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발 -(Air Asia) (쿠알라룸푸르 환승) (Malindo Air)- 네팔 카드만두 -(Jet Airways) (델리 환승) -(Spice Jet) (바그도그라 경유)- 다르질링 -바그도그라 -(Jet Airways) (콜카타 경유) -(Air Asia)- (쿠알라룸푸르 경유) -(베트남항공) (호치민 환승)- 서울 도착    

 

- (드디어 다르질링 협궤열차에) 싸늘한 아침이다. 두껍게 깔린 산안개 사이로 도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백년은 되었음직한 시계탑은 경쾌한 차임벨과 함께 때마다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준다. 산사태로 오래 끊겼던 다르질링 협궤철도가 최근 연결되어 구간구간 운행을 시작했지만 다르질링-실리구리 전구간을 달리는 열차는 좌석이 없거나 운휴일이다. 대신 다르질링-굼(Ghum)을 왕복하는 증기기관차 관광열차에 오른다. 기관차와 차량은 당연히 수제(手製)다.

 

- 협궤철도의 정식 명칭은 다르질링히말라야철도(DHR, Darjeeling Himalaya Railway)지만 토이트레인(toy train), 조이트레인(joy train) 등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더운 콜카타와 산악 휴양지 다르질링 사이 총 연장 88km 구간을 연결하기 위하여 궤도폭 61cm 협궤 사철(私鐵)로 1881년 개통되었다. 1948년 인도가 독립하면서 인도정부가 매입하여 현재는 인도국영철도 시스템에 편입되었다. 산악철도의 원형이라는 점과 인도 동북부 다문화지역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99년 UNESCO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스위스 Albula Railway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두 건의 철도중 하나다.

 

- (영국인들의 창의력) 당시로서는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는 상태에서 산악지형과 해발고도를 극복하기 위하여 루프(loop, 똬리) 3개소, 스위치백(zigzag, switchback) 6개소 등 온갖 혁명적인 기술을 동원하여 건설되었고 특히 춤바티(Chumbhatti) 지역의 2중 루프와 Agony Point의 루프, Batasia 루프 등이 유명하다. 지금 기준으로는 평범한 기술이지만 당시 기준으로서는 매우 창의적인 철도기술이었으니 철도를 건설한 영국인들의 창의력에 혀를 내두른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중앙선 강원도 원주-신림 사이 치악산과 단양-풍기 사이 죽령에 루프식 터널이 지금도 운영중이다. 영동선 강원도 도계 부근에는 스위치백 구간이 있었으나 몇해 전 우회노선이 새로 뚫리면서 폐쇄되었다.

 

- (다르질링에서 추억에 젖다) 열차가 달리며 내뿜는 매캐한 석탄 연기와 수증기 냄새를 맡는다. 다르실링 철도에 오른 것은 나로서는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다. 40여년전 중학교 지리선생님이 당시 우리나라 협궤철도를 설명하면서 곁들여 알려주신 다르질링 협궤철도는 이후 평생을 가슴에 품어왔던 나의 으뜸 버켓리스트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지리과목을 얼마나 좋아했고 세계를 얼마나 동경해왔던가?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내가 다녔던 중학교에 부임해 오신 지리선생님의 찐빵같던 얼굴이 또렷이 떠오른다. 감격과 추억에 함께 젖는다.

 

- 비록 꼬마열차이지만 건널목에서는 모든 사람과 차량을 멎게 한다. 열차는 인파와 차량 사이를 헤집으며 시장골목을 뚫고 나간다. 속도는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를까말까할 정도이다. 열차는 남의 집 현관문과 담장을 거의 스칠 듯하며 전진한다. 어릴 적부터 열차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지리선생님이 말씀해 주신대로 가끔 우리나라 협궤열차를 일부러 타러 가기도 했다.

