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리학의 거목 윤휴, 주자를 부정해 사약받다

▲ 전 윤휴 초상화. 개인소장

[배한철의 한국초상화 읽기-47] 조선은 주자학(朱子學)의 국가였다. 조선 사회에서 주자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대학, 중용, 효경 등 유교 경전(經典) 해석에 있어 주자(주희, 1130~1200)의 견해는 그 누구도 이의를 달거나 손댈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됐다. 주자에 대한 도전은 곧 조선 유학 체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주자를 전면 부정하고 경전 해석에서 독자적 경지를 개척해 사문난적(斯文亂賊·유교를 어지럽히는 도적)에 몰린 조선 성리학의 거목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윤휴(1617∼1680)다. 그는 천하의 이치는 주자 한 사람이 모두 알 수 없는 것이어서 학자는 무릇 주자의 학설이 아니라 오직 진리만을 연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윤휴는 주자학을 흠집냈다는 죄목으로 죽임까지 당한다. 윤휴는 조선 후기는 물론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이단시돼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거나 기피됐다.

　아버지(윤효전)를 3살 때 여읜 뒤 거의 독학으로 학문을 익혔지만 10대부터 이미 유학 경서에 관해 풍부한 지식을 드러냈다. 19세 때 10년 연장자로 당대 석학이던 송시열과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서 만나 서로의 사상을 주고받았다. 3일간의 열띤 토론 끝에 송시열은 "30년간의 나의 독서가 참으로 가소롭다"며 윤휴의 높은 학문 수준에 혀를 내둘렀다.

　윤휴는 주자에 집착하는 대신 그 이전 시대인 선진(先秦)과 진·한·당(秦漢唐) 시대의 경서와 주석을 널리 읽고 참고해 주자의 학문과 사상적 굴레를 넘어서려고 했다. 그는 이기(理氣)와 심성(心性)을 논한 사단칠정인심도심설(四端七情人心道心說), 각종 경서에 독창적인 장구(章句)와 주석(註釋)을 단 독서기(讀書記)를 비롯해 홍범설(洪範說), 주례설(周禮說), 중용설(中庸說), 효경장구고이(孝經章句攷異), 대학설(大學說), 중용장구보록서(中庸章句補錄序), 중용대학후설(中庸大學後說) 등의 저술을 통해 독보적인 학문적 성과를 이뤘다.

　학문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윤휴와 송시열은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현종 때 두 차례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됐던 예송논쟁(禮訟論爭)의 본질은 상복과 장례기간이 아니었다. 주자학을 앞세워 신권정치(臣權政治)를 구현하려고 한 송시열 등의 서인과 왕권 강화를 통해 새로운 권력 기반을 다지려는 윤휴 중심의 남인세력 간의 정치투쟁이었다. 2차 예송논쟁에서 윤휴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서인이 대거 실각하고 송시열이 유배를 당하면서 송시열과 윤휴의 갈등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1680년(숙종 6년) 경신환국(庚申換局)으로 남인이 완전 몰락하자 윤휴는 서인의 집중 공격을 받는다. 서인계 유생들이 헛된 이론으로 민심을 현혹한다는 상소를 계속 올렸고 근거 없는 역모 혐의까지 씌워져 혹독한 형문 끝에 결국 사형에 처해진다. 유배형을 받고 유배지로 가던 중 뒤따라온 금부도사에게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는 "나라에서 유학자가 싫으면 쓰지 않으면 그만이지 죽일 이유는 뭔가"라고 따졌다. 죽기 직전 마지막 유언을 글로 남기게 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일각에서는 교황에 맞서 성경을 독자적으로 해석해 개신교를 개척한 마르틴 루터에 비견한다.

　사문(斯文)은 유학을 지칭하며 사문난적(斯文亂賊)은 성리학 또는 유교이념에 반대하는 사람 또는 사상을 비난하거나 공격할 때 쓰는 용어이다. 우리나라에는 유교가 도입된 고려 말 이 단어가 생겼으며 조선시대 성리학이 국시가 되면서 반역자에 준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명종 중반인 1560년경부터 사림파가 조정을 장악해 나가면서 정적들을 매장시키는 데 악용됐다. 성리학이 교조화된 조선 후기 이후 사문난적으로 몰리는 것은 사회적 매장 또는 사형에까지 이를 만큼 치명적이었다.

　시조 '어부사시사'를 지은 고산 윤선도(1587~1671)도 제1차 예송 논쟁 당시 송시열, 송준길이 효종의 정통성을 부정한 역적이라는 과격한 상소를 올렸던 게 빌미가 돼 사후 1680년(숙종 6년) 경신환국과 함께 관작이 추탈되고 사문난적으로 매도됐다.

