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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수백 년 이어온 ‘명문가’의 향기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5.28]

 

수백 년 이어온 ‘명문가’의 향기

발간일 2020.05.27 (수) 17:46



검단·당하·원당·마전·불로대곡동(상)

 

바람은 열린 곳으로 분다고 합니다. 바람이 부는 방향엔 길도 열려 있게 마련입니다.

인천시민을 사랑하는 인터넷신문 ‘i-view’가 새로운 기획 ‘바람결 따라 골목길 걸어’를 연재합니다. ‘바람결 따라 골목길 걸어’는 이 시대 인구 300만의 인천이란 도시의 속살을 만나는 특별기획입니다. ‘i-view’는 인천사람들이 살아가는 ‘우리 동네’를 하나하나 찾아가 그들 삶의 이야기와 자연을 만나고, 문화유산, 집, 전통시장 같은 공간과의 대화도 시도할 것입니다. 인천의 하늘 아래 우리 인천시민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땅과 마을의 참모습을 그려보겠습니다. <편집자> 


‘공은 사람됨이 엄격하여 굳세었고, 마음은 즐겁고 편안하였으며 툭 트여 막힘이 없고 확고하였다. 관가에서 일을 처리할 때는 우뚝하기가 산과 같아서 동요시킬 수 없었고, 집안에서는 중후하고 과묵하여 자제들이 옆에 있어도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성품은 청렴하고 검소하여 의복은 화려한 빛깔의 옷이 없고, 음식은 두 가지 이상의 반찬이 없었다, 비록 높은 벼슬에 이르렀지만 집안이 쓸쓸하여 한미한 집과 다를 것이 없었다. 평생 동안 경국제세를 자임하고 광명정대를 마음으로 삼았다….’(公爲人巖毅而樂易…光明正大爲心….)


인천시 서구 당하동 산 164번지 정숙공 이칙의 묘역.
이칙은 좌의정 용헌(容軒) 이원(李原, 1368~1430)의 손자로 조선전기 문신이다.
대사헌, 이조참판, 평안도관찰사, 지중추부사 등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한 인천의 대표인물이다.



좌의정 이원의 손자, 조선시대 대사헌 지낸 이칙의 묘역 오롯이


인천시 서구 당하동 산 164번지. 천주교묘지 한 가운데 야산에 묘갈(墓碣, 머리 부분을 둥글게 다듬은 생전 공덕을 기록한 비석)에 새겨진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높이 140cm, 너비 75cm, 두께 18cm의 묘갈엔 조선시대 대사헌을 지낸 고성 이씨 가문 정숙공(貞肅公) 이칙(李則, 1438~1496)의 공덕이 빼곡히 쓰여져 있다.


이칙의 묘갈은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귀수(龜首)와 용문조각(龍紋彫刻)으로 조형된 모습이다.


이칙의 공덕을 기록한 묘갈과 정부인 안동 권씨 묘비.

묘갈에 새겨진 용문양은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 새길 수 있는 문양이다.
이칙은 경국제세와 광명정대를 실천한 인물로 기록돼 있다.​

묘갈 옆엔 묘비와 함께 수백 년의 풍화를 거치며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된 문인석 1쌍과 동자석 1쌍도 눈에 들어온다. 봉분은 이칙과 정부인 안동 권씨 쌍분으로 조성돼 있으며 아들 이옹과 손자 이성의 묘가 함께 있다.

좌의정인 용헌(容軒) 이원(李原, 1368~1430)의 손자인 이칙은 조선전기 문신으로 대사헌을 지냈다. 대사헌은 조선시대 사헌부의 장관으로 지금으로 치면 검찰총장 정도 되는 벼슬이다. 그는 또 이조참판, 평안도관찰사, 지중추부사 등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한 인천의 대표인물이다.

이칙은 15세기말 임금으로부터 화도(화수동 37의 2번지) 일대를 하사받으며 인천에 정착한다. 이후 그의 묘역은 처음 화도에 조성됐는데 생전 그가 장전(莊田)으로 관리해오던 곳이었다.



‘이괄의 난’ 이후 무덤 파헤칠 뻔 했으나 높은 공덕에 보존

조선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이괄의 난’(1624) 이후 이칙의 묘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이괄은 이칙과 같은 고성 이씨 집안사람이었는데 인조는 이괄의 난 이후 동조세력이나 그 집안에 대하여 파직 등 대대적인 처벌을 추진했다.

이괄의 난이 실패로 돌아가고 한 무리의 군사들이 화도를 찾아왔다. 이칙을 파직하고 묘를 파헤치기 위함이었다. 군사들은 그러나 화도에 도착하자마자 말의 머리를 되돌린다. ‘안개가 너무 짙게 끼어 무덤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명분이었으나 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란 게 학계의 추정이다.

