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첫 이민이 시작된 1902년 12월 이후 1905년 까지 태평양을 건너간 하와이 총 이민자수는 7천226명이었다. 남자가 6천48명, 여자가 637명 그리고 어린이가 541명이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교인이었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난 젊은이, 향리와 구한말의 해산군인, 남의 집에 살던 머슴, 부두 노동자, 건달 등도 대열에 끼어 있었다.

▲당시 이민을 가던 사람들의 풍경

▲인천 중구 용동 골목터 돌계단에 새겨진 용동권번'

대중가수 이화자, 나운규의 연인 오향선도 인천기생
복혜숙은 ‘복마리’라는 이름으로 이화학당에 들어갔다. 복마리(마리아)는 죽은 언니의 이름이었다. 일본 요꼬하마기예학교와 조선배우학교에서 공부한 그녀는 촉망받는 여배우로 활동한다. 극단 토월회 활동 때 인천과 다시 인연을 맺는다. 당시 토월회는 인천공연에 나섰다가 흥행에 실패하자, 남자 단원들이 밀린 여관비와 식비를 마련하겠다고 서울로 떠나면서 그녀를 홀로 남겨놓았다. 
복혜숙은 용동권번에 속하게 된다. 권번은 일종의 기생 조합이다. 손님의 요청에 따라 기생을 전용 인력거에 태워 요릿집에 보내고 화대를 책임지고 수금하는 역할을 하는 등 매니저 역할을 담당했다. 인물, 태도, 노래와 춤 등의 심사를 통해 여자 아이들을 모집해 기생으로 양성하는 일도 했다. 용동권번은 1901년 5월에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인천의 옛 이름인 ‘소성(邵城)’을 따서 소성권번이라고도 불렀다. 당시 서울의 한성, 평양의 대동, 그리고 남도의 한남권번 등이 있었다.
인천에 쌀 거래를 하는 미두장이 번성하면서 돈 많은 미곡상, 물산객주들이 몰려들자 요정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용동권번 주변에는 일월관, 용금루, 화월관, 조선각 등이 성업을 이뤘다. 1931년 통계를 보면 인천에는 일본 요리집 8개소, 한국 요리집 3개소, 일본 예기 33명, 한국 기생 77명이었다.
인천 출신 기생 중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기생이 있다. 대중가요 가수로 스타가 된 이화자가 용동권번 출신이며 같은 레코드사 소속의 김일타홍 그리고 일본인보다도 일본노래를 잘 불러 일본요정으로 단골출장을 다닌 이화중선과 '아리랑'의 나운규와 사랑에 빠진 영화배우 오향선도 이곳 출신이다. 용동 기생 박미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인천항에 입항한 중국 군함 함장의 마음을 빼앗아 출항 일정을 수 일 넘기게 할 만큼 뛰어난 미모를 지녔다고 전한다.

권번에 속한 기생들은 요정에서 소리를 하고 춤을 추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요즘 말로 하면 이벤트 행사 도우미로도 활동했다. 경인철도 개통 초기에 손님이 거의 없자 철도 회사는 승객을 유치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평양명기 앵금' '인천기생 초선'하는 식으로 주요 역 정거장 마당에 기생 이름을 적은 푯말을 꽂아놓고 일종의 ‘라이브’ 공연을 벌였다. 더 나아가 기차를 타고 출발역에서 종착역까지 객차 칸칸을 왔다갔다하며 승객 유인에 한 몫 했다. 이를 보기 위해 한량들이 비싼 기차 티켓을 끊고 승차하기도 했다. 오늘날 나이트클럽의 '여성 무료입장'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인천 상봉루 기생들 돈 모아 독립자금 기탁
그들은 신여성답게 현실에 대한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1897년 1월, 인천 상봉루의 기생 9명은 90전의 돈을 모아 독립협회에 보냈다. 노래와 웃음을 팔아 치마 속에 넣어뒀던 쌈지 돈을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선뜻 내어놓은 것이다. 또한 1925년 7월 엄청난 비가 부천군 일대(현재의 인천시 남구 일대)에 쏟아져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용동권번의 모든 기생들은 많은 식료품을 가지고 부천군 일대를 순회하며 이재민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1946년 4월 15일 권번 대표 김본건은 광복 후 중국에서 귀환한 전재민 동포들이 있는 수용소를 방문해 기생들이 모은 구호금 1만원을 전달했고 동명학교에도 1만원을 기부했다. 이밖에 영화보통학교 운동장 확장 비용도 마련하는 등 사회참여도가 높았다. 40년대에 이르러 태평양전쟁이 가열되고 쌀 배급에 이어 술도 제한적으로 공급되면서 요정들이 하나둘 간판을 내렸고 이에 따라 권번도 문을 닫았다.
복헤숙은 용동권번에서 3년간 생활하며 기생의 권익과 권번 개혁에 앞장서기도 했다. 말주변이 좋고 자기주장이 분명했으며 의협심이 강해 때로는 남성들과 육탄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1937년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공개 탄원서를 조선총독부에 보낸 일화는 유명한 문화사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 춘원 이광수

유명 여성 연극배우가 기생이 되었다는 소문은 당시 인천 한량들을 중심으로 한껏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인천 지역 부호들, 유명 인사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으며 이와 관련한 로맨스·스캔들이 꼬리를 물었다. 후에 춘원 이광수, 인촌 김성수 등이 복혜숙이 인천에 남겨진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그녀를 구출하러 용동권번을 찾아왔다. 그때는 이미 3년간의 권번 활동으로 빚을 모두 청산한 상태였다.
‘낙화유수’ ‘청풍’ 등 모두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복혜숙은 목사의 딸로 일본 유학 까지 다년 온 신여성이었지만 배우, 기생, 다방마담, 첩 등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만약 가족이 하와이 이민선에 몸을 실었으면 복혜숙과 한국의 영화계는 또 다른 여정을 걸었을 것이다. 그녀는 2006년 단성사 개관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정한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영화인 100인’ 중 여배우 26명 안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였다.

원고출처 : ‘시대의 길목 개항장(유동현 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