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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문화유산 답사기]해피엔딩 전설로 조성된 묘역... 능어리 영일 정씨 묘역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5.14]

해피엔딩 전설로 조성된 묘역

발간일 2020.05.13 (수) 16:07
          


인천, 다시 걸어보고서
​ 

능어리 영일 정씨 묘역


문득, 그곳은 안녕하신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기억 속에서 다소 멀어진 인천의 공간들이 있다. 넓은 공간을 쓱~ 한 번에 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점을 다시 걸어보고자 한다. 걷다 보면 점(點)은 선(線)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모이면 다시 넓은 면(面)을 싹~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시 인천, 걸어서 쓱~싹~이다. (편집자 주)

 


연수구 동춘동은 인천의 대표적인 아파트촌이다. 빼곡한 아파트 사이를 지나 청량산 기슭에 다다르면 야트막한 구릉에 오래된 무덤들이 자리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보면 일반 공동묘지가 아니라 문중에서 제대로 관리하는 무덤들이다. 지금은 거의 잊힌 지명인 ‘능어리’에 둥지를 튼 영일(迎日) 정씨(鄭氏) 묘역이다. 족보를 들쳐 보면 ‘영일 정씨 판결사공파ㆍ승지공파(判決事公派·承旨公派)’ 종중이다.



언뜻 봐도 이른바 ‘뼈대 있는’ 명문 집안이었다는 것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4백여 년 이상 인천에서 가계를 이어온 영일 정씨가 이곳에 터를 잡은 때는 조선 중기인 1607년 정여온(鄭汝溫)이 아버지 정제(鄭濟)의 묘를 쓰면서부터다. 이 대목에서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1607년, 당시 인천 원우면 청량산 근처에 도포 휘날리고 두 명의 선비가 나타났다. 그들은 정여온과 땅의 지세로 길흉을 판단하는 지관(地官)이었다. 이미 수개월을 전국을 돌아다니며 부친 모실 명당을 찾아다녔다. 계속 허탕을 쳤는데 청량산 능어리에 도착하자마자 비로소 명당을 찾았다는 감을 잡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지점에 허름한 초가 한 채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실망감을 금할 수 없었다.

아쉬움과 절망감으로 집 근처를 이리저리 배회하던 중 초가에서 한 노파가 나왔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비의 얼굴을 본 노파는 별안간 그 앞에 꿇어 엎드렸다.





이야기인즉 이러했다. 과거 노파의 남편은 생활이 곤궁해 관아의 재물을 일시 유용했으나 변제하지 못했다. 큰 벌을 받을까 두려워했던 부부는 마포나루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했다. 이때 그곳을 지나던 정여온이 그 장면을 보고 이들을 구하고 자신이 갖고 있던 재물을 미련 없이 주고 길을 다시 떠났다. 서로 통성명도 못하고 헤어졌다.

 

10여 년 후, 인천 능어리에서 그들은 재회한 것이었다. 노파 부부는 정여온이 인천을 찾은 사연을 듣고는 평생을 거처해 온 초가삼간을 미련 없이 내어주고는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전설은 해피엔딩이다. 명당을 얻은 정씨 집안도 흥했고 거처를 정씨 내어 준 노파의 후손도 인천 운현동 연락골에서 명문 대성을 이뤘다. 이 상황을 먹물스럽게 표현하자면 ‘금시발복(今時發福 : 어떤 일을 할 때 복이 곧 돌아와 부귀를 누림)’의 명당을 주고받은 것이다.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던 이곳이 90년대 중반 연수택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상전벽해가 되었다. 당시 인천에서 아주 인기 있는 주거지로 변했다. 명당의 ‘전설’은 삼천리를 넘어 삼만리를 달려 현재까지 이어졌다.

 

그 전설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한때 인천시 C시장과 시 고위 간부들이 이 묘역 앞에 있는 H아파트에 모여 살았다. 사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터라고 소문이 나돌아 그 아파트 가격이 치솟기도 했다.

 

입주 초기 거주민들은 이 묘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철없는 동네 아이들은 무덤 위에 올라가 미끄럼 타거나 분묘를 지키는 돌짐승에 올라타기도 했다. 어른들도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깔거나 시원한 상석에 눕기도 했고 심지어 불을 피워 고기를 굽기도 했다.

 

 


묏자리 덕이었는지 이곳에 뿌리내린 후손들은 대대손손 번창했다. 현재 이 묘역에는 17기의 묘가 있는데 좌의정, 우의정, 참판, 관찰사, 군수 등 조선시대 고위 관직을 지낸 후손들이 묻혀있다. 묘역에는 동곡재(東谷齋)라는 재실도 있고 바로 옆에는 실제로 정 씨 후손이 거주하는 고택도 있다.

 



 


얼마 전 묘비, 문인석, 망주석, 상석 등 석물(石物) 66점이 보존돼있는 이 묘역이 인천시 기념물 68호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특히 문인석은 조선 후기 미술사와 복식사의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제 청량산은 사시사철 등산객들로 꼬리를 무는 친근한 동네 산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산 초입의 능어리는 한 가문의 명당이 아니라 시민이 사랑하는 명당으로 거듭나고 있다. 아쉽게도 ‘능어리’라는 이름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묘역 옆 음식점의 간판으로만 남아 있다.

 

글 사진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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