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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3.1절 마다 떠 오르는 "34번째 민족대표 석호필 박사"....제암리 학살 사건과 석...
글쓴이 문화재방송.한국 등록일 [2021.03.01]

 

 

국립 형충원 애국자 묘역에 안장된 석호필 박사, 외국인으로는 유일 무이

 

 

 

3.1절 마다 떠 오르는 "34번째 민족대표 석호필 박사"

 

[데일리안 김선영 기자]문화와 정보의 홍수로 글로벌화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매년 한 번씩 나라에 대한 경외감과 주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기념일이 있다. 바로 삼일절이다.

매년 돌아오는 3월 1일은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족의 단결을 굳게 하며, 국민의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로 우리나라 4대 국경일의 하나이다.

 
◇ 3.1절 기념 동판화

그러나 세대가 바뀌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날이 갈수록 국경일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는 안타까움을 직면하게 된다. 비단 3.1절 뿐만아니라 8.15 광복절과 한글의 날 등 국민들 의식속에 국경일은 단지 달력속의 빨간날짜이자 하루종일 게으름을 떨수 있는 날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다시금 태극기 사랑하기 같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여러가지 프로그램과 운동이 시기적절하게 펼쳐지고 있는데 숨어있는 애국자의 재조명과 같은 것도 유익한 사회운동이라고 생각된다.

올해로 88주년을 맞이한 3.1절을 앞두고 네티즌들이 한창 열광해 하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석호필'이라는 애칭을 가진 배우 마이클 스코필드가 출연하는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드라마로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은 형을 구하기 위해 일부러 감옥에 가서 탈출극을 벌이는 동생의 이야기이다.

그가 이처럼 열광적인 인기를 누리는 까닭은 극의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과거 '맥가이버'라는 캐릭터 뺨치게 머리가 좋아서 감옥을 신출귀몰하게 탈출하는 내용만이 아니라 '석호필'이라는 애칭이 한몫 톡톡히 하고있다.

 
◇ 생전의 석호필 박사의 모습

석호필이란'스코필드'라는 영문 이름을 한국식으로 읽은 데서 유래한 것인데 실은 근래에 화제가 되고 있는 스코필드 박사(Frank W. Schofield, 1888~1970.4.12)의 한국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기미년 3월 1일 대한민국의 민족운동이자 힘없는 백성들이 나라를 강점하고 있던 일제에게 무력으로 대항했던그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한사람의 독립투사였고 민족의 대표였다.

독립선언서를 선포한 민족대표 33인에 석호필박사가 새롭게 재조명 되면서 '33인이 아닌 34인'이라는 역사의 증명과 함께 3.1절에 방영될 다큐멘터리도 준비된 것으로 알고 있다.

1919년 3·1운동의 '34번째 독립운동가'로 꼽히는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세균학 전문 의료선교사를 자원, 한국 땅을 밟았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 및 위생학을 가르치면서 이상재 이갑성 오세창 등 독립 운동가들과 교류, 3·1운동에 적극 참가했다. 그는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을 펼치고 있는 민중과 일제의 만행을 사진으로 찍어 해외에 알렸다.

유관순 등이 갇혀 있던 서대문형무소를 직접 방문하기도 한 그는 이듬해 3·1운동 목격담인 '끌 수 없는 불꽃'을 해외에서 출판하려다 출국 직전 암살당할 뻔했다.

그는 카메라와 펜으로 무장하고 한국의 독립과 일제 강점기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다. 1920년 조선총독부 당국에 의해 강제출국을 당할 때도 총독에게 청하여 옥고를 겪고 있는 이상재·이갑성·오세창 등 독립지사를 일일이 면회하고 격려했다고 한다.

강제 추방된 그는 캐나다로 돌아간 뒤 한국 상황을 알리며 1955년까지 토론토 병원에서 일했다. 해방후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1969년 한국에 영구 귀국, 서울대 수의대에서 강의하면서 사비를 털어 장학금으로 쾌척하는 등 후학을 위해 많은 헌신을 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최초로 묻힌 유일한 외국인이다. 그는 고아들을 돌보고 독재 정권에도 항거했으며 1970년 지갑과 여권만을 유품으로 남긴 채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정부는 그에게 대한민국 문화훈장(1960)과 건국훈장 독립장(1968)을 추서했다.

