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의 화폭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저택과 아이들의 옷차림에는 귀족적인 분위기가 역력하다. 요즘 말로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고 나온 아이들 같다. 어린이들의 즐거운 놀이장면을 그린 이러한 그림을 ‘백동자도’라 불렀다. 백동자도의 ‘백(百)’은 ‘100명’이 아니라 ‘많다’는 뜻이다.
백동자도 속의 동자들은 얼굴 생김새가 하나같이 닮았다. 옷이나 머리를 묶은 모양도 중국풍에 가깝다. 이러한 점은 백동자도의 초기 형식이 중국에서 전래되었거나 그 영향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궁중 화원에 의해 그려진 백동자도는 정해진 형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민간으로도 전해져 인기를 끌었다.
백동자도는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어른의 소망이 깃든 그림이다. 그 소망은 그림 속 동자들이 암시한다. 아들을 얻고자 하는 다자손(多子孫)의 염원을 담았기 때문에 백동자도는 신혼부부의 방이나 여성들의 생활공간에 주로 놓였다고 한다.


궁중양식과 민간양식의 백자도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된
<백동자도>(그림1)는 부유한 집안의 안채에서 동자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장면을 그린 6폭의 병풍이다. 치밀한 화면 구성과 정교한 묘사 그리고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인다. 궁중 화원들의 솜씨로 손색이 없다. 백동자도는 조선후기 궁중의 혼례가 있을 때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다자손을 성취하여 왕실의 영속을 바라는 염원이 궁중의 백동자도에 반영된 것이다.
백동자도는 다른 궁중길상화인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에 등장한 동자를 독립된 주제로 재구성하여 그린 듯하다. 고종 연간에는 화원들 사이에 곽분양백자도(郭汾陽百子圖)라는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다. 즉, 곽분양행락도에 담긴 장수, 고관, 다자손의 길상적 의미 가운데 ‘다자손’만을 분리하여 그린 것이 백동자도인 셈이다.
궁중양식의 백동자도는 민간으로 전해져 유행했다. 그러나 민간의 그림도 결코 그 수준이 낮지 않다. 백동자도는 기본적으로 인물화이기에 아이들의 묘사가 어색하지 않아야 하고, 완성도가 높아야 한다. 따라서 백동자도는 소묘 실력이 부족한 초보 화가에게는 그리기 어려운 주제였다.
이러한 민간그림의 특징은 삼성미술관 Leeum 소장의
<백동자도>(그림2)에 잘 나타나 있다. 아마추어가 아닌 어느 정도의 기량을 지닌 화가의 솜씨다. 그런데 민간화가들의 백동자도에는 궁중 그림에 보이던 저택이 사라지고, 괴석이나 고목 등이 등장한다. 배경에 궁궐과 같은 저택을 그리는 것은 민간에서 좋아하지 않은 듯하다. 저택의 유무가 궁궐과 민간의 백동자도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위의 궁중과 민간의 백동자도 병풍에는 매화 따기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이 각각 한 폭씩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아이들이 커다란 매화나무에 올라 매화를 따고 있는 모습이다. 화원들의 그림에는 저택이 함께 등장하지만, 민간 화가들은 매화를 따는 아이들만 부각해 그렸다. 민간 백동자도의 특징을 단적으로 설명 해주는 부분이다. 또한, 민간의 백동자도는 크기도 줄어들어 세로 길이가 약 50㎝ 내외인 작은 병풍으로도 그려졌다.


생활공간에 놓인 백동자도
병풍으로 만든 백동자도는 어느 공간에 주로 놓였을까? 20세기 초에 촬영한 사진(그림3)이 백동자도가 놓였던 당시의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한 여성이 옷감을 다림질하는 사진은 여인들의 규방과 같은 공간으로 짐작된다. 여인의 뒤편에 낮게 펼쳐진 것이 백동자도를 그린 병풍이다. 크기가 작지만, 화폭의 윤곽에 테두리 선을 그었고, 그 모서리를 사선으로 처리하였다. 앞서 본 서울역사박물관의
<백동자도>와 같은 형식이다. 사진은 백동자도가 민간 여성들의 생활공간 속에 놓였음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물증이다.


20세기 초에 그린 백동자도는 서민들이 선호했던 민화로 분류되기도 한다. 호림박물관의
<백동자도>(그림4)는 배경에 가옥을 그렸지만, 초점은 동자들의 놀이 장면에 두었다. 가옥은 마치 곽분양행락도에 나오는 저택과 유사하다. 수법이 아주 세련된 편은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으로 봤을 때 민화라고 불러도 무난하다. 이
<백동자도>와 유사한 그림이 20세기 초에 촬영한
<가족사진>(그림5)에도 놓여 있어 흥미롭다.
사진 속 백동자도는 어떤 용도였을까? 장식용일까 아니면 길상의 의미를 강조한 것일까? 물론 이 두 가지 기능을 다 갖고 있긴 하지만, 사진 속의 가족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배경에 백동자도가 펼쳐진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노모를 모시고 앉은 두 아들의 자녀가 모두 여자아이들뿐이다. 남자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사진 속의 백동자도에는 아들을 얻고자 하는 가족의 절실한 바람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듯하다.
19세기 전반의 가사 「한양가」(1848)에는 청계천 광통교 남단의 그림가게에 병풍용 백동자도를 걸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누구나 돈만 있으면 시장에서 이 그림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었다. 이처럼 민간에서 인기리에 유통된 백동자도는 자손의 번성과 남아선호 사상이 중첩된 대표적인 길상화로 알려졌다. 백동자도가 시사하는 다자손은 왕실과 상류층은 물론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개인과 가문의 생존을 위해 널리 소망했던 간절한 바람 중의 하나였다.


글‧윤진영(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