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8경, 조선 정조 아닌 일제 때 일본인이 선정”

정조시대 때 축성된 수원 ‘화성(華城)’. | 수원시 제공

ㆍ김용국 원장 밝혀… 수원시 “ 확인 땐 폐지 후 새로 선정”

‘광교적설(광교산 정상에서 산록까지 쌓여있는 흰 눈)’ ‘팔달청풍(팔달산 솔숲 사이로 불어오는 맑고 시원한 바람)’ ‘남제장류(수원천 긴 제방에 늘어진 수양버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의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한 ‘수원 8경’이다.

이 ‘수원 8경’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선정한 것이라는 학술 논문이 나와 수원시가 진상 파악에 나섰다. 수원시는 사실로 확인되면 현 수원 8경을 폐지하고 새로운 8경을 선정하겠다고 9일 밝혔다.

수원 8경은 원래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가 조선시대 마지막 성인 화성을 축성한 뒤 화성을 중심으로 주변의 빼어난 경치에 대해 김홍도에게 그림으로 남기도록 하면서 선정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김용국 (사)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장은 지난달 27일 열린 ‘수원 춘추 8경 제작을 위한 학술토론회’ 주제발표에서 “현 수원 8경은 1927년 일본인 나이토 린세이(內藤倫政)가 쓴 ‘고적과 풍속’이라는 책에서 베껴온 것”이라고 밝혔다. 정해득 정조대왕기념사업회 사무국장도 “수원 8경은 1913년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엔카 작사가인 후지노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라며 “그는 화성의 빼어난 풍광이나 정신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유희의 장소로 수원 8경을 노래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정조 20년(1796년) 화성축조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에 화성행궁에 비치했던 화성춘추팔경도병풍 2좌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며 “조선시대 홍길주(1786~1841)가 쓴 ‘표롱을첨’에 정조께서 김홍도에게 화성의 여덟 경치를 그려 바치도록 명했고, 김홍도는 춘8경 5폭과 추8경 3폭으로 ‘화봉팔관도’를 그린 것으로 표기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화봉팔관도에 나오는 8경과 일본인이 쓴 ‘고적과 풍속’에 나오는 8경은 한 곳만 같을 뿐 7경은 전혀 다르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1986년과 1997년에 간행된 ‘수원시사’에 나오는 수원 8경은 일본인이 쓴 ‘고적과 풍속’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며 “그러나 정조시대 때 선정한 화성 8경은 역사적 유래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북송시대의 ‘소상팔경’을 모방하지 않고 자주적 명칭을 부여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봉팔관도의 수원 화성 8경을 복원해 계승하는 것은 수원역사의 맥을 잇는 작업”이라며 “그러나 굳이 8경만을 고집하고 갇힐 필요는 없으며, 기왕에 수원의 100경을 만드는 작업을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수원 8경의 유래가 일제강점기 때의 잔재라면 폐지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며 “새로운 수원 8경은 수원시민 모두가 공감하고, 경관 요소와 관광자원성을 갖춘 곳이 선정될 수 있도록 시민들이 참여하는 합의과정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경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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