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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전주 경기전에서 태조대왕을 만나다
글쓴이 tntv 등록일 [2016.04.22]

전주 경기전(慶基殿)에서 태조대왕(太祖大王)을 만나다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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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에 있는 경기전(慶基殿)을 다녀왔습니다. 경기전은 조선을 세운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어진(御眞: 임금의 초상화)을 모신 곳입니다. 전주에 경기전을 지은 것은 이곳이 태조 이성계 시조(始祖)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기전은 전주사고(全州史庫)가 있던 유서깊은 곳입니다. 임진왜란 때 전주의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실록과 어진을 지켜내지 못했더라면 조선 500년 역사 중에 절반이 영영 안개속에 묻힐 뻔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입니다.
 
경기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정전(正殿)의 가운데 길을 막아놓고 관람객들이 함부로 올라서지 못하게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는 것입니다. 통상 왕릉이나 종묘(宗廟)의 가운데 길은 신도(神道)라고 해서 선대왕(先大王)의 혼백이 다니는 길로 혼령 전용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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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입구에는 이곳이 여느 관광지와 다른 신성한 공간임을 알리고, 관광객들에게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관람해 줄 것을 당부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곳은 지존(至尊)인 임금조차 함부로 올라서지 못하는 신성한 길인데 요즘 종묘나 왕릉에 가보면 관광객이 마구잡이로 밟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런 안내문이 없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잘 모르고 신도(神道)를 밟고 다니는 것입니다.
 
다행히 경기전에는 ‘신도에 진입하지 마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고, 그에 앞서 입구에는 모든 관광객이 볼 수 있는 자리에 ‘신성한 공간이니 경건한 마음으로 관람해 달라’는 안내 문구가 있었습니다. 조선조에서 같은 신성한 공간으로 취급받던 종묘나 여타 왕릉 유적지에서는 쉽게 보지 못하던 안내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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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본전의 가운데 길은 혼령이 다니는 신도(神道)임을 분명히 알리고, 관람객들이 함부러 이곳에 올라서지 못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조선조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서울의 '종묘'에는 이런 주의사항 안내문이 없다.

태조의 어진(御眞)을 향해 경건하게 묵례(默禮)를 올리고, 경기전 내부를 찬찬히 훑어보았습니다.
 
경기전에 모셔진 태조의 어진은 사실상 조선 초기의 어진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1872년(고종 9년)에 원본을 모사한 것입니다. 현재 태조의 어진은 두 점이 남아 있는데 하나는 바로 경기전의 어진이고, 나머지 하나는 태조 이성계의 고향인 함경남도 영흥 본궁 준원전에 모셔져 있던 것으로, 일제의 총독부가 찍은 흑백 유리 원판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어진은 태조의 비교적 젊을 때 모습인데 현재 북한에 그대로 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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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경기전에 모셔진 태조 어진과 영흥 준원전에 모셔진 태조 어진. 오른쪽이 좀 더 젊을 때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역대 임금의 초상화는 고종과 순종황제를 제외하고 25대 철종 임금까지 단 세 점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태조이며, 그 다음이 영조, 철종 임금의 진영(眞影)입니다. 그나마 철종 임금의 초상화는 3분의 1 정도가 불에 탔기 때문에 온전하게 남아 있는 어진은 두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대 임금의 초상화는 구한말까지 모두 열두 분이 남아 있었는데 일제가 이를 모두 창덕궁 선원전에 모아서 관리하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6·25 전쟁이 나면서 이를 모두 부산의 한 창고로 옮겨 놓았는데 안타깝게도 전란 직후 화재로 모두 소실(燒失)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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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어진과 철종 어진. 철종 어진은 3분의1가량이 소실되었지만, 다행이 얼굴 부분이 그나마 온전하게 남아 있다. 태조와 영조, 철종의 어진이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어진이다(고종과 순종 제외).

