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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은산별신제
글쓴이 tntv 등록일 [2012.04.06]

 

 

 

전통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 마을 신앙

 

여러분은 일상생활에서 위기가 오거나 소망이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우리 조상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민간신앙에 의지하곤 했습니다. 특히, 마을 공동체 단위의 마을 굿은 종교의식이자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서 생업의 피로를 해소하는 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전해지던 많은 마을 신앙들이 현대에 공동체의 해체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마을 굿들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옛 모습을 계승하고자 하고 있답니다.
그 중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된 '은산별신제(恩山別神祭)'에 대해 소개해볼까 합니다.
 


사통팔달의 요충지, 은산을 아시나요?

 

은산별신제는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 전승되고 있는 제사입니다.
은산은 부여군의 북서쪽에 자리 잡아 공주, 청양, 홍산으로 길이 뻗어 있어, 조선시대에는 공공업무를 전달하는 기관인 역(驛)이 설치되는 등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또, 상업이 발달한 18세기에는 은산에 자연스럽게 시장권이 형성되어 이 일대의 경제적 중심지로서도 기능했습니다.

 


대동여지도 은산 부분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이러한 역촌과 장시가 바로 은산별신제가 형성되는 기반이 되었던 것이죠~
본래 은산에서도 대부분의 농촌 마을처럼 마을 공동의 기원 제사인 '동제'를 지내왔습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 상업의 발달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기존 동제에서 모시던 신들 외에 새롭게 장군신들을 추가하였습니다. 아마도 새로운 신을 모시는 제사의 물주가 되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겠지요?
그 결과 은산의 마을 제사는 대규모의 '별신제'로 변모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별신(別神)'은 별도로 모시는 특별한 신이라는 뜻으로, 별신제는 일반 동제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절차도 복잡합니다.

 

 

은산별신제의 신들은 누구?


그렇다면 새롭게 모시게 된 장군신들이란 누구였을까요?
은산별신제의 유래를 다룬 은산 지역의 구비전승을 살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답니다. 잠시 "전설 따라 삼천리" 에 빠져보세요.^^ 

 

 


이 유래담에서 등장하는 패전 장졸들은 백제가 멸망한 후 4년간 나당연합군에 대항했던 백제부흥운동의 장졸들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의 지역민들에게 조선후기까지도 역사의식이 면면히 전해져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은산별신제의 제의 절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까요?  

 

은산별신제는 다른 별신제와 마찬가지로 3년에 한 번씩 지내오다가 중요무형문화재 지정(1966) 이후, 1978년부터는 효율과 편의를 위해 매년 3월에 대제와 소제로 번갈아가며 지내고 있답니다. 보통 대제는 짝수 해에 6일, 소제는 홀수 해에 5일간 진행되고 있는데요. 생략된 절차 없이 은산별신제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대제의 절차를 설명해보겠습니다.

 

 

별신제 준비 단계: 임원 뽑기와 민속신앙의 엄격한 금기사항!

 

은산별신제는 일주일 가까이 진행되는 긴 행사이므로 보름 전부터 임원을 선출하여 철저하게 준비를 합니다. 여기서 '임원' 이란 별신제를 주관할 제관(祭官)들과 무관(武官)들을 말합니다.

제관들은 모두 일체의 부정에 접촉되지 않고 깨끗한 마음과 몸을 지니도록 해야 합니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도 외지에 문상을 나갔다면 별신제가 끝날 때까지 마을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네요. 특히 별신제의 모든 제물을 책임지는 상인의 대표격인 화주로 뽑히면, 집 대문 앞에 금줄을 드리우고 황토를 뿌려 잡인의 출입과 잡귀, 제액을 막도록 합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날까지 매일 찬물로 목욕재계하고 생선, 육류와 같은 비린 것을 먹지 않으며 철저히 근신합니다. 

 

 

 

금줄이 둘린 임원의 집

 

 

무관은 장군제의 형식으로 치르는 별신제의 군사 조직에 속한 임원들로 모두 조선시대의 벼슬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대장은 백마를 타고 위용을 떨치며 제사를 제외한 행사를 지휘하는 역할을 합니다. 

 

 

▲ 보유자 차진용 대장

 

 

그 외에도 무녀, 풍물패, 악공, 나팔수, 기수(旗手), 군사들 등 약 100여 명에서 150여 명 정도의 대인원이 모든 역할이 정해져야만 비로소 장대하고 화려한 별신제의 막이 오릅니다. 

 

은산별신제, 6일간의 이야기

 

별신제가 열리는 은산리에는 은산면의 중심을 가로질러 백마강으로 흘러드는 금강의 지류인 은산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은산별신제는 첫째 날 이 은산천의 물을 봉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 '물봉하기' 의식은 별신에게 깨끗한 물로 제물을 바치기 위한 상징적인 것인데요. 흐르는 물을 어떻게 봉한다는 말인지 궁금하시죠? 그 방법은 바로 왼손으로 꼰 새끼줄인 '금줄'을 치는 것입니다. 금줄은 부정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어서, 금줄 위편의 물은 아무도 쓰지 못하게 됩니다.

 

 

은산천의 물을 봉한 모습

 

 

이렇게 봉해진 은산천의 물로 신령들에게 바칠 '조라술'을 빚습니다. 조라술은 3일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다른 곳에서 흉내 낼 수 없는 맛으로 잘 익는데요. 정성스러운 마음을 신이 알아보고 도움을 주었기 때문일까요?

