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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글쓴이 tntv 등록일 [2012.01.24]
 
 
   
 
 
 
   
 
   
 
   
 
   
 


[불교공뉴스=문화] 서울 봉원사 주지이며 영산재보존회 회장 일운스님이 청주불교방송 ‘무명을 밝히고’ 금요초대석에 초대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영산재에 대해 들려주었다. 다음은 진행자 혜철스님과 일운스님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중요무형문화재 50호 영산재 소개부터 듣겠습니다..
1968년 봄에 1600여년을 이어 내려온 종교의식 범패가 잊혀가는 것이 안타까워 서울 경기지역의 스님들이 주축이 되어 봉원사에서 250여 가지 범패소리를 녹음했다. 노스님들이 많이 계시기는 하지만 이렇게 잊혀 가다가는 당대에 범패가 끝나겠구나하는 많은 스님들의 걱정 속에 옥천범음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69년 조직을 해서 초기에는 3개월간을 절에서 숙식을 함께하면서 기본 의식을 익혔다. 그렇게 이어오다가 ’73년에 드디어 봉원사 영산재보존회가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범패라고 하는 의식으로 등록되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87년에 마당종목으로 바뀌어서 금년에 23회 영산재 시연회를 갖게 된다.

◆ 봉원사의 역사와 조계종과 태고종간의 합의내용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봉원사는 신라 51대 진성여왕 3년에 도선 국사가 현재 연세대학교 자리에다 반야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조선시대 영조대왕이 현재에 위치에 옮겨 지으면서 봉원사라고 하는 편액을 하사해서 지금까지 봉원사로 이어져 오고 있다. 많은 중수 중건을 통해서 지금은 서울시내에서 가장 큰 도량으로 도심 포교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조계종과의 관계는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유시를 내려서 불교가 분규될 때 모든 사찰은 조계종으로 등록돼 있었는데 봉원사는 실질적으로 태고종 스님들이 보존하면서 가꾸어 왔다. 그러던 중 양측이 분규를 종식시키고자 하는 마음들이 무르익어서 노력 끝에 해결을 본 것이다. 봉원사 토지가 10만여 평인데 2만여 평은 조계종이 불사에 사용한다는 조건하에 양도하는 것으로 타결됐다.

◆ 협의과정에 하지 못했던 말씀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해주시지요.
내가 14살 때 봉원사에서 입산을 했는데 그동안 불교재산법이라는 몹쓸 법 때문에 살면서 권리행사도 못하고 많은 서러움을 겪었다. 봉원사가 1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조계종에서 자꾸 분규를 일으키고 하다보니까 지금까지 어느 스님들이 와서 풀 한포기 뽑는 사람 없고 기왓장 하나 갈은 사람이 없었다. 조계종에서 현재 큰 사찰은 다 갖고 있는데 봉원사는 영산재의 본산으로 유네스코에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된 사찰인데 종단을 떠나서 한국불교문화 유산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양보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남아 있다.

◆ 2011년 봉원사 사업계획은 어떻게 되는지요?
2009년 9월 30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됐다. 그래서 많은 외국인이 찾아오고 있다. 분규로 인해 아무런 불사도 못했던 것을 금년부터는 전승관불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가 인근에 위치해있어 봉원사와 함께 연계해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면 자연스럽게 포교도 되고 대한민국 관광 사업으로도 좋을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스님들만 영산재를 해야 된다는 것 보다는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학생을 뽑아 일체 작법을 교육시키고 상설 공연장을 만들어서 언제라도 오시는 분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 요사채를 정리해서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는 도량으로 계획하고 있다.

◆ 이번 기회에 정부에 협조라든지 바람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문화재청에 몇 번 요구를 했는데 많은 금액을 줄 수가 없다고 한다. 봉원사 영산재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돼있고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돼 있기 때문에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영산재는 이제 세계의 문화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그러한 불교 의식이면서도 우리의 문화유산이란 것이다. 따라서 세계인들에게 영산재를 보여 줄 수 있는 이런 장소가 꼭 필요하다. 국가에서 이런 것을 지원해 줘야 대한민국이 문화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고 또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영산재 보존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금년에 23회 영산재 시연회를 6월 6일에 한다. 국가를 위해 산화하신 호국영령과 전몰군경 등 일체 애혼 고혼들을 위해서 영산재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연을 한다. 그날은 1년 동안 전수자들이 얼마나 공부를 했나 하는 것을 발표하는 날이기 때문에 영산재 보유자, 조교, 이수자, 전수생, 일반회원 등이 출연한다.
현재 회원이 300여명이 등록돼 있다. 그래서 1년에 4/4분기로 나눠서 모임을 갖고 옥천범음대학에서 재교육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이런 모든 것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곳이 영산재 보존회다.

