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 마지막 옹주, 덕혜
덕혜옹주,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짠한 마음이 든다. 조선왕실의 옹주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야 했건만 시대적 상황에 휩쓸려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낸 그녀를 떠올릴 때마나 마음 한구석이 아파 온다.

덕혜옹주는 조선왕조 마지막 국왕인 고종과 양귀인 사이에서 1912년 5월 25일 태어났다. 고종은 환갑의 나이에 얻은 딸이라 남다르게 사랑하기도 하였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시기적 상황 때문에 덕혜의 재롱을 보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조선왕실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의 시작과 함께 몰락하며 대부분 잊혀져 갔는데 수 년 전부터 각종 출판물과 전시회, 그리고 방송 등 각 분야에서 어두웠던 우리의 역사와 함께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여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특히 덕혜옹주는 그녀의 평탄치 못했던 일생으로 인해 불운한 마지막 옹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소장 경위와 주요 유물
일본 도쿄에 있는 문화학원은 1923년에 문화재봉여학교로 창립된 이래 복식 교육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는 교육기관이다. 부속기관인 복식박물관은 1979년 개관하였으며 일본 복식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등 각국의 민족의상을 2만여 점 소장하고 있는 복식 전문 박물관으로서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박물관에는 우리나라 유물도 소장되어 있는데 약 200여 점으로 고대의 장신구를 비롯한 복식류뿐만 아니라 바느질 도구, 경대, 옷상자 등 다양한 유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덕혜옹주가 착용했거나 소장했던 유물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유물들은 문화여자단기대학(현 문화여자대학)의 제2대 학장을 역임했던 도쿠가와 요시치카(川義親 1886~1976)가 박물관에 기증했던 것이다.

덕혜옹주 관련 유물은 도쿠가와 요시치카가 조선 왕가로부터 기증받은 것으로 1956년 1월의 기증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한국복식은 이덕혜님의 것임(이근[영친왕]의 여동생이고, 故 이태왕[고종]의 딸)
1. 당고의(소례복)
1. 평소복
1. 은수저 2  포크 2
1. 유아복   
1. 어린이 나막신
이상 기증합니다.
소화 삼십일년 일월  
이가李家

이것을 보면 조선의 왕족 중 누군가가 도쿠가와에게 기증하였고 그것을 도쿠가와 가 다시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에 일괄 기증하여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박물관에서는 이 유물들을 귀중한 자료로 보관하긴 하였으나 유물의 착용자나 왕가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1983년 8월에 동양복식연구원 김영숙 원장이 본격적인 조사를 하여 최초로 덕혜옹주가 착용했거나 소장하고 있던 복식이라는 것을 밝혔으며, 박물관에서는 이 때 처음으로 조선 왕가로부터 기증받은 유물들이 덕혜옹주와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덕혜옹주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시행하고 있는 해외소재 한국문화재 조사사업의 일환으로 2008년 11월에 복식박물관에서 실물조사와 촬영을 실시하여 결과는 보고서로 발행되었다. 덕혜옹주와 관련되었다고 전해지는 유물은 예복인 당의, 스란치마, 대란치마와 평상복인 저고리와 두루마기, 그리고 아동복과 수저집, 경대 등의 장식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궁중의 소례복小禮服
궁에서는 정월, 추석, 동지 등의 명절과 탄신일, 결혼식 등 일년 내내 크고 작은 많은 의례를 거행한다. 국가의 작은 의식 때 입는 옷을 소례복이라고 하는데 여성의 대표적인 소례복은 당의이며 조선시대의 각종 발기에는 당고의唐古衣, 당저고리唐赤古里, 당의복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문화학원 복식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가장 으뜸인 것은 당의로, 현존하는 옹주의 당의로는 유일하며 보존상태도 거의 완벽하다. 당의는 모두 3벌이 소장되어 있는데 각각 크기도 다르고 재질이나 특성도 다르다. 먼저 돌 무렵에 입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가장 작은 당의는 문항라로 지었는데 홑으로 지어 얇고 가벼운 하절기용 당의이다. 당의의 가슴과 등,

그리고 양 어깨에는 오조룡을 금박올린 보가 달려있는데 보는 왕, 왕비, 왕세자나 공주 등 직계 왕족만이 달 수 있었던 일종의 계급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오조룡은 발톱이 다섯 개 있는 용을 뜻하는데 오조룡은 황제, 사조룡은 왕, 삼조룡은 왕세자 등 지위에 따라 용의 발톱 수가 달라졌다고 하나 영친왕의 자적용포에도 오조룡이 있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 후기에는 용의 발톱 수에 큰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 또 문항라 당의와 한 벌인 홍색 스란치마가 있다. 겉은 숙고사로 하고 안은 진분홍색 명주로 지은 겹 치마로 스란단에는 갖가지 길상무늬를 부금한 화려한 치마이다.

5~6세용의 당의는 겉은 도류불수단으로 하고 안은 홍색 명주로 지은 겹당의이며 보는 달려 있지 않다. 수壽, 복福 그리고 다양한 길상무늬를 부금한 화려한 당의이며 한 벌로 착용하였을 다홍색 모본단 스란치마와 남색 화접문단 대란치마가 함께 소장되어 있다. 덕혜옹주의 어릴 적 사진에는 당의 차림의 사진이 몇 장 남아 전해지고 있다. 1916년 5살 무렵에 당의에 스란치마, 대란치마를 착용하고 화관을 쓰고 삼작노리개를 차고 있는 사진에서 옹주의 소례복 차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의 가운데 가장 크기가 큰 것은 도류불수문사와 홍색 생고사로 각각 홑으로 지은 당의를 겹으로 합친 두벌당의이다. 당의에는 오조룡을 여러 가지 색사로 수를 놓은 보가 달려 있으며 크기로 보아 12~14세용으로 짐작된다. 다홍색 숙고사 스란치마와 남색 운보문사 대란치마가 일습으로 남아 있다.

정교한 왕실 장식품
붉은 색 주칠을 하고 옻으로 가장자리와 무늬부분을 칠한 경대가 있는데, 경대의 상부 전체와 전면 손잡이 및 모서리 부분에는 백동 장식을 부착하여 미적인 조화와 견고함을 고려하여 제작하였다. 경대 안에는 붉은 색 한지에 궁서체로 품목을 적은 목록이 있는데 ‘니사(실) 4종, 사기그릇(화장품 그릇) 7종, 면빗 6개, 진스(머릿기름) 7개, 빗치개 1개’로 적혀 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분합 2, 솔 2, 부용향 1, 그리고 미지美脂 1개로 목록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기증서에 언급되어 있는 은수저와 포크는 다홍색의 비단에 태극팔괘, 수복壽福을 금박올린 수저집에 담겨 있는데 조선왕실의 상징인 오얏꽃 무늬가 자루에 새겨져 있다. 1876년 구미 각국과 통상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선진문명에 접하게 되면서부터 궁중의 음식문화에서도 변화를 일으켜 서구식 은수저 및 포크 등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해외소재 한국문화재 소장처의 정보공개의 소중함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덕혜옹주와 관련된 유물들은 대한제국 황실의 복식문화와 뛰어난 침선장들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유물들이며 특히 당의는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옹주의 옷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유물들이 비록 일본에 소재하고 있으나 문화학원의 배려로 모든 자료가 공개되어 유물에 대해 상세한 부분까지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유물을 가까이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으나 공개된 자료는 복식뿐만 아니라 공예, 민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글· 사진 박윤미 경상대학교 의류학과 강사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출처:월간 문화재 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