어 사용한다”고 했지만, 인부들은 “정 같은 간단한 도구만 대장간에서 만들어 썼고 나머지는 기존에 사용하던 개인 도구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전통 복장 역시 홍보뿐이었다. 문화재청은 “현장 인부들이 한복을 입고 작업을 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공사에 참여한 한 인부는 “개량 한복으로 만든 작업복이 지급됐지만 편의에 따라 개인 작업복을 입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자재를 함부로 다루는 일도 다반사였다. 공사 현장을 직접 목격했던 한 문화재 전문가는 “현장에 가보니 나무를 위에서 던지고 서까래를 함부로 빼내는 등 엉망이었다”며 “전통 방식으로 복원한다더니 일반 공사 현장과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다.
지나친 홍보사업에 21억 지출
경주대 문화재학과 정병모 교수는 “문화재청이 전통 방식에 대한 철저한 조사 없이 과도한 홍보를 하고 쇼를 했다고 본다”며 “숭례문을 원형에 가깝게 되살리기 위해 옛 기법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형 복원에 현대적 기술이 도움이 되면 그것을 활용하면 됐을 일”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술 뛰어난데 무조건 옛날식 고집은 무리"전문가들이 본 문제점
그러나 이 같은 방침은 철저한 대외 홍보용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숭례문 복구 자문단 6차 회의록(2010년 3월 11일)에는 문화재청의 당초 발표가 과장됐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날 회의에는 박언곤 기술위원장을 비롯한 자문위원 8명과 최종덕 복구단장을 포함한 문화재청 관계자 8명이 참석했다.
“대장간서 도구 제작” → 극히 일부
▶A씨=“현실이 당초 의도나 발표만큼 전통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B씨=“전통 복장 착용도 개량 방법을 적용하는 절충이 필요하다. 활동성 좋은 복장을 고안할 필요성이 있다.”
이날 회의에선 “전통 방식대로 거중기를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도 나왔다. 회의록에는 ‘운반·조립·쌓기는 현대식 도구를 사용한다’고 명기돼 있다. 한 참석자는 “거중기는 수원 화성 공사 때도 실험적으로 1대만 만들었고 실제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중기는 문헌기록상에만 있을 뿐 제작·사용 방법 등이 전승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복 입고 작업” → 대부분 개인 옷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인 2011년 2월 10일. 문화재청이 언론을 상대로 개최한 복구 설명회에 거중기가 등장했다. 한복 차림의 인부들이 기둥과 줄을 이용한 옛 거중기로 석재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공개했다. 1년 전 자문단회의에서 이미 쓰지 않기로 결정했던 거중기였다. 실제 숭례문 복원 공사에서 거중기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전통 방식으로 공사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도 하지 않는 거중기로 대대적인 ‘쇼’를 펼친 것이다.
문화재청은 목재를 자르지 않은 상태에서 가져와 목수들이 톱으로 직접 손질한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현장 인부들 얘기는 다르다. 목공사에 참여한 한 인부는 “목재 일부를 제재소에서 공수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응수 대목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모두 손으로 했다”고 부인했다.
숭례문에 설치한 대장간도 사실상 큰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은 “전통 도구를 대장간에서 만들어 사용한다”고 했지만, 인부들은 “정 같은 간단한 도구만 대장간에서 만들어 썼고 나머지는 기존에 사용하던 개인 도구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전통 복장 역시 홍보뿐이었다. 문화재청은 “현장 인부들이 한복을 입고 작업을 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공사에 참여한 한 인부는 “개량 한복으로 만든 작업복이 지급됐지만 편의에 따라 개인 작업복을 입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자재를 함부로 다루는 일도 다반사였다. 공사 현장을 직접 목격했던 한 문화재 전문가는 “현장에 가보니 나무를 위에서 던지고 서까래를 함부로 빼내는 등 엉망이었다”며 “전통 방식으로 복원한다더니 일반 공사 현장과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다.
