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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보 제21호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慶州 佛國寺 三層石塔)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5.15]
▲석가탑 상륜부(왼쪽), 남원 실상사 석탑 상륜부(오른쪽). 
▲석가탑 상륜부(왼쪽), 남원 실상사 석탑 상륜부(오른쪽).

문화재청 설명

탑은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때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 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떠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 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1966년 9월에는 안타깝게도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으며, 그해 12월 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 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다.

탑의 머리 장식(상륜부)은 16세기 이전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3년 남원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37호)의 머리 장식을 본떠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직전에 소개한 다보탑(국보 제20호)과 함께 석가탑(국보 제21호)이 동서로 나란히 서 있다.

이번에 소개할 석가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지난번 다보탑이 과거불인 다보여래였다면 이번 소개할 석가탑은 현재불인 석가여래를 의미한다. 다보탑이 화려하고 아름다웠다면 석가탑은 간결하고 장중한 느낌이다. 다보탑이 첫눈에 끌린다면 석가탑은 '볼매'(볼수록 매력)라고나 할까? 보면 볼수록 감탄스러운 석탑이다.

이후 대부분 석탑은 다보탑을 표준으로, 모범으로, 원본으로 삼아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라 석탑의 전형, 즉 이층기단에 삼층석탑이 바로 이 모습이며, 정식명칭은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이다. 탑을 지은 석공 아사달과 부인 아사녀의 전설을 담아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한다.


천 년만의 석가탑 해체, 보수공사 (2012~2015년 11월)

석가탑은 지난 1966년 9월 사리공 도굴 미수 사건이 있었으며 이때 탑 부재 일부가 훼손돼 10월에 부분 보수가 이루어진 바 있으며 이때 사리장치가 여럿 발견되었으나 그만 2층 옥개석을 떨어뜨려 3층 옥개석이 일부 손상되는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 뒤로 46년 만인 지난 2012년 9월부터 다시 해체 수리에 들어가 원래는 2014년 말에 복원을 마친다고 하였으나 불국사에 확인한 결과 올해 말인 2015년 11월쯤에 마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답변이다.

3년여에 걸친 대공사이다. 이는 지난 2010년 12월 정기 안전점검 때 상층 기단 갑석에서 틈이 발견되면서 결정된 일이기는 하나 석가탑이 세워진 천 년 만에 이루어지는 완전한 해체와 복원과정이니 역사적 문화적으로 뜻깊은 일이며 부디 완벽한 복원 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0년 12월 발견된 균열. 상층 기단 외 여러 곳에서 심각한 균열이 발견되어 보수가 불가피하였다. /문화재청 자료 사진
▲2010년 12월 발견된 균열. 상층 기단 외 여러 곳에서 심각한 균열이 발견되어 보수가 불가피하였다. /문화재청 자료 사진
▲요즘은 문화재 해체, 복원 공사현장도 일반에 공개한다. 투명가설 덧집 설치 그래픽, 물론 현실은 조금 다르다. /문화재청 자료 사진
▲요즘은 문화재 해체, 복원 공사현장도 일반에 공개한다. 투명가설 덧집 설치 그래픽, 물론 현실은 조금 다르다. /문화재청 자료 사진
▲2013년 4월 2일에는 2층 옥개석을 들어내고 사리공을 공개하였다. 1966년 도굴 미수사건 후 47년 만이다. /뉴스화면 캡처
▲2013년 4월 2일에는 2층 옥개석을 들어내고 사리공을 공개하였다. 1966년 도굴 미수사건 후 47년 만이다. /뉴스화면 캡처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 석가탑

답사 다니는 사람들이 통일신라 석탑을 말할 때 '이층기단에 삼층 몸돌'이라고 표현하는데 바로 석가탑이 그 전형이다. 답사 초보는 다보탑에 끌리고, 답사 내공이 쌓이면 석가탑에 매료된다고 하는데 이는 허언(虛言)이 아니다. 다보탑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이형탑이나 화려한 탑들을 보았으나 석탑의 제일은 역시 석가탑이다.

2층 기단의 든든한 하층기단은 물론 묵직한 상층기단이 믿음직스럽고, 그 위로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적절한 체감비율(4:2:2)로 올려 쌓아 상승감이 탁월하며, 10m가 넘는 큰 석탑이지만 보기에 안정적이며 완벽한 균형미를 자랑한다. 통일신라 시대 석탑을 손꼽을 때 감은사 터 삼층석탑과 고선사 터 삼층석탑, 그리고 불국사 삼층석탑을 일컬어 경주 3대 탑이라고 하며 이러한 흐름은 석가탑에서 완성되었다고 본다. 그리하여 이후 석탑들은 석가탑을 모범으로 하여 조금 축소하거나 약간의 장식과 치장, 조각을 보태어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석가탑을 조각했다는 백제의 아사달이 새삼 존경스럽고 궁금하다.

