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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가장 오래된 종합적 기록물 암각화
글쓴이 문화재방송.한국 등록일 [2021.10.09]

가장 오래된 종합적 기록물 암각화 이 땅에는 무수한 사람이 살고 간 흔적이 유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일종의 조형 이미지로서 그리고 종합적 기록으로서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가 있다. 그런 암각화를 통한다면 우리는 옛 선인들의 생활사 그 내용은 물론이고 그들의 고양된 정신사적 문제까지도 낱낱이 살펴볼 수 있다. 01.반구대암각화 좌측 고래의 무리

불후의 기록, 반구대암각화

우리 문화사에서 가장 놀라운 고고학적 미술사적 발견이라면 그 자리에는 반구대암각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 미술사의 본격적 시작이면서 동시에 불후의 기록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암각화란 무엇일까? 그것은 일차적으로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의 평온 희구의 기록적 의미를 띤다. 좀 더 들여다보면, 암각화란 사람이 다듬지 않은 자연 상태의 바위에 남겨진 문화 활동의 적극적 기록이다. 조형 사조의 발전상으로 봤을 때 암각화는 도드라진 부분 없이 오로지 음각으로 묘사되어야 한다. 만약 부피가 있는 양감이 표현되었다면 그것은 한층 발전한 사회에서 나오는 조각의 경지에서 논해져야 할 것이다.


연대기적 유적으로서 한국 암각화

1970년 12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이 발견되면서 우리 선사 문화 연구는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단순히 토기나 석기, 무덤에서 나오는 것을 놓고 논의하던 선사학 연구 영역을 크게 확장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매혹적인 세계, 저 오래전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울주 천전리 각석의 뒤를 이어 이듬해 고령 장기리 암각화(보물)와 함께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국보)가 발견됐다. 그리고 해를 거듭해 올해는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이다.


발견 이후 지속적인 노력 끝에 알게 된 사실이 많다. 그중 하나는 반구대암각화가 다섯 차례의 제작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현상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때 사람들의 삶의 여정을 어렴풋이 읽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울주 천전리 각석도 마찬가지이다. 각석 또한 네 차례의 거듭된 제작 단계를 거쳐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그런 순서를 살펴보면 우리는 저 신석기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사람들의 삶의 기막힌 이야기, 연대기적으로 쌓여 있는 그 절절한 사연을 들춰볼 수 있다.


02.반구대암각화 부분 먼 곳을 살피는 사람 03.반구대암각화 부분 귀신고래

변해 가는 조형 언어를 반영하다

인류 최초의 기록이라고 하면 그것은 동굴벽화와 같은 것이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는 없고, 따라서 최초의 기록다운 기록이라면 오직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가 있을 뿐이다. 사실상 암각화는 영원할 것만 같은 바위의 상징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것은 처음 후기 구석기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폭넓게 펴져 나간 것은 신석기시대로 표현의 주제도 당연히 사슴과 같은 동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말하자면 수렵문화에서 숭배의 대상은 오직 동물의 형태로 나타내는 조형적인 전통을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농경이 날로 번창하게 되면서 주제도 달라졌다. 마름모꼴 문양부터 동심원, 회오리 문과 같은 기하문이 중심이 됐다. 그래서 울주 천전리 각석 이후의 기하문 단계는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이 세상의 여러 현상으로서 비와 구름, 태양, 기후변화와 같은 자연환경에 진지하게 다가서고자 했던 결과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후 사회가 크게 발전하게 되면서 인류 최초의 조형적 기록인 암각화 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그 이후의 세상은 모든 것을 문자가 대신하게 되면서 우리 역사는 속도감을 더했다.




글, 자료. 이하우(전 울산대학교 교수, 한국암각화학회장)


출처:월간 문화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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