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협회 하늘을 빙빙 도는 독수리들

작년과 올해를 잇는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천연기념물 제243-1호 독수리들은 유난히 고단한 계절을 나고 있다. 연이어 터지는 우리나라 자연계의 악재 - 구제역, AI 등 - 에 생명의 활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파가 한 달 가까이 몰아치다가 소복하게 내린 아침나절의 눈 덕분에 포근한 오후를 누릴 수 있었던 어느 날. 독수리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탈진한 상태로 보호협회에 떨어졌다.

우리나라는 동북아시아 중에서 겨울철새가 월동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예부터 농경문화가 기본 바탕으로 깔려 있었기에 겨울철새들의 먹이가 풍부했고, 월동 과정에서 자연사하는 개체수가 있어 기본적으로 500마리에서 700마리 가량의 독수리가 자연적인 상태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호협회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돼지고기나 사고를 당한 고라니들로 독수리의 끼니를 챙긴다. 탈진이나 부상, 그 외의 여러 가지 이유들로 보호협회에서 기력을 되찾고 있는 독수리들이 고기를 뜯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보호협회의 하늘은 독수리 천지가 된다. 시각은 물론이고, 먹이를 찾기 위해 발달한 후각 덕분에 민통선 안에 있던 독수리들이 날아드는 까닭이다. 설상가상으로 민통선이 통제되는 바람에 사람의 발길은 묶였고, 독수리들의 하늘길만 열려 있다.

세계 최대 월동지인 장단반도에서의 긴 여정
독수리는 동북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번식하다가 먹이 부족,개발로 인한 번식 제한으로 지금은 몽골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일부 지역이 번식지로써 기능을 하고 있고, 그곳의 추운 겨울을 피하기 위한 독수리의 월동지가 바로 우리나라다.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보내는 독수리들은 대체로 몽골에서부터 그 여정을 시작한다. 몽골에서의 주요 번식지는 올란바토르에서 서남쪽으로 2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초원지대와 하천과 소금 호수들이 분포하는 고비사막지대 등이다. 번식지에 겨울이 찾아오는 10월 경. 아직 추위에 약한 유조들의 대 이동이 시작된다.

너른 초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나 암벽 위에 나뭇가지 들로 둘레를 쌓고 그 안에 잔가지와 풀, 동물의 털 혹은 깃털로 폭신하게 자리를 깔고 독수리들은 딱 한 개의 알을 낳는다. 약 50~55일 가량의 포란 기간을 거쳐 작디작은 한 생명이 태어난다.

처음엔 듬성한 회색털만 있을 뿐 꼬리깃털은 없다. 부화 후 30일 가량이 넘어서면서부터 아기들 베넷머리 빠지듯 회색털이 빠지고 비로소 갈색털이 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둥지에서 100일 가량을 보내면, 성조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해 둥지를 떠날 시기를 맞는다.

그렇게 둥지를 떠난 독수리는 성조가 될 때까지 매년 우리나라를 찾는다. 몽골에서 출발하여 중국의 라오닝성, 북한의 수풍발전소를 거쳐 우리나라의 각 월동지에 도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독수리들의 월동지로서 그 의미가 남다른 것은 대체로 유조들이 오기 때문이다. 어떤 생명에게든 가장 중요한 시기일‘유년기’를풍요롭게 보내야만, 그것이 독수리의 개체 수를 안정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월동지에서의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몽골에 다시 돌아갈 숫자도, 후년에 또 다른 유조가 내려 올 숫자도 더 늘어날 테니까 말이다. ‘자연의 청소부’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독수리는, 다른 수리과와는 다르게 사체만 먹는다. 먹이를 먹을 때 죽은 동물의 뱃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가장 좋아하는 내장을빼먹는 과정에서 바이러스나 병균으로 인한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머리쪽 털이 없거나 짧다. 태양열을 통해 자연스레 그것들을 없애기 위한 방법이다. 또한 사체를 먹는 특성 때문에 빠르게 비행하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발의 힘도 약하다. 다른 수리과 새처럼 발의 힘으로 먹이의 숨통을 끊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독수리들이 월동했다는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나긴 시간 동안 자신들의 특성을 잃지 않고 현재까지 사람과 가까이에 있는 상징적인 동물로써 존재하고 있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과거에 고급 활을 만들 때 독수리 털을 이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독수리 털로 공기저항을 최대한 받지 않고가장 멀리 날아갈 수 있는 활을 만들었던 것이다. 관아에서는 적절한 숫자의 독수리 털을 세금으로 징수하기도 했다.

우리 민족과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하고 있는 독수리. 그렇기에 자연스레 독수리에게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상징들이 덧입혀졌다.사체를 먹는 맹금류의 특성으로, 샤머니즘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옛 사람들은 독수리를 통해서 혼이 된 넋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승과 저승의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다. 독수리 번식지의 중심지인 몽골에서도 예부터 조장鳥葬이 행해졌던 것도, 바로 이러한 상징 때문이다. 옛 사람들의 사유를 담아내고 있는 그릇과도 같은 생명체 독수리. 그렇기에 독수리의 문화재적 가치는 무척 소중하다.

기존의 독수리 먹이터는 개성공단으로 통하는 전기선로가 배치될 수밖에 없었던 행정적인 상황 때문에 새로운 먹이터 지정이 최우선되어야 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 중단됐었지만, 올해부터 재추진하고 있다. 이렇듯 국가의 정책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간의 공조다. 독수리의 번식지와 월동지는 갈수록 제한적으로 좁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중심으로 한 천연기념물 보존 협력 축이 구상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 내에서도, 월동지를 분산시키는 활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은 파주와 철원 등지에 대부분의 독수리들이 몰려 있는데 이것은 환경적으로도 좋지 않다. 드넓은 창공 위에서 생과 사를 연결 짓고 있는 우리의 천연기념물 독수리. 그만의 독특한 생태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가 언제까지라도 우리의 사유를 상징하는 매개물로써 그 위풍을 지켜나가기를 조심히 바라본다.

글·박세란 사진·최재만 자문·한갑수 한국조류보호협회 파주지회장, 백운기 문화재 전문위원, 국립중앙과학관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