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방송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1홈으로 | 즐겨찾기등록 |  +관련사이트 
문화재방송 한국 " Since 2008. 2. 1 "
[공지]왼 쪽 상단 VJ 金鐘文을 클릭하시면 그동안 KBS에 방송됐던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왼 쪽 아래의 유튜브 바로가기를 클릭하시면 문화재 관련 동영상을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문화재방송 캠페인]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칩니다"
hudownwbe wojodown nuebfile monjdown yesnkdown lpmedown jneepudw mndownfile bafdownco yabiqedown amehdown fadowntero evnhdown
HOME >
문화재뉴스 >
무형문화재 >
유형문화재 >
기타문화재 >
영상문화 >
역사기행 >
유네스코세계유산 >
문화재연감 >
유튜브 바로가기 >
PageNo : 01
제 목 세밀가귀(細密可貴)의 걸작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의 귀환
글쓴이 문화재방송.한국 등록일 [2021.09.23]

세밀가귀(細密可貴)의 걸작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의 귀환 나전칠기는 정교한 표현이 일품인 예술품이다. 본래 우리 기술로 만들어진 작품이나, 애석하게도 그 원형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원형이 잘 보존된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이 그 만한 가치가 있는 이유이다. 01.나전국화넝쿨무늬 합 ©문화재청

세밀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공예미술, 나전칠기

우리나라에서 우수한 나전칠기가 제작된 시기는 고려시대이다. 고려 나전칠기의 특징은 자개와 함께 은, 동, 황동 등의 금속선을 넝쿨선이나 기물의 경계선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철사 모양으로 꼰 단선은 꽃문양의 가지 줄기에 주로 사용했고, 두 줄을 꼰 선은 기물 주위나 모서리 부분에 붙여 장식함으로써 기물을 잡아주는 보강의 역할과 의장을 이루는 구획의 경계선으로 삼았다. 특히 나전과 함께 바다거북 등딱지인 대모(玳瑁)의 투명한 뒷면에 붉은색이나 노란색으로 채색해 은은히 색깔이 표면에 드러나 보이도록 한 복채(伏彩) 기법은 고려 나전칠기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이다. 고려 나전에 사용된 대모 복채 기법은 단순한 나전의 색감에서 색채 효과를 살린 고려만의 창안이며 색감의 변질을 막는 보호막 기능도 함께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고려 나전칠기에서 살펴볼 수 있는 나전을 끊어 시문하는 끊음질 기법의 독특함도 주목된다. 나전패에서 잘라낸 무수한 절문(截文)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양이 될 수 없지만 이들이 모이고 조합되어 새로운 문양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세밀함은 최소 단위가 되는 절문의 크기가 사방 1cm를 넘는 것이 없으며 여기에 음각의 선으로 꽃잎이나 잎맥의 디테일까지 표현함으로써 그야말로 세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02.나전국화넝쿨무늬 합 뚜껑 상면 X선 사진. 뚜껑의 테두리와 넝쿨 줄기 분분을 장식한 금속선이 하얗게 보이며, 나전은 대모에 비해 투과성이 낮아 밝은 색을 띤다. ©국립문화재연구소 03.나전국화넝쿨무늬 합 몸체 바닥면, X선 사진 나전합에 사용된 목재의 나뭇결과 그 위에 바른 직물이 명확하게 보인다. 좌측 하단의 곡선면 부분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칼집을 내어 꺾은 흔적이 남아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고려시대 문헌에도 남아있는 최고의 특산품

이 시기 나전칠기의 제작 상황을 잘 보여주는 기록이 바로 1123년 송나라에서 온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이다. 이 책 권 23에 “그릇에 옻칠[漆]하는 일은 그다지 잘하지 못하지만 나전(螺鈿)의 솜씨[工]는 세밀하여 귀하다고 할 만하다”라고 기술했다. 그 이전 『고려사』와 『동국문헌비고』에서도 고려 문종(文宗) 원년(1047)에 요나라 왕실에 나전칠기를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일찍부터 고려를 대표하는 특산품으로 그 수준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고려를 대표하는 최고의 기술적 역량을 지녔던 고려 나전칠기는 현재까지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수량이 고작 20여점에 불과하다.


