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를 수 없었던 운명

“전쟁통에 폭격으로 남편을 보내고 자식 둘을 잃어버렸지. 혼자 힘으로 남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어. 그러다가 많이 아팠는데 폐병이라 다들 못 산다고까지 했어. 돈이 없어 약 한 첩 못 써보고 있었지. 그러다 내가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내 신어미가 쌀 일곱 가마니를 걷어 내림굿을 하고 나니 몸도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지더니 병도 나았어.”

오수복 예능보유자의 나이 서른한 살 때의 일이다. 그녀는 신내림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작 신어미 이갑오 만신을 모시기까지 했지만 무녀가 되지 않기 위해 친정으로 도망을 가기도 했다. 일 년여를 장사를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만, 누가 아픈 사람이 마을에 있으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불안하여 직접 그 집을 찾아가 음식을 차려놓고 치성을 드려 주면 사람들의 병이 신기하게도 나았다. 결국 거부할 수 없는 운명으로 무녀의 길을 걷게 되지만 이 길은 그녀를 지금의 경기도도당굿의 예능보유자가 되게 하는 예정된 운명이었다.

신명과 예술이 함께하는 도당굿

오수복 예능보유자는 신어미인 이갑오 만신과 함께 경기도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도당굿에 참여를 했다. 또 이갑오 만신 이후에는 경기도도당굿 명인 이용우 스승에게 굿의 법도와 그 속에 녹아 있는 예술성을 갖춘 기예와 재주를 배우게 된다. 두 스승에게서 그녀는 강신무(신내림을 받은)의 일반적인 굿과, 경기도도당굿의 굿을 동시에 익혔다.

“그땐 굿이 많았어. 경기도 시흥, 수원, 깊은 산골도 가고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길을 헤치면서도 굿을 하러 가서 밤새 이틀 굿을 하곤 했지. 서울도 제집 문턱 드나들 듯 참 많이 갔어. 이용우 선생은 군웅굿을 참 잘했어.”

옛일을 회상하는 오수복 보유자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너무도 또렷이 신명나는 굿판이 재현되는 듯하다.

경기도도당굿은 다른 굿판과는 달리 볼거리가 참 많다. 굿이 진행되는 거리거리마다 다양한 예술성을 갖춘 춤사위와 노랫가락이 있고 전통적으로 화랭이들이 굿의 사이사이에 좌중과 함께 자신의 입담과 몰이로 흥을 돋우기도 한다. 그래서 단순한 대동굿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굿을 위해 가가호호 쌀을 걷고, 떡을 찌고, 소머리를 삶아 굿에 쓰일 음식을 장만했다. 밤새 장작불을 피워놓고 추위를 녹여 가며 당주집을 시작으로 집집마다 축원을 해주고 날을 세워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그야말로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는 마을축제의 한마당이었다. 그 속에서 오수복 예능보유자는 특히 무병장수와 자손번창을 바라는 제석굿과 성주풀이, 그리고 대국에서 조선해동으로 모시는 노정을 표현한 것으로, 화랭이들이 한사람씩 나와 무녀와 함께 쌍을 이루어 추는 군웅굿을 잘했다고 한다. 특히 노년에는 굿의 시작에서 부정한 기운을 없앤다는 부정굿과 시루말이, 그리고 군웅굿을 주로 맡아서 하곤 했다.

또 다른 스승과 제자의 만남

경기도도당굿의 특징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신명나고 예술성이 있는 소리와 춤사위이지만, 굿판에서의 무녀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전수 받고자 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고 완벽하게 소화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경진 이수자는 오수복 예능보유자의 둘도 없는 제자인 셈이다.

“운명이었는지 1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서울의 공연장에서 선생님을 뵈었는데 그 춤사위와 노랫가락이 예사롭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선생님을 알게 되고 보니 선생님 댁이 제 남편 법당이 있는 건물 다음 골목이었어요. 그 후로 이년 가까이는 내 일을 팽개치고 무조건 선생님 집으로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도당굿 연마에 온 시간을 보냈죠. 그래서 10~15년을 걸려 배울 것들을 5년여에 걸쳐 모두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선생님께 없어서는 안 될 제자요, 가족인 셈이다. 매일이다시피 선생님의 의식주를 돌보고 안부를 챙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 6년 전부터는 오수복 예능보유자가 몸이 불편한 관계로 그 뒤를 이어 도당굿판의 어디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스승과 많은 이에게서 실력을 인정받은 이수자이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경기도도당굿은 굿이 진행되는 열두 거리마다 굿의 근본부터 역사를 두루두루 소리로 전해주며, 그 가락이 단조롭지 않고 그 거리가 어느 거리인지를 좌중이 모두 이해하고 동참하는데서 다가가기 쉬운 굿이다. 그래서 굿을 행하는 시간도 많이 걸린다.

“시대가 많이 변했어. 예전에는 굿은 굿대로 하고 민요를 하는 기생들도 오고 짓궂은 장난도 많고 참 재미있었지. 한 달에 사흘이나 제대로 밤잠을 잤을까 몰라. 요새는 굿이 별로 없어. 이제는 이틀씩 잡아서 밤을 새는 굿도 없지. 그래도 올 정월에 했던 평동 도당굿엔 사람들도 많이 오고 좋았어.”

시대가 많이 변하긴 했다. 그래서 사라지고 변하는 것도 많다. 경기도도당굿도 예외는 아니다. 그 진정한 풍류와 예술성이 가미된 장시간의 굿은 이제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볼거리가 더욱 다양해진 공연문화와 바쁜 일상들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이 하루걸이 굿으로 바뀌고 공연장에서 행사로 진행되기도 한다. 오수복 예능 보유자는 도당굿은 언제까지나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이젠 여든여섯의 노년의 나이로 굿판에 직접 서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그간 정월보름에는 평동 도당굿 신갈박물관을 다녀오고 4월말이나 오월초에는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공개행사에서 굿판을 벌일 예정이다.  또 영동거북당과 부천 장말 도당굿이 10월에 펼쳐진다.

인터뷰 도중 갑자기 오수복 예능보유자의 손길이 주방에서 바빠졌다. 손수 취재인들을 위해 밥을 지어놓으셨단다. 없던 시절 못 먹었던 기억 때문에 방문객에 꼭꼭 눌러 담은 밥을 대접하신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맑은 하늘이다. 마치 정든 할머니를 뵙고 나온 듯 가슴이 훈훈하다.  

 
글·박양숙  
사진·최재만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