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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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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로 재탄생한 대한제국의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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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v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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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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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의 역사를 ‘오늘’로 소환하다!
임진왜란 직후 선조가 머물며 왕궁으로서의 역사가 시작된 덕수궁은 주권 의지 표명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조선의 자주독립을 대외에 밝힌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번
<덕수궁 야외 프로젝트: 빛·소리·풍경> 전시는 대한제국 선포(1897년) 120주년을 맞아 9명의 국내 대표 미디어 작가가 덕수궁에 내재되어 있는 역사적 배경을 예술로써 재해석하고 있다. 전시 작품은 관람객의 입장 동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흐른다.
“고종황제가 1919년에 승하 후, 덕수궁은 빈 궁궐이 됐지. 빈객의 접대장소로 주로 사용됐는데, 일반시민들한테 개방되기 시작한 건 1930년대였을 거야. 오늘만큼이나 그때 그 시절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어. 예나 지금이나 참 아름다운 곳이니깐."
중학생 손녀와 함께 고종 승하의 현장이었던 함녕전을 마주보고 있던 할아버지는 일일 문화재 해설자를 자처했다. 역사의 현장에서 듣는 이야기는 생동감이 넘친다. 가족끼리 나온 주말 나들이의 화두가 ‘역사’라니. 덕수궁 내 대한제국을 주제로 한 작품을 대할 때도 감상의 깊이가 기대된다.
지난 9월 1일부터 펼쳐진 이번 전시는 덕수궁 내 중화전 앞 행각, 석조전, 석어당, 덕홍전, 함녕전,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함녕전 앞 행각 등 7개의 장소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있다. 전시에 참여한 국내 대표 미디어작가들은 수 개월간 덕수궁을 출입하며 작품을 구상했다. 회화, 영상, 음악, 사진, VR, 설치미술 등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덕수궁의 역사를 한층 더 입체적으로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참여 작가는 강애란, 권민호, 김진희, 양방언, 오재우, 이진준, 임수식, 장민승, 정연두 등이다.
전시 관람뿐만 아니라 큐레이터와 아티스트의 1:1 토크 프로그램을 기획해 ‘역사와 예술’로 소통할 수 있는 자리도 꾸준히 진행중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토크 프로그램에서는 질의응답을 통해 작품에 대한 해설은 물론, 창작 과정 속에서 느낀 작가의 역사 의식도 들여다볼 수 있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화두
덕수궁 대한문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중화전 앞 행각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비춰주는 소재인 거울을 행각 전면에 설치한 것과 대조적으로, 행각 안쪽에는 19세기 초부터 1960년대까지의 경성과 서울을 재구성한 320여 장의 사진이 디지털 영상으로 흐르고 있다. 음악감독 양방언과 미술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장승민의 공동작품
<온돌야화(溫突夜話)>이다. 애절하면서도 장엄한 음악과 필름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이 교차하는 동안, 관람객들은 서울이란 공간의 어제와 오늘을 오간다.
서양식 건축물로 이색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석조전에는 총 2개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본관과 별관을 잇는 계단과 복도에 위치해 있어서 관람객들의 동선에 자연스럽게 작품이 스며든다. 계단 공중에 매달려 있는 김진희 작가의
<딥 다운 - 부용>은 전자제품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 재가공해서 덕수궁의 다사다난했던 역사를 이미지화시켰다. 동시에 MP3 스피커와 라디오 부품이 사용되어 떠도는 전파를 잡거나 녹음된 빗소리 등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청각적으로도 감상이 가능하다. 다양한 점들이 연결된 작품을 보며 꼬마 관람객은 “엄마, 별이야, 별! 우주 같아”라며 동심의 감상평을 늘어놨다.
석조전 복도에서는 대한제국 시기의 고종황제와 덕혜옹주의 모습을 4가지 시각으로 담아낸 정연두 작가의 ‘프리즘 효과’를 만나볼 수 있다. 정 작가는 “역사는 하나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프리즘처럼 다양하다. 사진은 파편적 단면을 보여주는 매체로, 같은 걸 바라보더라도 입장차를 보인다는 걸,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걸 담고 싶었다”고 작품 의도를 설명했다.
석조전을 지나 발길을 옮기다 보면 화려한 덕수궁 내에서 유일하게 단청이 칠해져 있지 않은, 소박한 멋의 석어당이 나온다. 이층 건물로 되어 있는 석어당 대청마루에는 숨은그림찾기와 같은 권민호 작가의 대형 드로잉
<시작점의 풍경>이 있다. 한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풍경이 복잡하게 겹쳐 있는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학생들은 “어? 저거 서울역 아니야?”, “옆에는 KTX 같은데?”라며 놀이를 즐기듯 감상에 집중한다. 직접 관람을 하게 될 기회가 있다면 한국 최초 기차였던 ‘모갈 1호’를 발견해보는 과제를 던져주고 싶다.
1인칭 시점에서, 오감으로 만나는 역사
고종이 마지막까지 거처하고 사용했던 덕홍전과 함녕전은 궁 내 다른 건물에 비해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다. 샹들리에와 같은 조명도 눈에 띈다. 이 두 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내가 고종이었다면?’이란 질문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감상자들도 1인칭 시점에서 전시 작품들을 바라보게 된다. 고종의 서재에는 어떤 책과 물건들이 있었을지 고민한 강애란 작가는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이란 제목으로 가상의 황실 서고를 재현했다. 아크릴판을 깎아 만든 책 모형에 조명을 삽입해 한층 입체적이고 다채로운 이미지를 완성했다. 전통적 소재를 현대 감성으로 화려하게 표현한 작품은 남녀노소 모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바로 맞은 편에는 ‘덕홍전에 책가도가 있다면 무엇을 그렸을까’란 호기심에서 제작이 들어간 임수식 작가의
<책가도389>가 세워져 있다. 논어와 사서삼경 외에도 메밀꽃 필 무렵과 같은 한국 소설, 엘리자베스 키스의 책, 덕혜옹주의 사진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고종황제의 침전이자 승하했던 함녕전에는 이진준의
<‘어디에나 있는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 불면증 & 불꽃놀이>가 설치돼있다. 구한말 일제의 강압 속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고종의 심경을 추상적인 이미지와 사운드로 표현한 영상작품이다. 세 작품은 대한제국의 역사 속에서 인간 고종이 보냈을 일상과 당시의 감정을 엿보게 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했다.
전시의 종착점인 함녕전 앞 행각에는 오재우 작가의 ‘몽중몽(夢中夢)’이 전시 중이다. 특히나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이유는 가상현실 기기를 쓰고 홀로 덕수궁을 거니는 체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족 단위로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은 “VR 체험을 통해 한 나라의 궁궐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한국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어 더욱 여행이 특별해졌어요”라고 감상을 전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은 “조금 전 선생님과 둘러본 중화전과 덕홍전을 VR로 볼 수 있어 신기했어요. 영상 중간에 사람들이 나타나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라며 친구들과 함께 웃음꽃을 피웠다.
유구한 역사의 현장을 현대미술로 재해석하자, 사람들은 예술로 되살아난 문화유산을 눈과 귀, 그리고 가슴으로 교감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 프로젝트는 덕수궁이란 궁궐이 가진 그 자체로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대한제국의 역사를 다시금 곱씹어볼 수 있는 여정이었다. 9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지는 전시와 함께 진행되는 참여작가들과의 토크 프로그램도 신청만 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영상과 빛을 사용한 작품이 많아 밤에 찾는 것이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다.
글‧최은서 사진‧안지섭
출처:월간 문화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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