그것도 고려 불화와 마찬가지로 일본에 가장 많이 남아 있어 다이마데라[當麻寺]의 나전대모 국당초문 염주합을 비롯해 10여 점의 고려 나전칠기가 확인된다. 또한 뜻밖에 미국에도 여러 점의 고려 나전칠기가 남아 있는데, 조사한 바로는 이들 역시 근세기에 일본에서 건너간 것으로 파악된다. 고려 나전의 생산국이었던 우리나라에 남은 것은 이번에 환수된 나전칠기를 포함해도 모두 석 점에 불과하다. 특히 기존의 두 점은 완형이 아니거나 원형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보수된 작품이다.


고려 나전칠기의 격조에 세계가 감탄

이렇게 귀한 고려 나전칠기와 필자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실로 우연한 일이었다. 20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아시아 미술관에서 개최된 고려미술 전시에 발표자로 참석하게 되었고, 특히 이 도록의 나전칠기 도판 해설을 집필하게 되면서 관련 자료를 섭렵하게 된 것이 첫 번째 계기였다. 이 전시로 전 세계에서 모인 고려 나전칠기의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직접 보게 되었고 그 우수성에 대한 외국인들의 찬사를 지켜보면서 나전칠기의 생산국인 우리나라에서 반드시 이러한 전시를 개최하리라 마음먹게 되었다. 그 후 2005년부터 일본에 있는 나전칠기에 관한 조사와 국내 전시를 위한 섭외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확인되지 못했던 또 하나의 고려시대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이 도쿄의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고 소장가와 협의해 2006년에 이루어진 국립박물관 특별전 〈천년을 이어온 빛 – 나전칠기〉에서 처음으로 공개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무려 14년이란 세월이 지난 2020년 봄, 원래의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 사이 이 나전칠기가 일본의 원 소장가의 손을 떠나 잠시 다른 곳으로 이관되기도 한 사실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아마도 우리가 직접 협상하고 매입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고려 나전칠기가 아니었을까 위안 삼아 본다.


제작 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된 꽃 모양 자합

이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은 길이가 10.2cm에 불과한 작은 크기이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다른 나전칠기와 달리 후대의 큰 보수 과정 없이 원형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더해 준다. 전 세계적으로 이와 유사한 형태를 지닌 것이 일본 게이순잉(桂春院), 그리고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것도 일본에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됨) 것을 포함해 총 3점에 불과하다. 원래는 외형이 꽃 모양을 한 화장용 상자의 모자합(母子盒) 내부에 4개가 들어 있던 자합 중 하나로 추정되는데, 고려청자에 비슷한 사례가 다수 전해지고 있지만 나전칠기 모자합이 완형으로 발견된 것은 아직까지 없다.


이 합은 진주빛의 나전으로 당초 줄기를 배치한 국화넝쿨무늬를 주무늬로 하여 뚜껑의 경사면에는 붉은색, 노란색으로 복채한 대모(玳瑁)로 작은 꽃문양을 둘러 화려함을 더했다. 합의 측면에는 나전으로 모란당초문과 원문(圓文)을 장식했다. 또한 넝쿨선은 자개가 아닌 금속선을 사용했고 테두리 부분에도 꼰 금속선으로 장식 효과를 높이면서 힘을 보강하는 역할을 했다. 모두 12세기 고려 나전칠기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 소중한 작품의 귀한을 계기로 고려 나전칠기의 제작 과정과 전통 기술의 복원, 제작 기법 연구 및 재현 분야에 이르기까지 소중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글. 최응천(국외소재문화재단 이사장, 동국대 교수)


출처:월간 문화재사랑 


 

주소: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석바위로 53번길 17 | 이메일:tntvkr@nate.com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천 0101529' 등록
Copyright(c)tntv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