◆6월 6일 영산재 시연은?
야단법석이면서도 그 자리가 신심을 더 내게 되고 거룩한 재를 모시는 자리에 참석한다는 것에 불자로서 긍지도 느낄 수 있다. 점심도 드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스님들 기도 할 때 같이하면 되고 뒷산에 산림욕을 해도 좋다.

◆ 작년 3월에 올림픽공원에서 봉행한 G20 성공을 위한 영산법회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내가 영산재를 전수 받으면서 가장 큰 행사에 참석한 것이 ’75년에 장충체육관에서 종단중흥발전을 위한 영산재였는데 그 때도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와서 교통이 마비되고 그랬다. 그런데 작년에 G20 성공을 위한 영산법회에도 108명의 영산재 보존회 스님이 바라춤을 추고 나비춤을 추고해서 큰 행사였다. 너무 많이 와서 밖에다가 멀티비전 5대를 설치했는데도 못보고 간 분들이 많았다. 정말 극락세계를 그대로 재연해 놓은 것 같이 장엄하고 엄숙한 의식 이였다고 생각한다.
스님이 108분에다가 무대 감독과 스텝들까지 130여명이 일사불란하게 여러 날을 연습하고 행사를 했기 때문에 성대하게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 저희들은 좌석에 앉아서 즐겁게 잘 보고 왔지만 이 자리를 빌려서 고생하신 스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승려생활을 하면서 법문을 위주로 하는 분도 있고 선방에서 참선을 위주로 하는 스님도 있고 하지만 제가 속해있는 영산재에 있는 스님들은 한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자기희생을 하며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것을 열심히 올곧게 전수하려고 굉장히 애를 많이 쓰시는 분들이다. 그래서 끝나고 공양을 같이하면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지만은 이 자리를 빌려 전국에서 참석하였던 영산재보존회 회원 스님들과 큰 행사를 보기 위해서 전국에서 오신 사부대중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 봉원사 연꽃축제 소개해 주시죠?
서울 시내에 사찰이 많아도 봉원사처럼 마당이 넓은 곳이 없다. 봉원사에서 시민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할 것을 찾다 연꽃축제를 생각해 냈다. 이제는 해마다 큰 고무통 5~600개에다가 연꽃을 가꿔 명실 공히 서울 시민을 위한 연꽃축제가 됐다. 불교방송에서 김병조, 엄용수 같은 분들과 함께 공연도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고 있다.

출처:불공뉴스

‘재齋’의 개념 ‘재’라 하면, 제일먼저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빌거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천도의식薦度儀式을 연상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본래는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님께 공양올림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양은 물질적인 것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공양을 올리는 신자信者와 삼보三寶님과의 공감이다. 즉, 삼보께서 공양에 응應하셨다 함은 곧 중생을 구제하시려는 삼보님의 뜻과 이를 따르려는 중생의 마음이 하나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만, 원願의 내용은 중생에 따라 다르며 재의 형식도 달라진다. 예를 들면, 모든 영가靈駕의 천도를 목적으로 거행하는 ‘수륙재水陸齋’가 있고, 살아가면서 받은 은혜를 빚으로 생각하여 살아있는 동안 이를 갚으려는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가 있으며, 돌아가신 분의 천도를 위해 사후의 세계인 명부冥府를 관장하는 시왕十王에게 공양하는 ‘각배各拜’ 등이 있다. 이에 비해 ‘영산재’는 삼보님께 공양을 올림에 무게 중심이 있다. 외에도 규모를 축소하여 거행하는 ‘상주권공常住勸供’이 있고, 매일 부처님께서 공양을 드시는 시간인 사시(巳時. 9~10시)에 올리는 ‘사시불공巳時佛供’이나 ‘사시마지巳時摩旨’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재齋마다 주제를 달리하고 있지만, 궁극적 목적은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윤회生死輪回라는 고통의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단서를 마련하게 하려는데 있다.