 

추억의 수인선 협궤열차

- (우리나라 협궤철도) 사실 우리나라에도 협궤철도가 있었다. 수인선(수원-인천 송도)과 수여선(수원-용인-이천-여주)이다. 소래, 군자 등 서해안 염전의 소금과 이천, 여주 곡창의 일등미를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하여 일제가 건설한 사철이다. 수인선은 수도권 도시팽창으로 1995년 폐선될 때까지 58년간(1937-1995), 수여선은 영동고속도로와 노선이 겹친다는 이유로 1972년 폐선될 때까지 42년간(1930-1972) 다녔다. 지금은 안산, 시흥, 월곶, 분당, 신갈, 동백 등 대도시가 되어버린 곳에 협궤열차가 다녔다는 사실이 까마득한 옛일만 같다. 다만 다르질링 철도가 궤도폭 61cm인 것과 달리 우리나라 협궤철도는 76.2cm였으니 지금 내가 앉아있는 철도가 협궤철도의 진수인 셈이다.

 

- 열차는 곧 바타시아 루프(Batasia loop)에 닿는다. 발아래 방금 지나온 철도가 산허리를 휘감고 도는 모습이 보인다. 선로변 작은 공원에는 이 지역 출신 고르카(Gorkha) 용사들의 위령비가 서있다. 세계 각지 전쟁터에서 사라진 이름들이 뻬곡히 적혀 있다. 언덕에서는 다르질링 시내가 훤히 보인다. 맑은 날에는 멀리 칸첸중가(Kanchenjunga) 봉우리(8,586m)까지 볼 수 있다지만 애석하게도 오늘은 아니다.

 

- (수제 증기기관차) 다시 달린 열차는 다르질링 출발 50분후 굼(Ghum)에 닿는다. 굼 기차역은 해발 2,258m로서 아시아에서 중국 칭하이-티벳 칭짱철도(?藏鐵路) 탕굴라(Tanggula)역 다음으로 높다. 1896년 다르질링 철도를 타 본 마크트웨인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하루’(the most enjoyable day on earth)였다고 감탄했다. 나는 오늘 더는 가지 못하지만 전구간을 달리는 열차는 여기서 실리구리까지 80km, 해발고도로는 거의 2천미터를 내려간다. 열차는 굼에서 30분 쉬고 다르질링으로 돌아간다. 쉬는 동안 승무원들은 기관차에 쌓인 석탄재를 치우고 물을 보충하는 등 분주하다. 돌아가는 길도 열차는 여전히 조심조심 내려간다. 열차 조수는 내리막을 지날 때마다 보조제동장치의 핸들을 열심히 돌리며 기관차의 수고를 덜어준다.

 

- (해피? 밸리) 열차에서 내려 다르질링 시내를 배회한다. 꽤나 멀리 걸어 해피밸리(Happy Valley)까지 간다. 가파른 산언덕을 따라 차밭이 넓게 펼쳐진다. 거친 가지에 핀 차를 따는 것은 여인들의 몫이고 그렇게 딴 찻잎을 지게로 실어나르는 것은 남자들의 몫이다. 보기야 아름답지만 차밭에는 이렇게 고단한 노동이 기다린다. 해피밸리? 멀리서 보면 푸른 차밭이지만 정작 가까이 와보니 결코 해피해 보이지는 않는다.

 

- (시킴 턱밑까지 가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스탠드에서 무작정 인근 마을 바담탐(Badamtam)행 짚에 오른다. 운전기사 수바는 네팔어, 힌디어, 영어에 벵갈어까지 구사한다. 이 정도는 여기서 대수로울 것 없다고 겸손해 한다. 바담탐가는 길은 무척 가파른 비포장도로를 한참 내려가며 히말라야 산악도로의 진수를 보여준다. 주위는 온통 차밭이다. 방금 본 해피밸리의 차밭은 여기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차밭 전체가 어느 영국인 개인의 소유라니 할 말을 잊는다.

 

- 바담탐에서 몇 발짝 더 가면 시킴(Sikkim)이고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중국이다. 서쪽으로는 네팔, 동쪽으로는 부탄도 매우 가깝다. 지구상 오지 중 오지, 참으로 멀리까지 왔다. 시킴(Sikkim)이 바로 저 앞 산너머라는 말에 어릴 적 들었던 시킴왕국 얘기가 문득 떠오른다. 시킴왕국은 19세기까지 영국보호령으로, 이후에는 인도보호령으로 있다가 1975년 주민투표로 왕정이 폐지되고 인도의 한 주로 합병되었다. 인도의 시킴 합병에 따라 남걀왕은 평민으로 강등되었고 그의 미국인 아내는 미국으로 망명길에 오른다. 1960년대 초반, 미국 헐리웃 여배우 출신 그레이스켈리(Grace Kelly) 모나코 왕비에 이은 또 하나의 신데렐라 탄생으로 세계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바로 그 시킴 왕비 말이다.

