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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무대포'는 정말로 무모하기만 했던 도전이었을까?
글쓴이 문화재방송.한국 등록일 [2021.01.07]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무대포'는 정말로 무모하기만 했던 도전이었을까?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사진=영화 '돈키호테 맨 오브 라만차' 캡쳐)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사진=영화 '돈키호테 맨 오브 라만차'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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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보통 앞 뒤 안 가리고 무작정 뛰어드는 무모한 사람을 일컬어 '무대포'라고 부른다. 심지어 기업에서는 아무런 기반도 없이 일단 뛰어드는 공격적인 사업방식을 두고 '무대포 정신'이라 부르기도 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대포도 없이 전쟁터로 뛰어드는 무모함을 의미하는 단어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 말은 원래 일본어 '무데뽀(無鐵砲)'에서 온 말로 '일의 앞뒤를 잘 헤아려 깊이 생각하는 신중함이 없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뜻한다. 여기서 데뽀는 16세기 중엽, 일본 전국시대 포르투갈에서 도입된 화승총을 의미한다. 화승총도 없이 무모하게 돌격을 하는 어리석은 장수를 의미하는 말에서 오늘날 단어의 뜻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있다.

조총 사격 재현모습(사진=위키디피아)

조총 사격 재현모습(사진=위키디피아)


원래 무데뽀는 '無手法'란 한자로도 번역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 의미와 관계없이 음을 차용해 단어를 만드는 아테지(宛て字) 단어로 처음부터 총과 얽힌 말은 아니었다고 한다. 무데뽀가 화승총과 얽히기 시작한 것은 일본 전국시대 판도를 뒤바꾼 전투로 알려진 나가시노(長篠) 전투를 치른 이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나가시노 전투는 일본 전국시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로 흔히 강력한 기마술로 유명했던 다케다(武田) 가문의 맹주, 다케다 카츠요리의 기병대가 화승총부대를 앞세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게 참패한 전투로 알려져있다. 1575년 벌어진 이 전투에서 승리한 오다 노부다가는 이후 승기를 잡고 일본 대부분을 통일하기에 이른다.

3단 사격법에 대한 중국 병서인 '군기도설'에 나온 삽화(사진= 위키피디아)

3단 사격법에 대한 중국 병서인 '군기도설'에 나온 삽화(사진= 위키피디아)


오다의 승리는 흔히 기업에서 혁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온다. 오다가 이끄는 3000명의 화승총 부대가 주력이 돼 3부대가 차례로 윤번 사격을 실시하는 '3단 사격술'이란 신 전술로 1만5000기에 이르는 다케다의 기병대를 완전히 궤멸시켰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화승총이란 신기술을 재빨리 도입하고 적절한 전술까지 마련한 오다가 낡은 기병돌격작전에 매어있던 다케다의 대군을 궤멸시켰다는 것. 여기서 무데뽀는 다케다의 무모하기 짝이 없던 기병돌격을 비유하는 단어로 쓰인다. 돈키호테의 돌격과도 같은 어리석음이 패배의 주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엔 이에 대한 반론들이 제기되고 있다. 정말로 오다의 화승총부대가 나가시노 전투 승리의 원천인지부터가 의심스럽다는 것. 당시 화승총은 한 개에 보병 한사람의 연봉과 맞먹을 정도로 엄청나게 비쌌기 때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통일하기 이전까진 수천명씩 운용했다는 기록이 없다고 한다. 여기서 활약한 3000명이 이후 다른 전투에서 활약했다는 기록도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실제로 화승총 부대를 수천명 운용했다고 해도 승리를 늘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시 화승총은 성능이 그리 좋지 못했고 인명 살상이 가능하려면 80m 내에서 사격을 해야 했으며 1분에 많이 쏴야 2발 정도가 한계였다. 그러나 당시 기병대는 1분에 800m 정도를 주파했으며 일단 기병대가 진형을 뚫고 들어오면 장창 등 방어무기가 없는 화승총부대는 전멸할 수밖에 없었다.

청나라 팔기병 모습(사진=대만국립고궁박물관)

청나라 팔기병 모습(사진=대만국립고궁박물관)


그러다보니 화승총 부대가 기병대의 돌격 작전에 박살이 난 전투는 꽤 많은 편이다. 1619년 만주 사르후(薩爾滸)에서 청나라 팔기군과 조선, 명나라 연합군 간 전투에서 화승총부대가 주력이었던 조선군 1만3000명은 평지에서 청나라 기병이 기습하자 순식간에 절반이 사망하고 살아남은 병사들은 그대로 항복했다. 이외에도 1683년, 오스만 투르크군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를 공격했을 때도 오스트리아를 구원하러 온 폴란드 기병대인 윙드 후사르(Winged Hussar) 수천기가 10배가 넘는 오스만 투르크의 화승총부대를 전멸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사실상 무대포가 무모한게 아니라 무작정 화승총만 들고 있는 보병대가 훨씬 무모했던 셈이다. 결국 화승총이 개량되기 전까지는 화승총부대는 기병대로부터 전방을 보호할 장창부대와 함께 운용돼야했으며 이러한 방어전력없이 총만 들고 다니는 부대는 여지없이 기병대에 박살이 났다.

실제로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가 승리한 것은 화승총도, 3단 사격술 때문도 아닌 절대적 전력 우세와 타이밍을 놓친 다케다의 실책이 합쳐진 결과라고 한다. 다케다 군은 원래 나가시노 성의 수비병력이 500명 뿐인 것을 알고 1만5000기를 이끌고 재빨리 점령하러 진격했다가 시일을 끄는 바람에 오다의 본군 3만8000명이 도착했고 결국 2배가 넘는 적군에 포위돼 대패했다는 것.

결국 공격하려면 빨리 공격해서 함락시키고 대세가 바뀌었으면 빨리 병력을 퇴각시켜야한다는 '병귀신속(兵貴神速)'이란 병법의 기본을 어겼기 때문에 패배한 셈이다. 화승총이란 신기술과 3단 사격이라는 새로운 전술의 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결국 기본 전투운영에 충실한 쪽이 승리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무대포 정신'의 진정한 교훈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원문보기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41110354299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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