영산재靈山齋의 유래 병病에 따라 처방이 다르듯 의식의 주제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 한 가지 약藥이 공신력을 얻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필요하듯 의식문儀式文도 그렇다. ‘수륙재’의 경우 처방한 사람은 중국의 양무제(梁武帝 464~549)이고, ‘생전예수재’는 석존 재세시在世時 인도 마갈타국의 병사왕(甁沙王. Bimbisara)이 주인공이다. 때문에 수륙재는 중국적中國的이고, 생전예수재는 인도적印度的이다. 이에 비해 이설이 있기는 하지만 영산재는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전제로 할 때 한국적韓國的이라 하겠다. 재의 주제는 다르더라도 공共히 불가결의 의식이 있으니 다름 아닌 삼보님에 대한 공양의식이다. 기존의 의식에는 의식의 주제에 충실한 나머지 간과看過한 이 부분을 대각국사께서 보완·조성하신 것이 영산재다. 따라서 어떤 주제의 의식이든 여법如法히 거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산재로 거행해야 완전할 수 있으니, 한국불교의 우수성이 이로써 증명되는 셈이다. 불교 역시 신앙체계의 하나인 점을 생각할 때 삼보님의 가피加被는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영산재靈山齋의 특징 첫째. 교리적敎理的 특징 영산재의 교리적 중심은 『법화경法華經』이다.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고려 천태종天台宗의 창종주創宗主임을 생각할 때 쉽게 긍정이 간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특징은 원융불교圓融佛敎에 있음이 학계의 통설이듯, 영산재에는 현교顯敎·밀교密敎·정토淨土·선禪은 물론 유교나 도교의 교리까지 이장위종理長爲宗의 입장에서 고루 수용하고 있다. 즉, 영산재는 한반도에 유입된 불교와 인근의 종교를 우리 민족이 어떻게 수용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척도尺度라 하겠다. 둘째. 예술적藝術的 특징 영산재는 일종의 축제祝祭로 이해할 수 있다. 생사윤회로부터 벗어날 단서를 제공하는 법회法會이기 때문이다. 미망迷妄의 세계에서 깨침의 세계로, 사바娑婆에서 극락으로, 중생에서 부처로의 전환을 꾀하는 의식이니 더 이상의 축제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형이상形而上의 문제인 만큼 이를 형이하形而下로 구상화具象化한 것이 영산재다. 이런 목적이 달성되기까지는 단계가 있다. 때로는 이적理的인 면에서 긴장緊張을 조성하고, 때로는 사적事的인 면에서 이완弛緩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를 전체적으로 보면, 도입·전개·절정·결말 등으로 나눌 수 있고, 이들 각 대목의 진행 및 표현 방법으로 성악聲樂·율동律動·기악器樂·장엄莊嚴 등 예술적인 방법이 활용된다. ⑴ 성악적聲樂的 요소 영산재에서 사용하는 성악을 한마디로 범음梵音·범패梵唄라 부른다. 신라의 진감국사(眞鑑國師 774~850)로부터 이어온 유서 깊은 음악이다. 범패의 특징은 랩-뮤직(rap music)과 비교하여 설명하면 다소 이해의 폭을 더할 수 있다. 랩뮤직이 강렬하고 반복적인 리듬에 맞춰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전달함에 비해, 범음·범패는 그 리듬이 장인굴곡長引屈曲하고 유현청화幽玄淸和하다. 즉 하나의 글자 내지 하나의 단어를 길게 끌어가며 굴곡을 이루고, 깊고 그윽하고 맑고 부드럽게 소리 냄으로써 일즉다一卽多의 차원에서 그 뜻을 깊이 있게 반추하며 음미하게 한다. 범패에는 연꽃이 흙탕물 속에 있어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듯 범패는 세간의 소리이자 율동이면서도 속되지 않고 성현의 경지를 넘보게 하는 품위와 아름다움이 있다. 이런 성악은 다시 겉채비와 안채비로 나뉘고, 겉채비는 다시 홑소리와 짓소리로 나뉘며, 안채비는 유치성由致聲·착어성着語聲·편게성編偈聲·게탁성偈鐸聲 등으로 분류된다. ⑵ 율동적律動的 요소 불교의식에는 바라무 舞·착복무着服舞·법고무法鼓舞 등의 무용舞踊이 있다. 이를 한마디로 작법무作法舞라 부른다. 