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다시 걸어보고서 ⑮ 폐선된 축항선
문득, 그곳은 안녕하신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기억 속에서 다소 멀어진 인천의 공간들이 있다. 넓은 공간을 쓱~ 한 번에 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점을 다시 걸어보고자 한다. 걷다 보면 점(點)은 선(線)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모이면 다시 넓은 면(面)을 싹~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시 인천, 걸어서 쓱~싹~이다. (편집자 주) |
“땡땡땡” 우렁차게 종소리가 울린다. 녹음된 이 종소리가 차단기를 대신한다. 기차보다 먼저 나타난 철도원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다. 도로를 달리던 차들이 멈춰 선다. 순간 모든 게 정지화면이 된다. 그 화면을 뚫고 기차가 굉음을 내며 나타난다.
인천역 뒤편 만석고가 아래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이 철길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전동 객차가 아니라 화물 디젤 기관차가 화차를 길게 달고 오고 갔다.
▲하루 서너 번 다니던 석탄 열차
도심을 가로지르는 이 모습이 신기해서 ‘운행 시간을 알아내’ 사진 찍으러 오는 출사족들이 많았다. 출사족뿐만 아니라 차단기 소리, 호루라기 소리, 기차 덜컹거리는 소리 등이 좋아서 일부러 구경 오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안전 철도원들이 근접하는 것을 강력하게 제지하지만 바로 옆에서 철도를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었다.
길게 이어진 열차로 가던 길이 막혀도 차 안에서 여유롭게 기차 지나는 모습을 ‘감상’하는 운전자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이렇듯 이 기차길은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전동기관차가 아닌 디젤 기차 운행
이 기차는 매일 하루에 서너 번 인천항을 오고 갔다. 석탄을 옮겨 나르던 화물열차였다. 이 선로의 이름은 축항선(築港線). 축항은 부두를 뜻한다. 인천 남항 석탄부두로 수입된 유연탄이 이 선로를 통해 전국 각지의 화력 발전소나 제철소, 시멘트 공장 등으로 수송되었다.
▲소설 ‘중국인 거리’에도 등장한 석탄열차
이 축항선은 소설가 오정희가 쓴 ‘중국인 거리’(1979년)에도 등장한다.
‘드디어 화차가 오고 몇 번의 덜컹거림으로 완전히 숨을 놓으면 우리들은 재빨리 바퀴 사이로 기어 들어가 석탄가루를 훑고 이가 물어진 문짝 틈에 갈퀴처럼 팔을 들이밀어 조개탄을 후벼 내었다. (중략) 선창의 간이음식점 문을 밀고 들어가 구석 자리의 테이블을 와글와글 점거하고 앉으면 그날의 노획량에 따라 가락국수, 만두, 찐빵 등이 날라져 왔다. (중략) 어쨌든 석탄이 선창 주변에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있는 현금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고, 때문에 우리 동네 아이들은 사철 검정 강아지였다.’
소설가 오정희는 1955년 조양석유(주) 인천출장소 소장으로 취직한 아버지를 따라 충남 홍성에서 인천으로 이사했다. 신흥국민학교 2학년으로 전학해 5학년을 마칠 때까지 약 4년간 인천에 살았다. 그때 동네 근처를 오가던 이 석탄 화물차를 보고 소설에 녹인 것이다.
▲제 1부두 정문 앞 축항선 철길
지난 7월 31일 업무차 인천 항동의 옛)세관창고를 방문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제1부두 정문 앞을 지나는 철도를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데 정문 근무자로부터 귀가 번쩍이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이 철길로 기차가 다니지 않을 거예요. 어제 마지막 기차가 지나갔어요.”
축항선이 실제적으로 운행을 중지했다. 남항 석탄부두에서 하역된 유연탄 화물 발송의 계약이 종료돼 더 이상 석탄 열차가 축항선을 탈 일이 없어진 것이다.
▲축항선 위를 지나가는 월미바다열차
석탄부두는 1988년 11월 30일 남항의 남쪽 끄트머리에 완공되었다. 이 부두는 말 그대로 순전히 수입된 석탄을 전용으로 취급하는 부두였다. 내륙의 발전소나 시멘트 공장으로 들어갈 석탄을 나르기 위해 철도를 활용했다.
한창때는 이 부두에서 출발하는 석탄 열차만 하루에 네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간 하루 한두 편 정도의 열차가 이 철도를 이용했다.
▲축항선과 이웃한 제 8부두
▲인천일보 길 건너편에 있는 축항선 조차장
이미 축항선의 폐선은 남항 석탄부두의 폐쇄 예정으로 몇 해 전부터 중단 예고가 돼 있었다. 매년 석탄 운반선이 싣고 온 130만t 가량의 유연탄을 하역한 석탄부두는 인천 구도심의 대표적인 환경오염원으로 꼽혔다. 이제 강원도 동해항 석탄부두가 2023년 이후 이를 대체할 예정이다.
▲옛 남부역 인근 철길
철도는 태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1899년 경인선의 첫 기적 소리가 인천역에서 있었던 이후 인천에는 여러 갈래의 철길이 생겼다. 주로 화물열차가 운행되었던 철길은 공장 이전과 물류의 변화 그리고 도시 개발로 인해 폐선이 되었다.
옛 수인선(남인천역∼소래역), 동양화학선(남인천역∼동양화학), 주인선(남부역∼주안역), 북해안선(인천역∼인천제철), 부평군용철도(3보급단∼부평역) 등은 이미 지역에서 사라진 철길들이다. 현재 기차가 운행되지 않거나 아예 철길이 뜯겨 나간 상태다.
누구에는 소설로, 누구에게는 사진 한 장으로 남은 축항선의 화물열차는 이제 사라졌다. 여전히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는 우리 가슴 깊숙이 잔향으로 남아 추억의 열차를 타게 한다.
글· 사진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