당시 화재로 어진을 포함 3400여 점의 국보급 궁중유물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어진의 경우 그 흔한 흑백 사진도 한 장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마 역대 임금의 어진도 살아 있는 임금과 동일시되던 시대라 불경스럽게 함부로 카메라를 갖다 댈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볼 뿐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참배할 마땅할 공간이나 시설물이 없는 종묘와 왕릉
 
제가 왕릉이나 종묘 같은 일종의 참배 대상격인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늘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관람객들이 예의를 표시할 만한 장소가 없거나,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사항을 제대로 안내한 푯말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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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명성황후 생가(生家)를 방문하니, 기념관 벽면에 조잡한 벽화(초상화)가 썰렁하게 그려져 있었다. 황후의 신분을 떠나 순국(殉國)을 하신 분인데 앞에 향을 피울 공간을 마련하거나, 테이블을 두고 꽃다발이라도 놓아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일반 유적지 같으면 상관없지만, 왕릉이나 종묘 처럼 신성하게 취급받던 공간이나, 혹은 기타 참배할 만한 인물이나 사건을 기리는 유적지의 경우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현충원에 가면 호국 영령들에 대한 묵념을 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역대 임금의 신주가 모셔진 종묘에 가면 역대 임금들에게 간단한 예를 표하는 것이 도리입니다(외국에서도 성당이나, 유서 깊은 사원을 방문할 때 관광객들에게 모자를 벗게 하거나 옷차림을 규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막상 종묘에 가보면 방문객들이 향을 피우거나 혹은 간단한 참배라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할 수 없이 정전 뜰에서 간단한 목례를 하고 나오는데, 늘 뭔가 허전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리고 종묘는 역대 임금의 혼령을 모시는 곳으로 조선조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던 곳이었습니다. 마땅히 전주 경기전의 신도(神道)처럼 관광객들이 가운데 길(신도)로 다니지 못하도록 하는 안내문이 상시로 설치되어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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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은 조선조 문화의 산실인 궁궐 관람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 사항에 대해서도 안내받지 못한다. 아무런 주의사항이 없기 때문에 임금 전용로인 어도(御道)를 관광객들이 밟고 다니는 것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때는 답도([踏道: 계단 가운데에 있는 사각형 돌 부분)도 관광객들이 밟고 다녔지만, 요즘은 보존 차원에서 막아 놓았다. 그렇다고 500년 왕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차원에서 막아 놓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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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7대 왕 순종과 비 순명효황후와 계비 순정효황후를 합장한 유릉(裕陵). 우리나라 대부분의 왕릉에는 가운데 신도(神道)로 다니지 말라는 안내문이 없어 관광객이 그냥 무시로 밟고 다닌다. 신도는 임금조차 함부로 다니지 못하던 곳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유적지 안내문에 한자(漢字)가 제대로 없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유적지와 유물은 한자가 없으면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자를 병기 해놓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뜻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어서 좋고, 일본 사람들과 중국 관광객들도 금방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서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가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경기전 내에는 ‘어진박물관’이 있는데, 큼직한 안내판이 있지만 한자를 병기(倂記)해 놓지 않으니까 일본이나 중국 관광객들의 경우 건물 안까지 일부러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조차 없습니다. 전국의 유적지를 다녀보면 이런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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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안내판에 한자(漢字)를 같이 표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어진'이라는 뜻을 일반인이 알기도 어렵지만, 저렇게 한글로만 써놓으면 일본인과 중국인은 건물 안에 들어가 보기 전까지는 이 건물이 무슨 건물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글을 만든 분이라고 동상 주변의 세종대왕 업적을 기술한 부분은 온통 한글로만 도배해놓았는데, 이러한 안내문이 한글로만 되어 있으니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에게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광화문은 수많은 일본인 중국인이 찾는 서울의 상징인 곳입니다. ‘세종대왕(世宗大王)’이라고 한자를 괄호에 병기만 해놓아도 일본과 중국 관광객은 그 동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한 번에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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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동상 뒤편에 새겨진 연보(年譜). 한자가 없이 ‘경자자를 만들다, 병진자를 만들다, 일정성시의를 만들다, 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동국정운을 완성하다’라고 해놓으니 암호가 되어 버렸다. 한글로만 된 연보는 내국인에게는 무슨 뜻인지 모를 암호가 되었고, 일본인과 중국인에게는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연보가 되었다. /사진=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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