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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가 한국인을 강제징용했음을 증명해 주는 문서인 ‘징용령서’(왼쪽)와 ‘징용고지서’(오른쪽). photo 조각난 그날의 기억(강제동원위원회) 발췌 |
주간조선은 정부 부처인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이 “‘일제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시키자”고 먼저 제안해 놓고, 정작 등재 신청 기회가 생기자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에서 이 자료를 제외시켰다는 증언을 확인했다. 주간조선은 이 증언을 국무총리실 소속 정부 기구였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박인환 위원장을 통해 단독으로 확인했다. 박인환 위원장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로 표기)를 2012년 1월부터 2015년 말까지 4년간 이끌었다. 그는 법률가이자 교수이면서 한국인 강제동원 진상 조사·연구에 권위 있는 전문가이다.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는 지난해 문화재청의 제안을 받아 ‘일제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기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던 기관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다가 좌초된 ‘일제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조사 기록’은 총 33만6797건에 이르는 자료다. 2004년부터 2015년까지 11년간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가 발굴·수집 및 기증받아 사실 확인을 거친 일제의 강제 동원·징용의 만행 기록들을 정리해 작성한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 전역에서 저지른 만행과 강제 동원·징용 피해 실체를 확인하고 증명해 주는, 현재 가장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 증거들이다. 특히 일본이 저지른 위안부 실태를 조사해 피해 사례와 일본의 반인륜적 행각을 밝히는 각종 증거 및 피해자들의 육성 증언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사실들로 인해 중국이 수집한 ‘일본의 난징대학살 입증자료’와 함께, 일본이 아시아에서 저지른 반인륜적 만행을 증명하는 정확하고 객관적 증거로 볼 수 있다.
일본 만행 증명한 세계적 증거 자료
‘일제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지 못한 것과 관련해 그동안 알려진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난해 ‘일제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기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추진됐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문화재청이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을 선정하겠다며 실시한 심사에서 이 자료가 탈락했다는 것이다.
‘일제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에서 탈락시킨 문화재청이, 뜻밖에도 ‘이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키자’고 가장 먼저 제안한 정부 부처였다는 사실은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박인환 위원장은 기자에게 여러 차례 “문화재청이 2015년 봄 우리에게 ‘이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자’고 먼저 구두로 제안했던 게 사실”임을 확인해 줬다.
‘일제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기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배경은 이렇다. 2009년 일본이 규슈 야마구치 지역을 ‘근대화산업유산’이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잠정 추천 목록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근대화산업유산이라고 주장한 규슈 야마구치 지역의 실체는 ‘하시마(端島)탄광’이다. 이곳은 한국인 강제징용자들을 감금한 채 강제노동을 시켜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으로 유명한 지옥섬, 바로 ‘군함도’다. 반인륜적 만행의 현장이자 2차 대전 전범(戰犯) 기업이 운영한 전쟁기지다. 2012년 일본은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전문가 위원회를 만들었고, 2013년 9월 일본 정부가 직접 이곳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을 결정했다. 2014년 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센터에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고, 9월부터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심의가 시작됐다. 2015년 5월 군함도에 대한 유네스코의 심의와 권고 내용이 일본에 통보됐고, 5~6월에는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로 한국과 일본이 서울과 도쿄에서 양자협의와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가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의 도쿄회담(6월)도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7월 5일, 결국 일본의 한국인 강제징용과 수탈의 현장이자 전쟁기지였던 ‘군함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일제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기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은 일본이 추진한 이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 성격이 짙다. 일본의 ‘군함도’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에 이어, 등재가 실제로 성공하자 한국 정부의 외교 실패와 협상력 부재에 대한 비난이 폭주하던 상황이었다.
문화재청 “제안 확인된 바 없다” 확인 거부
박인환 위원장은 “솔직히 이건 지난해(2015년) 봄, 문화재청이 우리에게 ‘이거(‘일제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기록’)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자’고 먼저 제안했던 것”이라며 “이건 내부(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와 문화재청)에서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증언했다. 박 위원장은 “(2015년 봄에)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와 문화재청 사이에 있었던 사실”이라며 “문화재청이 문서로 제안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문화재청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구두로 처음 이야기를 꺼냈고, 구두로 제안해 왔다”며 “사전에 구두로 (약속이 된 것)…”라고 수차례 확인했다.
박 위원장에 따르면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도 ‘일제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기록’이 담고 있는 역사적 진실을 전세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생각하던 차였다. 그래서 자료를 분류·정리하는 등 내부 작업을 했고, 자료를 완벽히 정리하기 위해 각 자료들의 사안별 목록 작업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 선정 권한을 가진) 문화재청에서 먼저 “등재하자”고 제안해 온 것이 등재 신청을 본격 추진하게 된 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화재청은 지난해 7월 20일~8월 31일까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대상 기록물’을 공모했다.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는 “‘일제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키자”는 문화재청의 제안에 고무돼 문화재청이 주관한 당시 공모에 참여했다.
그런데 11월 25일 “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내용대로라면 문화재청, 즉 한국 정부 부처가 ‘일제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기록’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먼저 제안하고 추진해 놓고, 정작 등재 기회가 생기자 무슨 이유 때문인지 스스로 등재 (신청) 기회를 포기해 버린 이상한 일을 벌인 것이 된다.
기자는 이와 관련 문화재청에 “‘일제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해 보자는 뜻을 누구에게라도 제안하거나 밝힌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문화재청 대변인실 강재훈씨는 “구두 질문은 안 받겠다”며 “문화재청이 취재 신청서를 기자에게 보낼 테니 취재하고 싶은 내용을 자세히 적어 보내라”고 했다. 문화재청 대변인실 강재훈씨의 요구대로 1월 13일, 이 문서에 다시 “등재 제안·권유”를 한 사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기재해 보냈다. 이에 문화재청 강재훈씨는 서면으로 “사실관계 확인된 바 없음”이라며 질의에 대한 답변을 사실상 거부했다.
문화재청이 ‘일제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진상 기록’을 탈락시키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하겠다고 선정한 것은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