조라술을 담은 첫째 날부터 사흘 동안은 제관인 별좌가 풍물패를 이끌고 저녁에 임원들의 집과 우환이 있는 집을 방문해 가내 평안을 빌어주는 집굿을 해줍니다.

 

은산별신제의 둘째 날은 군사를 일으키는 날입니다. 대장은 백마에 올라 무관과 군사들을 소집하고 무녀들, 악공들을 뒤따르게 하여 행렬을 이끕니다. 
이날 중요한 행사는 '진대베기'입니다. '진대'는 장승의 곁에 세우는 어린 참나무인데요. 진중(陳中)의 목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거나, 혹은 솟대와 비슷한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봅니다.  진대를 베러 갈 때 옛 병사들의 행군을 연출하는 진대베기 의식은 은산별신제의 군사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십사방기(二十四方旗)를 앞세운 행렬

 

 

셋째 날은 별신당에 올릴 꽃을 받아오는 '꽃받기 행사' 가 있습니다.

 

 

▲ 꽃받기 행렬

 

은산별신제가 진행되는 시기는 아직 꽃들이 만발하기 전이므로, 제상을 장식할 꽃은 지화로 대신합니다.  염색한 한지로 만들어진 연꽃, 국화, 목단 등의 지화는 하당굿 행사가 끝나면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줍니다. 다음 별신제까지 잘 보관하면 별신의 가호로 인해 복이 온다는 꽃이랍니다.

 

다음 날인 넷째 날은 꽃과 제물을 별신당에 봉송하는 '상당 행사'와 별신당의 '본제'가 있는 날입니다. 본제는 산신과 별신에 대한 유교식 제사로 치러지는데요.
여기서 잠깐, 은산별신제는 기존의 동제에서 발달한 것이라고 앞서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시죠? 보통 동제에서 모시는 산신령과 더불어 백제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복신장군과 도침대사를 상당(上堂)의 신으로 특별히 모시는 것입니다.

 

 

별신당 내부의 모습. 가운데는 산신도, 왼쪽은 복신장군, 오른쪽은 토진대사(도침대사)의 영정 

 

 

본제를 모신 다음 날인 다섯째 날, 전날의 제사를 별신이 잘 받았는지를 가늠하는 '상당굿'이 벌어집니다.

별신당 앞의 굿터에서, 복신장군과 토진대사의 슬픈 죽음을 위로하는 무녀의 노래와 춤으로 시작됩니다.
복신장군과 토진대사의 억울한 심정을 담아 무가를 부르는 이때가 바로 은산별신제가 최고의 절정에 이르는 순간입니다. 구경꾼들조차도 자신도 모르게 호응을 하게 된다고 하네요.

 

 


상당굿

 

 

오전에 상당굿을 마치고 오후부터는 마을 한복판의 오래 묵은 괴목(槐木) 아래에서 '하당굿'이 벌어집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시끌벅적한 시장 한복판이었다고 해요. 하당굿은 하당(下堂)의 신인 장승과 다른 여러 신령을 위로하고 먹이는 제의입니다. 이 절차가 끝나면 사람들에게 꽃을 나누어 주고, 별신제를 무사히 치렀음을 기뻐하며 임원들과 무녀, 구경꾼들까지 모두 참석한 한바탕 놀이판이 이어집니다. 

 

 

▲ 하당굿의 놀이판

 

 

마지막 날인 여섯째 날에는 최고 제관인 화주가 산신에게 홀로 나아가 제사를 모두 마쳤음을 고하는 '독산제' 와 마을의 동서남북 사방에 장승을 세우는 '장승제' 가 진행됩니다.
장승은 민속신앙에서 잡귀와 제액을 쫓는 역할을 하는데요. 장승을 깎는 마을 분들의 모나지 않은 성정 때문인지, 위협적이기보다는 어딘가 푸근하고 해학적으로 보입니다.

 


마을 남쪽에 세워진 장승

 

 

이 장승제를 마지막으로 6일간에 걸친 은산별신제의 막이 내리게 됩니다.
  
      

신神이 나고 흥興이 나는 은산별신제

 

지금까지 설명한 은산별신제의 역사와 내용이 보시니 어떠신가요? 대다수가 도시에 거주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전통 민간 신앙의 의식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직접 은산별신제의 구경꾼이 되어 그 한가운데 서 보면 전혀 다른 기분이 드실 겁니다.   '한'을 담은 무녀의 구슬픈 노래, 우리네 심성이 반영된 장승들의 얼굴, 흥겨운 가락에 맞추어 모두가 어우러진 춤마당, 조라술과 복꽃을 다 함께 나누는 모습들…이런 모습들을 보노라면 오래전부터 이어진 민족적 감수성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실 거에요. 전통이란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런 '느낌'이 아닐까요. 이것을 간직하고 되살리는 것이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백제의 옛 수도 부여를 흐르는 백마강은 백제의 온갖 흥망의 역사를 담아 전해왔습니다. 은산리의 은산천도 거기에 하나의 이야기를 더하며 백마강으로 흘러들어 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장의 역사와 정체성, 공동체 의식이 반영된 마을 굿이 오늘날에도 마을 사람들 모두가 참여하고 즐기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은산별신제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2년 올해 은산별신제는 3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간 대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살아 숨 쉬는 전통을 은산리에서 직접 느껴보시면 어떠실는지요?
 
문화재청 제4기 블로그 기자단 전소연이었습니다.

참고 자료 및 사이트

 

문화재청 www.cha.go.kr
국립문화재연구소, <은산별신제 (비디오 파일)>, 2002
이필영, <은산별신제>, 화산문화, 2002
김기덕 외, <한국전통문화론>, 북코리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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