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궁(七宮․사적 149호)이다. 칠궁은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사친․私親) 7명의 신주를 모신 곳이다. 즉 조선조 때 임금을 생산하고도 정실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종묘에 들어가지 못한 일곱 여인의 사당을 모신 곳이다.

 현대에 와서도 청와대 옆에 붙어있는 ‘죄’로 박정희 정권 이후 일반인의 출입이 30여 년간 금지됐던 조선식 정원이다. 그러다가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경호상의 이유로 출입을 금한 지 33년 만인 지난 2001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성북동의 조선 고종의 아들 의친왕(義親王)이 살던 별궁의 정원인 성락원(城樂園)과 함께 칠궁은 조선 후기 정원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일본 정원이 고도의 인위적 상징성을, 중국 정원이 위엄과 자연의 재현을 특징으로 한다면 우리 정원은 그저 자연과 친하려는 소박함 자체다.

 조선왕조의 묘사(廟祀)제도와 왕들의 생모에 대한 효성을 살펴볼 수 있고 왕조문화의 그늘에 피었다 져간 덧없는 영화의 주인공인 후궁들의 이야기꺼리가 널려있는 사적이다.칠궁은 임금의 생모를 모신 7개 사당과 재실․문 등 11개 부속 건물로 이뤄져 있다.

 역대 왕들이 갈증을 해소했다는 냉천(冷泉) 등이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원래 육상궁만 있었는데 1882년 화재로 소실되자 당시 왕이었던 고종이 다른 사친묘와 합사, 복원하면서 지금의 칠궁이 됐다. 1908년(융희 2) 7월 23일 예절이 번거로우면 본뜻을 잃는다는 황제의 조칙(詔勅)으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궁들을 합설(合設)하였다.

   조선왕조 궁녀의 법적 신분은 종9품 내인에서부터 정5품 상궁을 최고로 하는 여 관직이다.

   영조 때는 줄잡아 6백여 명, 고종 순종 때도 덕수궁 창덕궁에 2백여 명이 있었다지만 입궁 30년이 돼야 오를 수 있었다는 상궁이 몇 명이나 됐는지 모른다. 왕실의 사노예 역할을 해야 했던 궁녀의 운명을 하룻밤 사이에 바꾸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이 승은(承恩)이다. 왕과 하룻밤을 보내는 승은을 입으면 자녀를 낳아 후궁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특별상궁’이라는 지위로 뛰어올랐다.

   한때나마 왕의 총애를 받아 후궁이 되면 숙원(종4품) 소원(정4품) 숙용(종3품) 소용(정3품) 숙의(종2품) 소의(정2품) 귀인(종1품)이 될 수 있었고 운좋게 낳은 아들이 세자나 왕이 되면 비록 비(妃)는 아니더라도 내명부의 정1품인 빈(嬪)이 될 수 있었다. 뒤에라도 아들이 왕으로 추존되면 생모도 빈의 칭호를 받았다.

  사당중 가장 먼저 세워진 것이 영조를 낳은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 사당인 육상궁(毓祥宮)이고 이때가 1725년이었다. 이어 영조의 장남으로 일찍 죽어 후에 왕으로 추존된 진종의 생모 정빈 이씨를 연호궁(延祐宮), 선조의 후궁이자 원종을 생산한 인빈 김씨를 저경궁(儲慶宮), 숙종의 후궁이며 경종을 생산한 희빈 장씨(장희빈)를 대빈궁(大嬪宮), 영조의 후궁으로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를 선희궁(宣禧宮), 순조를 낳은 수빈 박씨를 경호궁, 마지막으로 영친왕을 생산한 엄비를 덕안궁(德安宮)에 모셨다.

   지난 1968년 북한공비들의 청와대 습격 사건 이후 경호상의 이유로 도로를 내면서 칠궁 전체가 크게 왜곡됐고 1978년에 지은 영빈관 때문에 재실(齋室․사당 앞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영역이 우스꽝스럽게 위축됐다. 이 때문에 칠궁 전체의 3분의 1가량이 뭉텅이로 잘려나가 전체 모습이 기형적으로 변했다.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은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를 모신 육상궁뿐이다. 나머지 6개 사당은 영친왕 모친을 모신 덕안궁 빼고는 모두 자리를 옮겨야 했고 부속건물들도 대부분 헐렸다.

   한편, 원래 각 처에 산재하여 있어서 춘분, 추분, 하지, 동지, 정삭, 한식, 단오, 추석 등 연 8회의 향사와 임시작헌례를 봉행하였으나 융희 2년(1908년)에 각 궁(육궁)을 이곳으로 옮기고 그후 덕안궁도 옮겨와 칠궁이라 하고 종전의 제향은 폐지, 춘분과 추분의 정시제와 임시작헌례 그리고 고유제만 봉행하였다. 매년 10월 넷째주 월요일에 연 1회 제향을 봉향하고 있다.

 칠궁제는 신을 모시기 위해 모든 제관이 두 번 절하는 신관례를 시작으로 전폐례(奠幣禮), 초헌레(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음복례(飮福禮) 등의 제향 순서에 따라 진행되며, 축문과 폐(幣)를 태우는 망료례(望燎禮)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