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외국인들도 인천에서 생활하다가 질병이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에는 시신을 자국으로 운반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유언으로 아예 이 땅에 묻히길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외국인을 조선인 묘지에 묻는 것은 여러 정황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외국인들은 묘지를 따로 마련했다. 그곳이 지금의 북성동 구릉이었다. 당시에는 바닷가에 접한 한적한 땅이었다.
 

▲청학동 외국인묘역 정문​​

묘지를 바닷가에 자리 잡았던 것은 언젠가는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묻히리라는 간절한 바람이었리라. 훗날 그 영혼들이 바닷바람 따라 자신들의 고국으로 잘 돌아갔는지 문득 궁금하다.
 

▲청학동 시절 외국인 묘지​​​

외국인 묘지에 처음 매장된 사람은 미국 상인 조지 버트 모트로 였다. 그는 1883년 7월 10일에 묻혔다. 이후 이곳에 66기의 묘가 조성되었다. 그중 1기는 합장묘이기에 모두 67명이 잠들었다.

16기는 묘비도 없이 무덤만 있다. 국적과 이름을 알 수 없다. 인적 사항이 파악된 50명 가운데 41명이 남성이다. 국적은 영국 13명, 미국 12명, 독일 9명, 프랑스 3명, 이탈리아 3명, 러시아 2명, 일본 2명 순이다. 이밖에 캐나다, 호주, 스페인, 중국인도 1명씩이다.
 

▲외국인 묘지의 독특한 묘비​​

직업은 상인과 해관원이 많으며 해군과 상선 선원도 있다. 인천이 개항장이자 항구 도시라는 특성이 드러난다. 선교사는 영국인 랜디스와 프랑스인 장 바티스트 마라발, 조젭 마라발 등 3명이다. 외교관은 서울 주재 미국 영사였던 앨버트 허치슨이 유일하다.

북성동 묘역에 가장 마지막으로 묻힌 이는 1962년 7월 17일에 안장된 미국 군인 브래드포드 여진이었다. 대부분 해방 이전에 이곳에 잠들었다. 광복 이후 매장된 것은 5기다.
 

▲청학동 외국인 묘지의 전경​​​

외국인 묘지는 1941년 다시 변화를 맞는다. 당시 일제는 묘역의 동쪽에 있던 인천역 부지를 확장하기 위해 묘역의 규모를 9000㎡로 줄였다.

6·25전쟁 당시 일부 묘소가 파괴되거나 유실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일부는 도굴되기도 했다.
 

▲이장 후 청학동 묘지​​

이후 1965년 도시계획에 따라 청학동 산53-1번지 일대로 이전했다. 당시에는 도심과 많이 떨어진 한적한 교외 지역으로 청량산의 끝 줄기 양지바른 곳이었다. 필자는 이곳에 가끔 들렀다.

철문 빗장을 열고 묘지로 들어서면 들꽃과 잡새들이 한가롭게 반겼다. 우리 묘와 달리 봉분 없이 십자가와 묘비만 세워져 있는 것이 외국영화에서나 봤음직한 묘지 풍경이었다.

철십자가, 돌십자가, 십자가와 묘비는 사자(死者)의 국적과 종교만큼이나 다양했다. 묘지 곳곳에는 돌벤치가 놓여 있어 언뜻 보면 집 근처 작은 공원의 모습이었다.

100년 넘은 묘비들은 비바람에 깨지고 씻겨 새겨진 글씨조차 희미했다. ‘여기 맥카시 부부의 사랑스런 딸이 잠들다’ ‘주는 나의 빛이시니라’ 묘비마다 죽은 자들이 생전에 어떻게 살았는가를 엿볼 수 있는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시설이 들어서지 않은 청학동 묘지​​

2000년대 들어서 청학동 외국인 묘지는 관리가 어렵고 주민들의 이전 민원 등이 제기됐다. 몇 년 전부터 묘지가 간다만다 하면서 찬성과 반대 의견이 엇갈렸다. 

한쪽 주민들은 혐오시설로 간주했고 다른 한쪽은 문화재 시설로 봤다. 연수구는 이 땅에 ‘숲속 어린이집’과 ‘생태박물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인천가족공원 내 외국인 묘지​​​

인천시는 2016년 10월 외국인 묘지를 부평의 인천가족공원 내 외국인 특화묘역으로 이전을 결정하고 2017년 5월 이전을 완료했다. 7개국 주한 대사관 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이국적인 합동 안장식을 열였다.

이장을 하면서 답동성당 주임 신부로 봉직했던 조셉 마라발과 그의 동생 장바티스트 마라발 형제의 묘소를 2017년 8월 인천 서구 당하동으로 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