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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이영수 보유자
글쓴이 tntv 등록일 [2012.03.13]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이영수

 

"우리 악기는  마음을 소리로 표현키 위해 만들어진 것"

 

이영수~1.JPG

 청아하고 부드러운 음색의 현악기 가야금. 오동나무 공명판에 명주실을 꼬아서 12줄을 만들고 손가락으로 뜯어서 소리를 내는 가야금은 줄풍류, 가곡반주, 가야금산조, 가야금병창 등 한국음악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가장 대중적인 국악기이다. 가야금의 아름다운 음색은 연주자 한 명의 실력만으로는 절대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 고유의 소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가야금, 악기의 음을 조율하거나 수리하는 장인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봄의 초입,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이영수 선생을 찾아뵈었다.

 

1953년 7월 27일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한국전쟁이 휴전에 들어갔고, 당시 국군으로 참전했던 선생은 다음해 1월 1일 제대를 하게 된다. 이 후 평소 손재주가 좋았던 선생에게 피난 와 가까이 지내던 지인분이 “서울에 아시는 분이 가야금 공장을 열었으니, 취업해볼 의향이 없냐”고 권유해왔다. 가야금 공장에 취업을 하게 된 선생은 한국 고전악기 연구에 공헌을 한 김붕기 선생님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악기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부천에 살고 있었는데, 일본인이 뜯고 있던 고토(琴; 일본의 가야금)소리를 우연히 듣게 됐습니다. 그때 우리도 저런 악기가 있는데…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이 후 계속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때부터 가야금과 저의 운명적 만남이 시작 된 것 같아요” 당시 10대 중반이었던 선생은 우리 음악이 처한 현실을 안타까워했고, 가야금과의 인연은 이후에도 우연처럼 계속돼 결국 선생과 한 평생을 같이 하게 된다.

 

“마음을 소리로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악기에요. 악기를 만들면서 전통 계승의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정성을 들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음을 찾기 위한 욕심도 생기고… 연주자의 입장도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제가 연주자만큼 뛰어나게 연주를 할 수는 없겠지만, 음을 알아야 악기도 제대로 만들 수 있기에 악기들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연주자의 입장에서 제작하는 선생의 악기는 그 품질과 좋은 소리 덕에 우리나라 내노라하는 국악인들 중 선생의 악기를 찾지 않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인기도 많다. 줄이 끊어지거나 소리가 이상한 악기도 선생의 손을 거치면 금세 악기 고유의 소리를 되찾게 된다. 오랜 세월 제작자의 입장이 아닌 연주자의 입장에서 악기를 제작하고 보수했던 선생의 노력 덕인 것이다.

 

이영수~2.JPG 선생은 아쟁, 금, 슬, 해금, 비파 등 국악기 중 현악기는 거의 다 제작하지만, 특히 가야금 제작 분야에서 장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30년 이상 돌산이나 산비탈에서 자란 오동나무를 구해 최소 1년 이상 햇볕을 보여주고, 눈비도 맞혀가며 건조한 후 살아남은 좋은 나무만으로 악기를 제작한다. 최상품의 실을 사용하고, 완성되기까지 2천여번의 장인의 손길이 닿아야만 제대로된 가야금이 탄생하게 된다. 장인정신의 결정체이다.

 

현재 선생의 꿈은 악기박물관을 열어 우리 국악기를 대중에게 널리 소개하는 것이다. 몇 해 전 현재 선생이 살고 있는 용산에 악기박물관을 열고자 알아봤지만 사정이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도 선생은 자신의 가업을 이어 받아 국악기를 제작하고 있는 아들이 있기에 마음이 든든하다고 한다. 얼마 전에 큰 수술을 받아 몸도 편찮으시고, 작년 수해로 지하실 작업공방마저 물에 차 못쓰게 됐지만, 선생의 우리 국악기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만은 대단해 보였다. 어린 나이에 인연을 맺어 선생의 한평생을 바쳐 지켜온 우리 국악기. 선생의 손길이 닿아 통나무가 아름다운 가야금으로 변신하듯 우리 국악기와 국악이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청아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가야금 선율처럼 밝은 미래가 있길 바란다.

출처:문화유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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