　그는 정치적으로 열세에 있던 남인 가문에 태어나 집권세력인 서인 일파에 대항해 왕권 강화를 주장하다가 20여 년의 유배와 19년의 은거 생활을 했다. 예송 논쟁 때 남인의 거두로서 송시열 세력을 제압하려고 했지만 실패해 유배형을 받았다. 유배지 등 벽지에서 탁월한 문학적 역량을 발휘한다. 75수의 시조 및 단가를 남겼는데 그의 시조는 정철의 가사와 함께 조선 시가에서 쌍벽을 이룬다는 평가다.

▲ 미수 허목 초상화

허목(1595∼1682)도 주자학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학문도 진리일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가 사문난적의 불명예를 안았다. 남인의 핵심 인사로 예학을 놓고 송시열과 반목했다. 경기도 연천의 산림에 묻혀 학문에 열중하던 허목은 63세에 유일(遺逸·초야에 은거하는 명망 높은 선비를 천거하는 인재 등용책)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한다. 과거를 치르지 않았지만 벼슬이 여러 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주자의 저술보다는 시·서·역·춘추·예의 오경(五經) 속에 담겨 있는 원시 유학의 세계에 관심을 보였고 도가적(道家的) 성향을 깊이 드러냈으며 불교에도 개방적이었다. 그의 사상은 이익(李瀷)으로 이어져 남인 실학파의 기반이 됐다.

▲ 윤증 초상

　윤증(1629~1714)은 애초 서인이었지만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될 때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면서 송시열과 맞섰다. 송시열에게 주자대전을 배웠지만 스승 송시열이 자신과 불편한 관계였던 부친(윤선거)의 묘지명을 써주지 않자 사제지간을 끊었다. 송시열의 주자학적 종본주의와 그에 근거한 존화대의(尊華大義) 및 숭명벌청(崇明伐淸)의 북벌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사문난적에 포함됐다. 노론 측에서는 어진 스승을 배반한 패륜이라고 그를 비난했다.

▲ 박세당 초상

박세당(1629~1703)은 현종 1년(1660)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지만 반주자학적 입장을 견지해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았다. 1703년 주자학과 송시열을 비판하고 독자적 견해를 밝힌 사변록(思辨錄)을 출간하자마자 사문난적으로 낙인찍혔다. 유배형까지 받았지만 이인엽(李寅燁)의 상소로 집행되지는 않았다. 그는 사대부들의 무위도식을 질타했고 실리적 외교정책, 백성을 위한 법률의 혁신, 정치·사회제도의 개혁을 주장했다.

　윤휴의 초상화는 대구의 후손가에서 전해오는 것이다. 초상화는 40·50대의 중장년 얼굴이며 2품의 운안흉배(雲雁胸背)와 삽금대(鈒金帶)를 착용하고 있다. 윤휴는 54세 되던 숙종 즉위년(1674년)에 비로소 벼슬길에 나아갔다. 그림은 또한 평면적이며 장식적인 화법이 17세기 초반 공신상의 전형적 특징과 흡사하다. 이 같은 정황을 근거로 그의 초상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허목의 초상화(보물 1509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정조가 그의 인물됨에 크게 감동해 은거당이 그린 82세의 허목 초상을 당대 최고 화사 이명기에게 재현케 한 작품이다. 채제공이 이런 내용을 화폭 상단에 적었다. 허목의 호는 미수(흰눈썹)다. 그림에 희고 두꺼운 눈썹이 잘 묘사돼 있다.

　윤증의 초상화(충남역사문화연구원 보관)는 총 6점이 전해오며 일괄적으로 보물 1495호로 지정됐다. 윤증 초상의 제작 기록을 담은 필사본인 '영당기적'은 1711년 변량이 윤증의 초상을 처음으로 그린 이후 1744년 장경주, 1788년 이명기, 1885년 이한철이 모사할 때까지 4번의 제작 사례를 적었다. 박세당의 초상화는 평양 출신으로 숙종 어진의 제작에도 참여한 바 있는 조세걸이 1690년경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복건에 심의를 입은 반신상으로 60세가 넘은 노학자의 굳센 의지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이들 사문난적은 공통적으로 서인 노론의 영수 송시열(1607~1689)과 불화를 겪었던 인사이다. 송시열과 그 추종 세력은 반대파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숙청했고 조선을 노론 일당의 폐쇄 국가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배한철 영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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