 

- (즉흥 초대) 바담탐에 도착하여 운전기사 수바는 나를 마을내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즉흥 초대인 것이다. 그가 집에 들어서자 어린 딸이 ‘아빠’라고 외치며 반긴다. 네팔어로 아버지는 '아빠‘, 어머니는 ’아마‘라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멋진 집과 멋진 가족, 타타(Tata) 자동차의 고급 SUV 수모(Sumo)까지 가진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수바는 돌아가는 나에게 귤과 과자 등 먹을 것을 잔뜩 챙겨준다. 참 멋진 세상, 아름다운 세상이다. 호텔로 돌아와 다르질링의 두 번 째, 그리고 마지막 밤을 맞는다. 산중도시는 일찍 잠들어간다. 두어 시간 전까지 울려대던 꼬마 증기기관차의 기적도 멎은지 오래다. 때맞춰 울리는 시계탑의 차임만이 거만하게 밤의 적막을 깬다. 노스탤직한 밤이다. 번잡한 생활 속에서 쌓인 크고 작은 시름도 함께 묻힌다.

 

 

- (네팔 고르카 용병의 본산) 복잡한 시장거리를 지나 버스스탠드를 향하여 걷는다. 이 변방 산골짝에도 사람이 정말 많다. 13억 인구 대국이 빈말이 아니다. 가는 길에는 유달리 고르카 관련 단체와 기관들이 여럿 눈에 띤다. 고르카인들의 본거지인 이곳은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네팔왕국의 영토였으나 1815년 고르카인들이 영국과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영국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고르카(Gorkha) 네팔 용병은 현재 영국군과 인도군에 파견되어 있다. 세포이 반란 평정에 참가해 영국을 도운 인연으로 영국은 지금도 매년 400명씩 충원하고 있고 근무가 끝난 후에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영국 거주 지위까지 부여한다. 고르카는 연 5천만달러씩 본국에 송금하고 있다.

 

- (난개발 실리구리) 험준한 산악도로 주행 세 시간 후 쉐어드짚은 실리구리(Siliguri)에 닿는다. 실리구리는 벵갈 북부 지역의 교통과 교역의 허브 역할을 단단히 한다. 서쪽 10km에는 네팔 국경, 동북쪽 40km에는 부탄 국경, 북쪽 180km 지점에는 중국 국경, 그리고 남쪽으로는 방글라데시가 지척인 전략적 요충이다. 네팔, 부탄, 방글라데시의 관문이자 동북부 산악지역으로 통하는 길목이다. 이름하여 Siliguri Corridor(실리구리 회랑) 또는 ‘Chicken's Neck'... 인도 본토와 동북부 지역의 각 주를 연결하는 매우 좁은 회랑에 위치한다. 그런 만큼 인구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붐타운이다. 인구 51만, 광역으로는 70만, 명실공히 모든 인종, 모든 문화, 모든 언어가 만나는 야릇한 지역이다.

 

- (정신없는 인도 여행) 지난 한 주일 네팔 카트만두부터 다르질링까지 산악지방의 난방없는 겨울밤에 시달리다가 따뜻한 날씨를 만나니 살 것 같다. 한국을 떠날 때부터 달고와서 지난 한 주일 코 끝에 맴돌던 감기도 함께 떨어져 나간다. 따뜻한 날씨는 반갑지만 난개발된 도시에서 호텔을 찾느라 결국 같은 곳을 몇 바퀴 맴돌고 말았다. 중간에 잠깐 이용한 뚝뚝은 목적지를 코앞에 두었는데도 300루피(5,400원)를 달라기에 즉시 세워 10루피 던져주고 내렸을 정도였다. 선진국 한국에서도 중국인 여행자를 상대로 인천공항에서 서울시내까지 60만원을 받아챙긴 택시기사가 있을진데 인도에서 이 정도면 차라리 애교다. 인도 여행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때로는 버럭 소리를 질러서라도 터무니없는 사기꾼들을 제압해 버리는 것이 한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