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의 청렴과 무능
성현成俔이 지은 《부휴자담론浮休子談論》 권4 우언寓言에 나오는 글이다. 성현은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은 물에 떠도는 것 같고[浮], 세상을 떠나는 것은 잠시 쉬는 것[休]과 같다.”며 자신의 호를 ‘부휴자’로 하였다. 동곽선생이 청렴한 것으로 명성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에서 중모군中牟郡을 다스리게 하였다. 청렴한 동곽 선생은 부임한 이래 사사로운 일로 손님을 접견하지 않았으며, 뇌물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리고 식구들은 절약하며 검소하게 살도록 단속시켰으나 자기 휘하의 아전들에게는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을은 부역賦役하는 사람들로 항상 소란했으며, 관청의 곡식창고와 재정은 날로 열악해져 갔다. 이러니 고을을 찾은 빈객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모두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혹자가 그 이유를 부휴자에게 물은 것이다.

성현은 가상인물 동곽 선생의 이야기를 통해 선비는 당연히 청렴함으로 자신과 집안사람을 단속해야 하지만 남을 다스리는 목민관의 청렴은 개인적인 청렴과 절약, 검소의 단계를 넘어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에게 경제적인 이익과 혜택을 두루 미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성현은 군왕의 도리에 대해서도 백성이 편안하게 살지 못하는 까닭은 백성 스스로 편안하게 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임금의 정사가 백성들을 편안하게 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며 군왕의 인치仁治와 덕치德治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성현은 《용재총화》와 《악학궤범》을 지어 국문학사와 음악사에서의 업적이 크기 때문에 그가 청백리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보면 “성현은 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예조판서?대제학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대공文戴公이며, 청백리淸白吏로 뽑혔다.”고 한다. 또한 태조 때부터 영조대까지 186명의 청백리 명단을 수록한 《청선고淸選考》에서도 성종대 청백리의 한 분으로 밝히고 있다. 성현의 성격에 대해 실록에서는 “성격이 허심탄회하여 꾸미지 않았으며, 생업을 일삼지 않고 오직 서적을 가지고 놀았다. 문장에 능하고, 건실하여 오랫동안 문형文衡을 맡았는데, 《허백당집虛白堂集》 등의 저서가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외에도 《풍아록風雅錄》, 《주의奏議》, 《금낭행적錦囊行跡》, 《풍소궤범風騷軌範》, 《상유비람桑楡備覽》, 《경륜대궤經綸大軌》, 그리고 《부휴자담론》과 다수의 시문집 등 15세기 성종 연간의 관료 문인 가운데 가장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강원도와 평안도 관찰사로 나아가다
그는 자신의 학문 연마 뿐 아니라 인재양성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사서》, 《오경》의 보급을 건의하여 관철시키기도 하였다. 성현은 46세 때인 1484년(성종15년)에 강원도관찰사의 외직을 나아갔는데, 학자 관료답게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서책을 장만하기 어려운 각 고을의 생도들을 위해 중앙정부에서 교재를 간행하여 보급함으로써 각 고을의 인재양성을 돕도록 요청하였다.

2년 후에는 다시 평안도관찰사에 전보되었는데 중앙정부에서 양전量田 사업 추진을 위해 수십 명의 관리가 나와 농사일에 지장을 초래하자 중국사신이 왕래하는 길목으로 평소에 평안 도민들이 사신 호송과 접대에 대한 고충도 만만치 않다는 것과 국경지역이라 해안가 도적떼를 막아내기 위한 방수防守의 위험에, 설상가상 이 지역 토질이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으며 남쪽지역과 달리 기온이 낮아 수확도 많지 않은 지역이라는 평안 도민의 열악한 환경을 구구절절이 거론하며 “백성이 넉넉하지 못하면 임금이 누구와 함께 넉넉하겠습니까?” 하며 중앙정부 시책이라도 지역민들에게 적절하지 않은 정책이라면 중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의 상소를 올려 중앙관리들의 미움을 사기도 하였다.

성현은 1493년(성종23년:55세)에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 그러나 성현은 음률에 정통하여 장악원제조掌樂院提調를 겸하였기 때문에 외직으로 나아가니 장악원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에 한 달 만에 예조판서로 되돌아와 유자광柳子光 등과 함께 조선 음악을 집대성한 《악학궤범》을 편찬하였다.

성현은 연산군이 즉위한 후에 한성부판윤을 거쳐서 공조판서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대제학을 겸임하고, 1504년에 《용재총화》를 저술한 후에 죽었다. 그러나 갑자사화가 일어나서 부관참시(剖棺斬屍, 죽은 뒤 큰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 극형을 추시하던 일.) 되기도 했다. 그러나 반정 후에 신원되었다. 성품이 소활하여 구애됨이 없었으며, 남과 경쟁하지 않은 선비였던 성현은 죽음을 앞두고는, “내가 임금의 은혜를 입어 벼슬이 육경에 이르렀으되 칭찬할 만한 덕이 없다. 장례는 검소하게 하고 표석이나 세우고 비는 세우지 말라.” 며 청렴함을 유언으로 남기었다고 한다.

예문, 청문, 탁문, 청백리 조사수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연려실기술》에 인용된 〈청백리록〉에 의하면, 중종이 궁궐 안뜰에 세 개의 문을 세워 청문淸門, 예문例門, 탁문濁門이라고 이름을 지어 붙였다. 청문은 모든 행동거지와 정신이 맑고 깨끗한 사람만이 통과하는 문이고, 예문은 보통사람이 통과할 수 있도록 했다. 대부분의 백관이 예문으로 들어갔으나 단 한 사람 조사수 대감만이 당당하게 청문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거나 이상하게 여기는 이가 없을 정도로 청백리로 인정받았던 관리였다.

