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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보 제59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原州 法泉寺址 智光國師塔碑)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7.18]

 

 

 

 

 

법천사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984∼1070)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4년(107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지광국사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놓았다. 지광국사탑은 현재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탑비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은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 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독특한 무늬가 돋보이는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면을 나눈 후 그 안에 왕(王)자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 옆면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인데,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바짝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그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


 

고려 선종2년(1085)에 세워진 작품으로, 거북등의 조각수법과 머릿돌의 모양이 새로운 것이 특징이다. 비앞면 가장자리에 덩굴무늬를 새기고, 양 옆면에 정교한 조각을 한 치밀함이 돋보여 형태와 조각이 잘 어울리는 고려시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는 높이가 4.55m이며 고려시대 석비로서의 특징적인 양식을 보이는 걸작품으로 조각 또한 정묘하다.

 

귀부(龜跌)는 넓은 지대석 위에 놓였고 밑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용두화(龍頭化)된 거북머리의 목은 길게 곧추서서 정면을 향하고 목에는 물고기 비늘을 표현했다. 등에는 네모 구획 안에 따로 귀갑문(龜甲紋)을 새겼으며 다시 그 안에 ‘왕(王)’자를 양각했다. 등의 중앙에는 간결한 복련(覆蓮)의 비좌(碑座)를 마련하여 비신(碑身)을 세웠다. 비신의 바깥 둘레에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을 조각하여 돌린 것이 특징이며 양 측면에 쌍룡을 조각한 것도 특이하다. 이수(이首)는 모자를 쓴 듯한 형태이며 네 귀에 전각(轉角)이 뚜렷하고 귀꽃이 있다. 이수 중앙에 상륜부(相輪部)를 두어 보주(寶珠)를 얹었다.

 

지광국사(智光國師)는 고려 성종 3년(984)에 태어났는데 속가명은 해린(海麟)이다. 목종 2년(999)에 용흥사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역대 왕의 우대를 받았으며 삼중대사(三重大師), 승통(僧統)이 된 후 문종 12년(1058)에 국사(國師)가 되었다. 1070년 이곳 법천사에서 세상을 떠났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안민후(安民厚)가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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