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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일본 제일의 ‘학문의 신(神)‘이 가야의 후예
글쓴이 tntv 등록일 [2020.05.08]

일본 제일의 ‘학문의 신(神)‘이 가야의 후예


장상인 팬택계열 기획홍보실장(전무)


글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다자이후 천만궁의 제례행렬
후쿠오카 지역을 여행할 때 필히 거치는 곳이 다자이후(太宰府)이다. 후쿠오카에서 동남쪽으로 19Km 지점에 있는 유적도시이다. 필자가 이곳을 자주 가는 이유는 공항에서 가까운 점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에 따르면, 다자이후는 원래 행정관청이었다고 한다. 다자이후는 후쿠오카(옛 이름-筑紫)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늘의 오카야마(岡山), 야마구치(山口), 에히매(愛媛) 등 4곳에 있었다고 한다.

4개의 다자이후를 후쿠오카로 일원화한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법하다. 前 규슈 역사박물관 부관장인 후지이(藤井, 65세) 씨는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어떤 때는 오카야마, 어떤 때는 야마구치의 다자이후가 대외관계의 업무를 맡았었습니다. 그러나 규슈의 다자이후로 일원화시킨 것은 역시 조선과의 관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비롯된 것이었을까? 아무튼, 일본 문명의 시작은 숙명적으로 규슈가 창구가 되어 역사의 수레바퀴를 따라 오늘에 이르렀다.

다자이후의 천만궁(天滿宮)에는 일본 사람들로부터 ‘학문의 신(神)’이라고 추앙받고 있는 스가하라 미치자네(菅原道眞, 서기 845~903)란 인물이 묻혀 있다. 스가하라는 당시 천황의 신임을 받아 대신으로 승진하였으나, 주변 사람들의 모함에 의하여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다자이후로 좌천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가난과 병고와 씨름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스가하라의 제자가 마차에 그의 시신을 싣고 가던 중 마차가 움직이지 않아, 그곳에 그를 매장하고 안락사(安樂寺)를 지었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 천재지변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스가하라가 한을 품고 벌을 내리는 것으로 믿었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그에게 정일위(正一位)를 하사하고 안락사 천만궁(天滿宮)으로 모시게 되었다.

당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보다 뛰어나다고 칭송받던 시인이자 문장가였던 스가하라는 11세 때 ‘달밤에 매화를 보다’라는 시를 짓는 등 매화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다자이후 주변에 있는 130종 6,000그루의 매화나무가 봄철 관광객들을 사로잡는다. 특히, 신전 앞에는 도비우매(飛梅)라는 커다란 매화나무가 있다.

하이얏트 레지덴셜 호텔의 회장인 이와타 고하치(岩田耕八, 63세) 씨는 도비우매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필자에게 들려주었다.

“이곳 다자이후로 좌천된 스가하라 선생을 그리워한 나머지 교토에 있던 매화나무가 이곳까지 날아와 하루 만에 꽃을 피웠다.” 고....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올법한 얘기지만, 뭔가 애절함이 배어 있는 듯하다.

이곳 다자이후에는 또 하나의 이색풍경이 있다. 각양각색의 부적들이 나비처럼 아니 매화꽃처럼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입시생을 가진 부모들이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부적을 사서 벽에 매달거나 나뭇가지에 묶는다. 입시철이 되면 일본전역에서 모여들어 ‘학문의 신’의 신전 앞에서 두 손을 모은다. 부적을 매는 부모들의 심정은 우리나 일본이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일본사람들로부터 ‘학문의 신’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가야민족의 후예라는 것이다. 최인호 씨가 최근에 펴낸 '제4의 제국'(여백출판사 발간)에 스가하라 미치자네의 역사적 발자취가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있다.

‘도명사 천만궁의 표문 서쪽에는 '일본서기'의 내용대로 ‘하세의 요지(窯址)’란 석비가 세워져 있다. 하세(土師)씨는 훗날 스가하라(菅原道眞) 씨로 성을 바꿨다.’

‘종발성 전투에서 고구려의 5만 대군에게 크게 패한 가야의 연합군은 어디로 도망쳤던 것일까.’

‘금관가야의 유민들이 한꺼번에 사라져버린 곳은 바로 섬나라인 일본인 것이다.’

‘일본으로 집단 망명한 가야인 들의 도래인 집단이 바로 「하세(土師)」- 문자 그대로 「흙의 스승」이란 것이다.’

‘100명의 가야도공들이 모여 살던 이곳은 다른 이름인 「하세마을」로 불리고 있다.’

‘학문의 신(神)인 스가하라는 바로 이곳 하세마을에서 큰어머니「카쿠쥬(覺壽)」의 보호아래 목동 일을 하면서 소잔등을 타고 학문에 전념했다’는 것이다. ‘현재 다자이후의 천만궁에 스가하라 뿐만 아니라 그의 백모를 모시고 있다.’

‘역사의 즐거움. 영원히 침묵할 것 같던 역사가 어느 순간 찰나적으로 보이는 그 황홀한 관음. 그 쾌락은 성욕을 능가한다.’

‘일본인들이 학문의 신으로 존경하는 스가하라 미치자네가 바로 가야의 후손이라는 명백한 사실은 나를 황홀한 쾌감으로 전율케 했다.’
‘스가하라는 하세 씨의 후예인 것이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마치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같은 도시국가가 번영하였듯이, 현해탄을 중심으로 가야와 왜가 철의 무역과 발달된 문명으로 큰 번영을 누렸던 폴리스적 동맹관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작가 최인호 씨의 육감’에 큰 박수를 보낸다.

사실, 후쿠오카에는 우리나라와 이름이 똑같은 가야산이 있다. 일본인들은 그 산이 한국의 가야산과 닮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야인들이 그 당시 규슈에 정착하여 고국을 그리워하며, 이 지역의 산 이름을 가야산으로 명명했던 것 같다. 역사는 우리 모두가 얽히고설키어 다함께 살아가는 과정의 연속인가보다.

장상인 팬택계열 기획홍보실장(전무)

칼럼니스트 사진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원문보기

https://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6&nNewsNumb=20060510600&nidx=2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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