조사수趙士秀(1502년:연산군8-1558:명종13)의 본관은 경기도 양주楊州이며, 자는 계임季任, 호는 송강松岡이다. 1531년(중종 26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을 지내고 1539년(중종 34년)에는 추고경차관推考敬差官이 되어 성주사고의 화재 원인을 조사하였다. 그 뒤 제주목사?이조참판 등을 거쳐, 대사성?대사간?대사헌?경상도관찰사 등의 직책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다시 이조?호조?형조?공조의 판서를 거쳐, 지중추부사?좌참찬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성주사고 화재의 진상을 조사하다
1538년(중종 33년) 실록을 보관하던 경상도 성주 사고에 화재가 나《태조실록》부터 《연산군일기》가 모두 전소되었다. 성주사고에 화재가 일어난 일주일 후 경상감사 강현姜顯은 사건의 전말을 중종에게 보고했다. 기관 여환呂還과 감고監考 배귀손裵貴孫이 불을 때고 잤는데 담장 밖에 불씨를 끄지 못해 성주사고가 전부 불타 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중앙의 고위관리들은 경상감사의 보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성주사고가 불타게 된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성주의 유력인사들을 서울로 압송하는 한편, 경차관을 파견해 관련자들을 조사했다. 이때 경차관으로 파견된 사람이 바로 조사수이다.

성주로 내려간 조사수는 고지식한 그의 성격대로 주민 백여 명을 감옥에 구류한 채 조사를 하여 추위에 백성들만 고생시킨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40일간의 조사와 세 차례의 심문 끝에 관노 종말從末과 아들 말이末伊의 실토로 사건은 수령을 무함하려는 음모가 아닌, 사고 처마 끝에 모여 있는 산비둘기를 잡기 위해 휘두른 횃불의 불씨가 사고 창문 안으로 들어가 일어난 사고였음을 밝혀내며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물론 현지 성주 수령은 사고 소실의 책임을 물어 파면되었으며, 소실된 실록은 곧바로 춘추관 본을 토대로 다시 제작되어 성주사고에 보관케 하였다.

제주 도민의 어버이로서의 소임을 다하다
1540년(중종 35년) 조사수는 제주목사에 발령이 났다. 지금은 제주도가 선망의 섬이지만 조선시대 제주도는 왕의 통치와 은혜가 미치지 않는 곳이라 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큰 곳이었다. 따라서 제주 목사로의 발령은 유배와 같은 좌천으로 여겼다. 더욱이 성품이 깨끗하고 문장으로도 명성이 있는 조사수가 이곳으로 발령 나자 모두가 의아해 했다. 하지만 조사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 건너 멀리 떨어져 있는 오지에서 발생하는 관리들의 전횡과 왜인들이 자주 드나들어 국가 방어에 문제가 있음을 자세히 보고하였다. 덕분에 제주도 방어문제로 노심초사하던 임금을 안심시키고 청백리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조사수가 제주목사로 있을 때 주고받은 시집 《영해창수록》이 있는데 당시 제주지역의 의식주 등의 생활상과 지역 풍광에 대한 감상과, 목사로서의 지역 방어를 위한 고민 등을 담고 있어 16세기 제주도 사회상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연구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청백리 록에서 제 이름을 삭제해 주소서
명종 원년(1546년) 대사간으로 있던 조사수의 청렴함을 인정하여 청백리에 이름을 올리자 그는 “소신의 천성이 본래 잔약하고 어리석어서 남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남들이 혹시 주는 자가 있으면 받아서 먹기도 하였으니 대단히 청렴하지 못했습니다. 국왕께서 너그러이 용납하시어 탐리貪吏를 면하게 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데 사실과 달리 넘치는 이름을 얻고 보니, 이는 신이 하늘을 속이는 죄를 받을 뿐만 아니라 청명한 정치를 지향하는 신정新政에도 누가 될 것이 두려우며 몸둘 바를 몰라 저도 모르게 이마에 땀이 맺히고 등에도 땀이 흐릅니다. 청백리의 이름을 삭제해주소서” 라고 하였다. 이에 명종은, “청백리란 예부터 드문 것이다. 경의 행실은 온 조정이 잘 알기 때문에 천거한 것이니 사양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의 강직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한두 가지 일화를 더 들면, 그가 출근하는 길 옆에 진복창의 집이 있었는데 당시 진복창은 윤원형의 심복으로 을사사화 때 사림을 숙청하는데 앞장섰다. 이러한 진복창의 위세를 두려워한 대부분의 관리들은 늘 허리를 굽히고 그를 대하였다. 하지만 조사수는 3년 동안 진복창의 집 앞을 지나다니면서 한 번도 집에 들러 인사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심연원沈連源이 수상으로 영경연사이고, 조사수가 지경연사로서 함께 입시하여 경연에 참여하였다.

당시 토론의 주제가 호사스러운 집에 대한 것이었는데, 조사수는 상관 심연원이 사랑하는 첩의 집이 지나치게 커서 도리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공직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라며 심연원을 논박하여 진땀을 빼게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심연원은 손님 접대를 자제하는 한편, 자신의 잘못을 지적한 조사수에 대해 고마워하고 오히려 이조판서에 천거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상관이라 할지라도 관리의 잘못을 바로 지적하는 조사수의 강직함과 이를 선의의 충고로 받아들인 심연원의 자세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글ㆍ박한남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사진ㆍ한국중앙연구원, (주)도서출판 한길사 <임형택, 우리 고전을 찾아서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