이에 대해 지역의 한 학자는 “이칙의 생전 공덕이 워낙 깊었고 큰 인물이다 보니 무덤을 함부로 훼손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못 찾았기 보다는 안 찾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묘갈에 써내려간 조선 중기 문신 이행의 글과 성세창의 필체.

당하동엔 천주교인천교구묘원이 조성돼 있다. 묘갈 맞은편으로 십자가와 성모마리아상이 보인다.

묘갈에 새긴 글을 지은 이행(1478~1534)과 글씨를 쓴 성세창(1481~1548) 역시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들이다. 이행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우의정까지 지낸 인물이다.

성세창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학식과 문장이 뛰어나 오랫동안 홍문관에서 봉직하며 선비들의 존경을 받았다. 대사헌과 형조판서의 벼슬을 했다.



인천부 부역 확장, 토지구획정리로 현재 당하동으로 이장

이괄의 난 때조차 무사했던 이칙의 묘가 처음 이장된 때는 1936년이다. 대일 항쟁기 일제가 인천부 부역확장 계획을 추진하면서 이칙의 묘역은 서구 석남동 산50번지로 옮겨간다.

정숙공의 증손자인 이희, 이돈 형제의 묘역이 있던 자리였다. 그러나 이곳 역시 1970년 인천시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지금의 당하동 자리로 묘역을 옮겼다.


이칙의 묘역 후면의 전경.


중요한 것은 고성 이씨 집안이 인천에 뿌리를 내리고 지금까지 17대째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14대인 이종윤(李種潤, 1899~1967) 선생은 장면 박사와 함께 박문초등학교 동기로 동경고등공예학교를 마친 뒤 1920년대 선영사를 차렸다.


고 신태범 박사는 저서 <인천 한세기>에서 “선영사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설치한 당당한 신식 인쇄소였다”며 “해방 후 선영사의 시설이 대중일보와 경기매일신문을 제작한 공적은 인천문화를 위해 잊을 수가 없다”고 적고 있다.

그는 “개항 전에 인천 구 시내의 토지는 거의가 화도의 이씨, 송림의 이씨, 무네미의 조씨 세 집안에서 소유하고 있었다”며 고성 이씨 집안을 ‘명가’로 소개하고 있다.

이종윤 선생의 아들 이벽(李闢, 1926~2000) 선생은 1947년 ‘대중일보’에서 언론인 생활을 시작한 언론인이다. 그는 1966년 경기일보가 창간되면서 편집국장을 역임했으나 유신정권의 언론통폐합에 따라 1973년 문을 닫으면서 해직기자가 된다. 그의 두 아들인 이철기와 이훈기는 고성 이씨 16대 손으로 현재 각각 대학교수와 언론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검단에 즐비한 ‘뼈대 있는 집안’의 묘역들
 
이칙의 묘역 말고도 마전·원당·대곡동 등 검단지역엔 여러 개의 명문가 묘역이 존재한다. 우선 시 지정문화재로는 한백륜 묘역(마전동 산 120-4), 김안정 묘 출토 묘비(원당동 810-10), 반남 박씨 대종중 묘역(대곡동 산 151-1), 의령 남씨 종중묘역(원당동 산 82-1), 평산 신씨 종중 묘역(대곡동 산 120-1)이 있다.

아직 문화재는 아니나 오래된 묘역으로는 전주 류씨 묘역(대곡동 산122), 전주 이씨 묘역(대곡동 산 157), 청도 김씨 묘역(마전동 산 16-1), 평산 신씨 묘역(오류동 산 62), 남평 문씨 묘역(불로동) 등이 있다.




검단신도시 조성 한창, 7만5천여 세대 입주 예정


이칙의 묘가 있는 당하동을 포함해 검단지역은 지금 신도시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1995년 김포군에서 인천시로 편입된 검단지역이 대규모택지로 개발되는 것이다.

검단신도시는 당하동, 마전동, 불로동, 원당동, 대곡동 등 검단 전 지역에 걸쳐 46만1900㎡에 조성된다. 검단신도시는 자족·친환경·디자인·문화·에너지절감 도시를 표방한다. 


검단은 지금 신도시조성공사가 한창이다. 당하동 신도시공사 현장의 모습.

7만5071세대가 입주하는 검단신도시가 완공되면 주택수급안정에 따른 수도권 균형발전이 앞당겨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검단신도시는 수도권 서북부 거점벨트를 형성하며 행정은 물론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중이다.

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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