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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분포곡선으로 상징되던 네 모습이 허물어지는구나. 육백년을 버텨온 네가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힘센 폭풍이 있었더냐. (중략) 너는 알고 있으리라. (중략) 너를 무너뜨린 자들이 누구인지를. 폭풍, 벼락, 천적보다 얼마나 더 무서운 자들인지를. 그래, 찌그러진 네 모습으로 똑똑히 일러 주어라. 저들의 소행을…" 정이품 소나무(천연기념물 103호)가 쇠퇴해가는 모습을 보며 조연환 시인은 안타까운 심정을 이렇게 읊었다.

↑ 괴산 왕소나무 전성기 모습.

줄기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고 해서 용송(龍松)으로도 불리는 괴산의 명물 삼송리 소나무(일명 왕소나무ㆍ천연기념물 290호)는 앞으로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지난해 8월 28일 태풍 '볼라벤'의 강풍으로 쓰러진 뒤로 영양제를 공급받고 있는데 사실상의 사망선고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변영섭 문화재청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사람으로 치면 호흡기를 끼고 있는 것으로 실제로는 죽었다"며 "태풍이 불기 전 받침대만 받쳐놓았더라도 넘어지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하늘을 찌르는 푸른 기개와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던 천년 고목(古木)들이 속절없이 무너져가고 있다. 노거수(老巨樹)들은 땅의 기운을 보충하기 위한 비보림이나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서, 당산나무로서 오랜 세월 우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문화재청 집계에 따르면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고사, 유실 등으로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된 노거수가 1990년 이후에만 전체 130여 그루 중 무려 18그루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가 수령이 500~600년에 이른다.

소나무의 일종인 곰솔은 줄기 껍질이 검은 빛을 띠고 있어 '검은 솔'로 불렸다가 '곰솔'로 바뀌었다. 규모에서나 장엄미에서 단연 우리나라 최고 곰솔이라 할 만한 익산 신작리 곰솔은 지난 2007년 낙뢰에 맞아 시름하다가 숨을 거뒀다. 피뢰침만 제대로 설치됐더라도 막을 수 있는 인재였다고 한다. 이에 비견될 만한 아름다움을 지녔던 서천 신송리 곰솔도 벼락이 떨어져 고사했다. 백색이 선명한 줄기와 사철 푸른 솔잎의 충북 보은 백송(천연기념물 104호)은 주변을 아스콘으로 포장하면서 시들기 시작했고 결국 지난 2011년 베어졌다.

현재 중병을 앓고 있는 나무도 부지기수다. 기이한 돌기와 여러 갈래로 발달한 가지가 웅장한 부산 구포동 당숲 팽나무(천연기념물 309호)는 그 속이 썩어가고 있다.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 분과 정종수 위원은 "현장조사 결과, 주변지역 오염이 주된 요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정 위원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들에서 전반적으로 문제점이 발견된다"며 "괴산 왕소나무도 나무 밑둥이 썩은 상태에서 때마침 불어온 태풍에 넘어간 만큼 전체 노거수의 주변 토양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일경제 배한철 기자]

천연기념물 고목 쓰러진다..1990년 이후 18그루 지정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