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 선비 엄성이 그린 원본 소실… 모사한 그림만 6본 남아있어 "자세 비슷하지만 이목구비 달라" 베이징대 소장 나이지 모사본, 개성 살아있어… 정본으로 인정
경기도 실학박물관과 천안 홍대용과학관에는 북학파 실학자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1731~1783)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다. 유학자 옷을 걸친 홍대용이 무릎 꿇고 앉은 모습이다. 두 그림의 옷과 자세는 같지만 이목구비는 다르다. 홍대용을 소개하는 각종 책자에 실린 얼굴도 조금씩 다르다. 원본은 같지만 후대에 계속 베껴 그렸기 때문이다.
◇홍대용 초상화, 정본을 찾아라
원본은 항주 출신 청나라 선비 엄성(嚴誠·1732~1767)이 그린 초상화다. 홍대용은 1765년 동지사(冬至使)로 임명된 작은아버지 홍억(洪檍)을 수행해 청나라 수도 연경(베이징)에 가서 60여일 동안 머물렀다. 이때 엄성을 만나 형제의 의(義)를 맺었다. 둘은 각기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장문의 서찰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눴다. 18세기 한·중 지식인 교류의 출발점이 된 만남이었다.
1766년 2월 엄성은 연경 모임을 떠올리며 홍대용의 초상화를 그렸다. 유학자 옷을 걸친 홍대용이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소맷자락 안에 넣은 채 무릎 꿇고 앉은 모습이다. 엄성은 초상화를 그린 이듬해 병에 걸려 숨을 거뒀고, 사후 편찬된 '일하제금집(日下提襟集)'에 이 초상화가 실렸다.
엄성의 홍대용 초상화 원본은 소실됐고, 엄성의 초상화를 모사한 그림들만 6종 남아있다. 박현규 순천향대 중문과 교수와 문무경 한국기술교육대 디자인공학과 교수는 홍대용 초상화 모사본 6종을 디지털 화상으로 비교한 '홍대용의 얼굴 찾기' 결과를 9일 천안 한국기술교육대에서 열리는 담헌 홍대용 국제워크숍에서 발표한다.
◇디지털 화상 비교…정본은 베이징대 소장본
박현규 순천향대 중문과 교수(한·중 교류사 전공)가 현존 초상화 6본의 계보를 추적했더니 크게 두 계통으로 구분됐다. ①엄성의 단짝 친구인 주문조가 1770년 모사한 그림(국사편찬위원회 소장본) ②1850년 청나라 나이지(羅以智) 모사본(베이징대 소장본)이다. 주문조는 1767년과 1770년 두 차례에 걸쳐 모사했는데 1767년 그림은 남아있지 않다. 박 교수는 "①국사편찬위·단국대·서울대·하버드대 소장본이 1770년 재모사본 계통이고 ②베이징대·중국국가도서관 소장본은 나이지 모사본 계통"이라며 "홍대용 초상화 정본을 정할 때 두 계통에서 각각 가장 제작 연대가 앞서는 국사편찬위 소장본과 베이징대 소장본을 기본 텍스트로 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지 크게보기왼쪽은 1850년 나이지가 모사한 베이징대 소장본, 오른쪽은 1770년 주문조가 모사한 국사편찬위원회 소장본이다. 자세는 비슷하지만 이목구비가 확연히 다르다. /문무경 교수
문무경 한국기술교육대 디자인공학과 교수는 두 그림의 디지털 화상 비교를 시도했다. 국사편찬위 소장본은 세로12.6㎝, 베이징대 소장본은 10.9㎝. 문 교수는 "두 그림의 크기를 맞추고 왼쪽 뺨과 턱, 이마 선을 기준으로 겹쳐가며 비교했다"며 "손을 모으고 앉은 자세는 비슷하지만 얼굴 크기와 이목구비의 기울기 등이 달라 같은 초상화로 보기 힘들다"고 했다.
나이지가 모사한 베이징대본은 콧대가 길쭉하고 눈썹을 약간 치켜들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강한 인상인 반면, 주문조가 재모사한 국사편찬위 소장본은 주먹코에 눈썹은 아래로 향하고 부드러운 인상이다. 문 교수는 "주문조 재모사본은 홍대용뿐 아니라 나머지 조선 사행단 얼굴이 다 비슷한 인상이다. 주문조 스스로도 '거듭 모사하니 원본의 신기(神氣)를 잃어버렸다'고 자평했을 정도다. 반면 나이지 그림은 조선 사신단 6명 얼굴이 제각각 개성이 살아있어 훨씬 원본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두 교수는 "홍대용 초상화의 정본을 정할 때 베이징대 소장본을 토대로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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