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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영화 암살 속 그곳 '백인제 가옥’
글쓴이 tntv 등록일 [2015.12.27]


영화 암살 속 그곳 '백인제 가옥’

전통방식과 일본양식이 접목된 최고급 가옥
가옥 내부와 생활상까지 체험하는 가이드투어



(서울=뉴스1트래블) 사효진 | 2015-11-24 13:33:05 송고
영화 ‘암살’에 나왔던 친일파 강인국의 저택의 실제 촬영지가 북촌 가회동의 ‘백인제 가옥’으로 밝혀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 출처/ 영화 암살 캡쳐 © News1

영화 '암살'에 등장한 북촌의 '백인제 가옥'의 인기가 남다르다. 지금 백인제 가옥을 관람하려면 최소한 5일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지난달 30일 시민들에게 개방된 '백인제 가옥'은 영화만큼이나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백인제 가옥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시스템을 이용해야 하는데, 24일 현재 25일부터 29일까지 예약이 마감된 상태다. 백인제 가옥의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 곳곳을 직접 들어가며, 당시 생활상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백인제 가옥 투어를 직접 찾아갔다.

‘백인제 가옥’은 한옥 12채 합친 부지에 전통방식과 일본양식이 접목되어 당시 조선 시대 최고 권력가, 재력가들이 살았던 최고급 가옥이다.

또한, 북촌 일대 대형 한옥 중 ‘윤보선 가옥’과 함께 오늘날까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가옥 중 하나로 지난 18일 시민에게 모습을 드러내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지난 4월부터 가옥을 건축 당시 모습으로 복원하고, 의걸이 장, 이층 장 등의 전통 목가구와 병풍 등 당시 서울 상류층이 사용하던 생활 집기나 가구들을 전시해 ‘역사가옥박물관’으로 조성했다.

‘백인제 가옥’은 서울역사박물관에 의해 건축 당시 모습으로 복원하고, 당시 서울 상류층이 사용했던 생활 집기와 가구들을 함께 전시해 지난 18일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사진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 News1
영화 ‘암살’에서 강인국의 저택으로 나온 ‘백인제 가옥’은 한옥 12채 합친 부지에 전통방식과 일본양식이 접목되어 당시 조선 시대 최고 권력가, 재력가들이 살았던 최고급 가옥이다. 사진/ 사효진 기자 © News1
안채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전통의 근대 한옥을 보여주며, 가족들이 주로 생활했던 공간이다. 기둥에는 ‘주련’이라 하여 집안이 잘살 수 있도록 하는 좋은 글귀나, 바람들을 써서 걸어놓았다. 사진/ 사효진 기자 © News1
안채는 외부 남성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공간으로 담으로 구분 지어 놨다. 하지만 집안의 남자들은 복도를 통해 왕래할 수 있었으며, 일부 2층으로 되어있다. 이는 전통 한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백인제 가옥만의 특징이다. 사진/ 사효진 기자 © News1
백인제 가옥의 가장 높은 곳에는 별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북촌을 가장 전망하기 좋다. 사진/ 사효진 기자 © News1

사랑채와 안채가 복도로 연결된 ‘백인제 가옥’

‘백인제 가옥’은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 위에 지어졌으며, 2,460㎡(약 744평)에 부지에 이른다. 전통 방식과 일본 양식을 접목해 지은 근대 최고급 한옥이다.

영화에 공개됐던 사랑채를 중심으로 넉넉한 안채와 넓은 정원, 가장 높은 곳에는 아담한 별당채가 들어서 있다.

백인제 가옥을 입구에 들어서면 높은 지대 위의 대문 간채를 볼 수 있다. 대문 간채는 조선 사대부가의 솟을대문 형식을 그대로 채용해 전통 한옥의 격조 높은 대문을 연상시킨다.

1907년 경성박람회 때 서울에 처음으로 소개된 압록강 흑송을 사용해 지어진 백인제 가옥은 동시대의 전형적인 상류 주택과 구별되는 여러 특징을 갖고 있다.

 
영화 암살에 나온 백인제가옥의 사랑채의 내부모습. 사진 출처/ 영화 암살 캡쳐 © News1
사랑채 안쪽에는 병풍으로 포도가 그려져 있다. 이는 다산을 상징해 집안의 자손 번성을 기원했다. 사진/ 사효진 기자 © News1
사랑채는 당시 역대 조선총독부 총독들을 비롯해 당시 권력가들을 초대해 연회를 즐기던 곳이다. 창문을 열면 앞마당이 바로 연결된다. 사진/ 사효진 기자 © News1

먼저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한 다른 전통한옥과는 달리 두 공간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바깥사람과 안사람의 좋은 사이를 대변해 주기도 한다.

또한, 일본식 복도와 다다미방을 두거나 붉은 벽돌과 본채 전면의 유리창을 사용하는 등 일본식 건축 요소가 반영된 근대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특히 안채 일부가 2층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조선 시대 전통한옥에서는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백인제 가옥만의 특징이다.

사랑채 앞쪽의 마당에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가면 주인 개인적인 휴식공간인 별당채에 이른다. 백인제 가옥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건물이며, 높다란 누마루가 있어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고 전망 명소다.

내부를 살펴보면 안채의 대청과 툇마루는 모두 전통적인 우물마루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사랑채의 툇마루와 복도, 사랑 대청은 일본식 장마루 형태로 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가옥의 첫 주인인 한상룡이 일본 고위 인사들을 위한 연회를 염두에 두고 이 건물을 지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건물은 영화 ‘암살’의 강인국처럼 역대 조선총독부 총독들을 비롯해 당시 권력가들을 초대해 연회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별당으로 가는 오솔길에서 내려다본 안채의 뒷모습이다. 사진/ 사효진 기자 © News1
사랑채에서 안채로 갈 수 있는 복도의 모습이다. 이는 바깥주인과 안주인의 사이가 좋았다는 것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사진/ 사효진 기자 © News1
안채 복도 끝에는 2층 다락방이 있는데, 영화 암살에서 배우 이정재가 숨어있던 곳이다. 사진/ 사효진 기자 © News1

백인제 가옥을 고스란히 남겨준 주인은 누구일까?

백인제 가옥이 지금까지 본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주인을 보면 알 수 있다. 실제 백인제 가옥의 첫 번째 주인이자 이 가옥을 지은 한상룡은 일제강점기 시절 은행가였다.

흥선대원군의 조카인 완순군 이재완과 인연을 맺고 일본의 한국 강점 이후 조선 재계의 일인자였던 그는 가회동 일대의 민가를 구입해 1906년부터 저택을 짓기 시작해 1913년 완공했다.

두 번째 주인은 1924년부터 조선일보사의 주주이자 기자였던 민족 언론인 최선익이다. 그는 중앙일보 부사장직에서 사임한 후 한상룡으로부터 가옥을 매입해 1935년부터 1944년까지 거주했다.

세 번째 주인은 백병원의 창립자이자 현재 ‘백인제 가옥’이라는 명칭의 주인인 백인제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르기도 한 그는 국내 최초로 신장 적출 수술에 성공하는 등 조선 제일의 외과 의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41년 백병원의 모태인 백인제 외과의원을 개업하고, 1944년 가회동 저택을 매입하게 된다.

백인제의 부인 최경진이 사실상 가장 오랜 기간 백인제 가옥을 지킨 마지막 주인이다. 실제 가옥의 소유 기간은 1968년부터 1988년까지였지만, 백인제가 매입한 1944년부터 아들 백낙훤이 소유권을 가졌던 2009년까지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백인제 가옥이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사효진 (gywlstravel@)

출처:뉴스 1
http://news1.kr/articles/?2496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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