지나친 홍보사업에 21억 지출
경주대 문화재학과 정병모 교수는 “문화재청이 전통 방식에 대한 철저한 조사 없이 과도한 홍보를 하고 쇼를 했다고 본다”며 “숭례문을 원형에 가깝게 되살리기 위해 옛 기법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형 복원에 현대적 기술이 도움이 되면 그것을 활용하면 됐을 일”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술 뛰어난데 무조건 옛날식 고집은 무리"
전문가들이 본 문제점
"역사 복원, 시간 쫓겨선 안 돼 … 가격만 따지는 입찰도 문제"
일본 3대 명성(名城) 중 하나인 나고야성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전소됐다. 복원 프로젝트는 2002년 시작돼 2017년에 끝난다. 총 15년간의 복원 프로젝트를 구경하기 위해 연간 60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 느리면서 꼼꼼하게 진행되고 있는 복원 현장을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국보 1호인 숭례문 복구 공사는 5년3개월 만에 끝났다. 지나치게 짧은 공기는 부실 복원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화재 복원은 역사를 복원하는 일인 만큼 시간에 쫓겨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고문인 강원대 지질학과 이상헌 교수는 “숭례문은 모두가 전통 방식으로 하라고 압박한 데 비해 시간이 너무 짧았다 ”고 말했다.
문화재 보존에 대한 철학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이태녕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통 방식이라고 무조건 옛날식대로 하자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좋은 현대 기술을 두고 옛날식으로 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일인지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고 했다. 또 “전통 방식과 현대 방식의 작업 결과가 어떻게 다른지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화재 공사를 할 때 가격을 따져 입찰하는 게 아니라 실력을 갖춘 전문가에게 충분한 보수를 주고 맡겨야 한다는 조언도 많았다. 독일의 경우 문화재 보수 공사를 할 때 대학 부설 연구소 등에 공고를 내 제안서를 받는다. 가격만 따지는 게 아니라 전문성에 중점을 두고 심사를 한다. 보수 공사를 맡은 연구소는 30년간 하자보수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수 공사 업체가 가입하는 보험상품도 있다. 보험료는 비싸지만, 30년간 하자보수를 한 번도 안 할 경우 이자까지 쳐서 전액 돌려받을 수 있다. 이자율이 좋고 상속도 할 수 있다. 하자가 생겨 만기 전에 보험처리를 하면 업자 입장에서도 손해가 나기 때문에 복원·보수를 철저히 한다고 한다. 김홍식 한울문화재연구원장은 “전자제품도 애프터서비스(AS) 기간이 수년인데 최소 수백 년을 이어온 우리 문화재에 대한 하자보수를 보다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특별취재팀=정강현·한은화·이승호·이서준 기자
출처:중앙일보
이에 비해 국보 1호인 숭례문 복구 공사는 5년3개월 만에 끝났다. 지나치게 짧은 공기는 부실 복원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화재 복원은 역사를 복원하는 일인 만큼 시간에 쫓겨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고문인 강원대 지질학과 이상헌 교수는 “숭례문은 모두가 전통 방식으로 하라고 압박한 데 비해 시간이 너무 짧았다 ”고 말했다.
문화재 보존에 대한 철학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이태녕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통 방식이라고 무조건 옛날식대로 하자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좋은 현대 기술을 두고 옛날식으로 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일인지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고 했다. 또 “전통 방식과 현대 방식의 작업 결과가 어떻게 다른지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숭례문 복구 공사처럼 무턱대고 ‘전통 방식’을 강조하는 것보다 먼저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전통 기능인 육성도 중요하다. 윤홍로 전 문화재위원은 “재료는 시대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나무를 깎고, 돌 다듬는 기법과 기능은 전수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문화재 공사를 할 때 가격을 따져 입찰하는 게 아니라 실력을 갖춘 전문가에게 충분한 보수를 주고 맡겨야 한다는 조언도 많았다. 독일의 경우 문화재 보수 공사를 할 때 대학 부설 연구소 등에 공고를 내 제안서를 받는다. 가격만 따지는 게 아니라 전문성에 중점을 두고 심사를 한다. 보수 공사를 맡은 연구소는 30년간 하자보수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수 공사 업체가 가입하는 보험상품도 있다. 보험료는 비싸지만, 30년간 하자보수를 한 번도 안 할 경우 이자까지 쳐서 전액 돌려받을 수 있다. 이자율이 좋고 상속도 할 수 있다. 하자가 생겨 만기 전에 보험처리를 하면 업자 입장에서도 손해가 나기 때문에 복원·보수를 철저히 한다고 한다. 김홍식 한울문화재연구원장은 “전자제품도 애프터서비스(AS) 기간이 수년인데 최소 수백 년을 이어온 우리 문화재에 대한 하자보수를 보다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특별취재팀=정강현·한은화·이승호·이서준 기자
출처:중앙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