 
◇ 외국인으로서 유일하게 국립묘지에 안장된 석호필박사 ⓒ 연합뉴스

석호필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온통 마이클 스코필드의 정보만 인터넷을 점유하고 있지만 똑같은 이름의 석호필이 3.1절을 맞이해 재조명되면서 서구화 개인화 되는 21세기의 대한민국 국민 가슴에 시누대처럼 시퍼런 애국심이 돋아나길 바란다.

3.1절 이날 만큼은 태극기에 경건한 마음을 담아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과 의지로 지켜온 대한민국을 생각하며 잠시 순국선열들을 위해 작은 기도라도 올려보자./ 김선영 기자

 

 

3.1운동의 성지 제암교회와 석호필 박사




일본의 잔학성은 독일 나찌보다 더 했다.

1919년 4월 15일, 제암교회를 잊지말고 기억하자!

이 날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일본 군대와 경찰들에 의해 제암리 주민들이 총칼에 찔려 잔인하게 학살당하고 불태워진 사건이 발생했던 날이다. 그 역사적인 곳은 바로 제암리 예배당, 제암교회다!

약 20년전 처음 방문한 이후로 오늘이 두번째 방문이다.

입구에 태극기와 프랑카드가 게양되어 있어 3.1절 분위기가 난다.

제암교회의 입구 맨 앞쪽 중앙 쯤 되는 위치에 '3.1운동 순국 기념탑'에는 다음과 같이 일제의 잔학상이 기록되어 있다.

기념탐 그 오른편으로 20년 전에는 보이지 않던 조형물이 보였다.

카메라를 손에 든 석호필 박사(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의 동상이다. 옆에는 자전거가 한 대 조형물로서 함께하고 있다.

석호필 박사의 동상(전경)

석호필 박사의 동상

석호필 박사의 동상

석호필 박사의 동상

석호필 박사의 동상 옆으로 부가적인 해설이 담겨있는 부조가 있었다.

해당 부조에 담겨있는 내용들을 소개한다.

부조를 바라다 보았을 때 맨 왼쪽으로 부터 오른쪽으로 차례대로 사진을 촬영했다.

내용에는 석 박사의 약력과 업적이 한글과 영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3.1운동과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는 내용이다.

다음으로는 석 박사가 조사했다는 제암리 대학살의 전말에 대한 보고서 내용이다.

석판화라고나 할까? 그림으로서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기념탑 뒷쪽에는 '3.1정신교육관'이 있다.

아쉽게도 문이 잠겨있어 내부는 관람하지 못했다.

역시 기념탑 뒷쪽에 있는 조형물.

위 조형물 왼쪽으로 제암교회 본 건물인 '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관'이 있고, 현관문 옆에 또하나의 작은 기념탑이 더 있었다.

(제암교회/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우리 민족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아직도 미완의 과제를 안고 있다.

독일 나찌의 전범들을 재판했듯이 일본 천황 및 잔학행위를 한 전범들을 제대로 재판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매국노들과 일본의 앞잡이들, 하수인들에 대한 명확한 재판이 있었어야 한다.

1945년 5월 8일 항복한 독일의 경우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세계 평화를 깨뜨리고 특정 민족을 잔인하게 대학살한 아돌프 히틀러에 대하여 1945년 11월 20일 부터 열린 국제군사재판소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형법 제250조 전체를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함으로써 그나마 독일의 역사를 바로잡기에 그 기초를 다졌다. 현재까지도 도피 중인 전범들을 공소시효없이 추적하여 단죄 중이다.

그 결과 일본과는 달리 국제사회에 대한 반성을 천명하였고, 진정한 명예를 되찾고 선진국 대열에서 떳떳하게 활동한다.

지금도 독일의 총리들은 국제사회에 대하여 자신들의 역사적 잘못을 인정하고 명확하게 사과를 표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 지도자들은 102년이 지난 지금도 정반대다.

원문보기 https://blog.naver.com/skywello/22094628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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