▲석가탑 전경, 아무리 보아도 멋스럽다. 복원 후 모습이 궁금하다.(해체 전 사진)
▲석가탑 전경, 아무리 보아도 멋스럽다. 복원 후 모습이 궁금하다.(해체 전 사진)
사진에서 보듯 각층의 지붕돌 처마는 약간 뾰족해 보이도록 치켜 올려져 보이지만 사실은 빗각 그대로 유지한 채 네 면의 긴 부분을 파내듯 깎아내린 것이다. 참 기가 막힌 석공의 솜씨이다. 또한, 석가탑 주변에는 네모 모양으로 한 바퀴 돌려 8개의 석재 연꽃 대좌를 만들어놓았는데 이는 영취산에서 설법하던 석가모니의 말이 진리라고 증거한 다보여래의 친견을 상징함과 더불어 석가탑의 성역 표시, 안정감 표현 등의 효과 등으로 보인다.
▲팔방금강좌, 8개의 연화 대좌가 석가탑을 둘러 놓여졌다.
▲팔방금강좌, 8개의 연화 대좌가 석가탑을 둘러 놓여졌다.
무영탑(無影塔),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

불국사는 김대건이 지었다고 하지만 석가탑은 당대 천하제일의 석공, 백제의 아사달을 불러와 맡겼다. 아사달이 정성으로 한 해, 두 해 일하는 동안 남편을 기다리다 너무 보고 싶은 부인 아사녀는 아사달을 찾아왔다. 그러나 신성한 성역 안에 아녀자를 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 스님은 꾀를 내어 영지(影池)에 가서 지성으로 빌면 탑이 완공되는 날 수면에 탑의 그림자가 떠오른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림자는 안보이고 그리움은 사무쳐서 아사녀는 못에 몸을 던지고 만다. 뒤늦게 아사달이 달려왔으나 아사녀는 보이지 않고 수면에 웃는 모습만이 어른거려 통곡했다는 전설, 무영탑(無影塔) 이야기이다. 그때 아사달이 새겼다는 석불이 불국사 서남쪽의 영지(影池) 옆에 지금도 놓여 있다.


석가탑에서 발견된 국보급 보물들

앞에서 기술하였듯이 석가탑은 47년 전인 1966년 도굴범들이 사리공을 들어내려다가 일부가 훼손된 채 발견되었다. 부득이 그때 복원과정에서 2층 몸돌의 사리공(舍利孔)을 개방하였는데 뜻밖에도 천하의 보물이 여러 점 나왔으니 녹슨 금동제 사리함과 목제소탑, 동경, 비단, 향목, 구슬 등이었는데 그중 비단으로 싼 8cm 폭 5m 길이의 다라니경은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 국보 제126호)이다. 이로써 금속활자인쇄물 직지심경과 함께 금속활자와 목판인쇄 모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전에 가장 뛰어난 문화를 가진 증표로 내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1966년 도굴범들의 도적질에서 국보급 문화재가 발견되었으니 전화위복이라 해야 할까,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까 하마터면 세계적 국보문화재가 장물이 되어 돌아다닐 뻔했으니 말이다.


상륜부 복원의 아쉬움

불국사는 1969~1973년간에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벌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는데 이때 석가탑을 복원하면서 상륜부는 남원 실상사의 석탑 상륜부를 모방하여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이때의 석가탑 상륜부 복원이 지나침을 아쉬워한다.

물론 실상사 앞마당의 동, 서탑 상륜부가 몇 안 되는 온전한 상륜부로 손꼽혀서 여러 곳에서 모방, 복원한다고는 하지만 석탑의 제작 시기에 따른 제작경향의 차이와 작가(석공)의 철학, 그 밖에도 석탑별로 고유한 특성이 있음을 고려할 때 다소 지나치다는 평이다. 게다가 실상사 석탑이 적어도 백여 년 뒤에 지어져 오히려 석가탑을 보고 세운 것임에야….

때로는 부족하고 모자란 모습의 상륜부가 더 값어치 있어 보인다. 지금 전국에 산재한 모든 석탑의 상륜부를 전부 되살려놓는다면 오히려 문화재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로 보인다. 그저 노반 위에 복발정도, 아니면 두어 개의 보륜 정도가 있더라도 자연스러움이 더 나을 듯하다.

▲석가탑 상륜부(왼쪽), 남원 실상사 석탑 상륜부(오른쪽).
▲석가탑 상륜부(왼쪽), 남원 실상사 석탑 상륜부(오른쪽).
불국사의 대표적 석탑, 다보탑(국보 제20호)과 석가탑(국보 제21호)을 이어서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이형탑과 삼층탑의 원전이다. 지나친 설명과 묘사가 더 부담스럽다. 각자 보고 느껴지는 생각대로 담아두자.
원문보기
http://senior.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3/16/20150316032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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