작법무는 종교적 성취도를 높이거나 성취의 기쁨을 몸의 율동으로 나타내는 신업공양身業供養이다. 예컨대 밀교적 요소인 다라니多羅尼는 정확도를 생명으로 하는데, 그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대중이 동음으로 창화唱和하고, 다라니를 가사歌詞로 바라라는 악기를 사용하여 바라무를 거행한다. 또, 의식의 한 단원을 원만히 마쳤을 때도 그 환희로움을 바라무나 착복무로 표현한다. 한편, 영산재는 법계중생이 함께 동참하는 법회인 만큼 천인天人과 수부중생水府衆生의 동참을 착복무로, 축생畜生의 동참은 법고무로, 허공계虛空界 중생의 동참은 바라무로 나타내기도 한다. ⑶ 기악적器樂的 요소 불교의식에서 사용하는 악기를 사물四物이라 부른다. 종류로는 범종梵鐘·법고法鼓·목어木魚·운판雲板이 있으니 이를 대사물大四物이라 부르고, 이를 축소한 요령搖鈴·소고簫鼓·목탁木鐸·광쇠 등은 소사물小四物이라 한다. 대사물은 지옥地獄·세간世間·수부水府·허공虛空의 중생을 운집雲集시킬 목적으로 사용하며, 소사물은 앞서 음악적 요소가 사람의 음성을 사용하는 것이었던 만큼, 박자나 신호信號가 필요한 경우 사용한다. 외에도 영산재는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이 함께 환희하는 법회이기에 취타吹打나 삼현육각三絃六角 등 악기를 동원하기도 한다. ⑷ 장엄적莊嚴的 요소 장엄莊嚴의 의미는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도량道場을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정화하며, 향이나 꽃 따위를 삼보님께 올려 장식하는 일을 말한다. 즉 이렇게 함으로써 정토가 건립되는바, 건립장엄建立莊嚴이라 한다. 석존께서도 『법화경』의 「견보탑품見寶塔品」을 설하실 때, 다보불多寶佛에 공양키 위해 시방분신十方分身인 제불을 보청普請하시면서 세 번에 걸쳐 예토穢土인 사바를 정토로 변화시키셨으니 이를 삼변토전三變土田 혹은 삼변토정三變土淨이라 한다. 즉, 이를 상기한다면 도량의 정화나 장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인류의 문화재로서 영산재靈山齋 종교는 문화현상의 하나이다. 그 역사가 길면 길수록 이해나 접근이 어렵다. 그러나 다행히 의식을 통하면 비교적 쉽게 그 종교의 특성을 알 수 있다. 한국불교의 의식의 정화인 영산재는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또,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하기까지 과정을 생각한다면, 1,6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불교의 모든 것이 농축되어 있다하겠다. 따라서 영산재에는 불교는 물론 이 민족의 얼이 배어있다 해서 지나침이 없다. 그런 이유에서 과거 일제日帝는 총독부령總督府令 ‘제령 제7호 시찰령制令 第7號 寺刹令’ 제7장 법식第7章 法式으로 고유의 전통의식을 금지시켰고, 6·25이후 서구문명의 범람汎濫으로 내 것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이른바 문화단층현상文化斷層現象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에 그 맥을 이어가야 하는 것은 불교계만의 일이 아니라 국가적 사업임을 깨닫고 지난 1973년 대한민국 문화공보부文化公報部는 서울 봉원사 박송암朴松岩 스님 외 2인의 어장魚丈을 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하였다. 이어 1987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로 단체지정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영산재는 필설筆舌로는 다 할 수 없는 인류문화의 보고寶庫임에 이제는 그 전승과 연구에 세계적인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무형문화재이기에 더욱 그렇다. ▶ 글·심상현 동방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 사진·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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