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여·공주의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 새삼스럽게 백제를 만나보고 싶었다.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는 뉴스도 들리던 차였다. 궁남지와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보고 부여박물관으로 향했다. 보호각 안에 선 비석은 '보광사대보광선사비'(보물 제107호)였다. 아홉 글자를 모두 붙여 놓은 바람에 어디서 띄어 읽어야 할지 잠시 헷갈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옆에 붙은 한자는 '普光寺大普光禪寺碑'였다. '선사'가 '큰스님'의 '禪師'가 아니라 '절'의 '禪寺'로 잘못 적혀 있다. 영어 번역은 'Temple'이 아니라 'Master'여서 그나마 다행이다. 정확하게는 'Great Master'가 아니라 'Zen Master'라고 해야 한다. 잘 보이라고 검은 판에 금색까지 입혔지만 부끄러운 안내문이다.
문화재 안내문이 엉망이다. 오자는 보통이고, 어문 규범에 맞지 않거나 문맥이 닿지 않는 것이 수두룩하다. 문화재로서 가치를 담지 못한 안내문도 적지 않다. 국보 제1호인 숭례문도 마찬가지다. 안내문 절반이 '공사(工事)'에 대한 설명이고 나머지는 통금 시간에 문을 여닫고, 국가 행사를 거행했다는 정도이다. '남대문'이 아니라 '숭례문'이라 이름 지은 가치가 빠져 있다. 유교를 숭상한 조선의 통치 이념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가운데 '예'를 강조해 '숭례문'이라고 했다는 사실은 책 좀 읽는 초등학교 고학년생도 안다. 이런 '정신'은 놓친 채 '껍데기'에 치중한 반쪽 안내문을 적어 두었다. '인정에 문을 닫았다가 다음 날 아침에 열었는데, 이때 문루에 종을 달아 그 시간을 알렸다'는 또 무슨 말인가? '종을 칠 때마다 문루에 달았다가 뗐다'는 소리가 아닌가.
국보 1호가 이럴진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우리 땅 곳곳 많은 문화재의 안내문 가운데 제대로 된 설명은 기대하기 어렵다. 법흥사지 칠층 전탑(국보 제16호)은 안동을 '전탑(塼塔)의 고장'으로 만든 공신이자 전탑 중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탑이다. 그런데 안내문에 전탑 설명이 빠져 있다. 전탑은 흙을 구워 만든 벽돌로 쌓은 탑으로, 석탑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 10건도 남지 않은 문화재이다. 고흥 금탑사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제239호) 안내문은 문장의 60%를 비자나무의 일반적 특징 묘사에 쏟고 있다. 수목원에나 어울릴 안내문이다. 금탑사와 비자나무 숲의 조성 유래나 시기, 천연기념물 지정 이유 등을 알려주어야 했다.
북한산 백운대 턱밑에 멀쩡한 화강암을 깨어 쌓아 놓고 '북한산성'(사적 제162호 )이니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성곽에 올라가지 마세요' 할 게 아니라 문화재의 가치를 제대로 담아내는 안내문을 쓰는 일이 더 시급하지 않을까. 다행히 부실한 안내문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올해 전남과 경북 안동시·구미시, 울산 중구청 같은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특히 전남은 '문화재 안내문'이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 계속할 계획이라니 큰 박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