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제 목 |
 |
조각조각, 전통과 현대를 잇다 |
|
| 글쓴이 |
|
tntv |
등록일 |
|
[2016.10.26] |
|
|
전통공예 ‘바느질’을 현대회화로 끌어와
오밀조밀 몸을 맞댄 집들이 정겨워 보인다. 집이든 사람이든 사이가 좋지 않다면 붙어 있을 수 없을 터. 작품 속 풍경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들을 새롭게 조합해 재구성했다. 회화에서 붓과 물감의 역할을 자투리 천과 색실로 대체해, 옛 전통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구성했다.
“집들이 빼곡하게 세워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 처음 접해본 세모·네모 모양의 도형들이 떠올라요. 서로 맞붙어 있는 집은 어떻게 보아도 참 정감 있는 풍경이에요. 집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또한 갖기 힘든 것이기도 하죠. 집을 가지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힘겨운 요즘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와 응원을 전하고 싶었어요.”
집들이 들어선 풍경을 재현하는 제미영 작가의 ‘착한’ 집짓기는 상상 이상으로 정밀한 작업이다.
<집이 있는 풍경>(2016, 91×61㎝)은 조각천을 모으고 색색의 천을 맞대 감침질로 조각보를 배접한 뒤, 다시 이를 잘라내 풍경화로 재구성했다. 천 위에 노출된 색색의 바늘땀에서 아이디어의 흐름과 구성 과정이 생생히 드러나 보인다. 캔버스 천과 한지를 모두 사용하다 보면 천의 질감이 다양해, 바느질을 했을 때 쉽게 울기도 한다. 특히, 한지는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여러 겹 포개어 붙이는 배접 과정을 거친다. 색색의 조각보를 서로 맞대어 바늘땀이 보이도록 꿰매는 감침질과 색실을 이용한 장식은 전통 조각보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최근 열린
<집과 꽃에 깃든 소망-가화(家花)>展에서는 바느질공예와 콜라주 기법으로 완성한 전통 민화와 조선시대 한옥을 펼쳐놓았다.
우리 선조들은 민화에 다양한 종류의 꽃을 그려 넣어 일상의 안녕과 행복을 염원했다. 가족의 화목과 풍요로움을 추구했던 민화의 이러한 따스함은 제미영 작가에 의해 색색의 조각보 풍경으로 재탄생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화목한 가정을 꾸리면 만사가 잘된다는 축원의 의미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제미영 작가는
<가‘화’만사성>(家花萬事成, 2015, 40x120cm), 즉 집안에 꽃이 가득하면 가정이 화목해진다는 의미로 글귀를 바꾸어놓았다.
실타래로 잇는 공감대
제미영 작가는 캔버스에 바느질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주제를 표현한다. 공예영역에 국한했던 바느질을 현대회화로 끌어온 그녀는 서양화와 동양화를 전공한 후,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펼쳐나 가고 있다. 2010년 겸재정선기념관 내일의 작가, 2011년 이랜드 스페이스 작가공모에 선정되며 주목받은 제미영 작가는 2016년 단원미술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우리 선조들이 흰옷을 즐겨 입어 백의민족이라고 불렸다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색동 조각보를 보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거예요. 얼마나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감을 자랑하는데요.”
전통한복의 오방색과 무채색을 사용한 간결하면서도 대담한 색상 배치, 크고 작은 면들의 중첩, 몬드리안의 회화처럼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인 감각이 절묘하게 녹아든 작품들은 여러 실험을 거쳐 만들어졌다.
조각천을 한 땀 한 땀 꿰매어 완성하는 작업은 꽤 많은 정성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 제미영 작가는 자신만의 색채언어로 전통과 현대를 이어나가며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풍경을 끊임없이 보여주겠노 라고 했다. 2014년
<길상(吉祥)-아름답고 착한 징조>展에서는 우리 전통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꽃을 조각보 방식으로 형상화했다면 분할된 조각 천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색채와 무늬의 절묘한 조화는 또 다른 감상 포인트다. 면과 면이 봉합되면서 솟아오른 틈 사이의 입체적인 볼륨도 시선을 잡아끈다. 종이배, 종이비행기와 같은 현대적 상징물도 등장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종이접기’를 통해 보는 이와 소망의 공감대를 만들고 싶었단다.
“우리 선조들은 민화 속 꽃을 길상으로 여겨 번영, 부귀, 행복 등의 덕담이나 마음의 정표로 사용했다고 해요.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면서도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라잖아요. 비록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 찰나일지라도, 우리는 염원을 담아 행복을 기대해 보아야 합니다. 옛 선조들이 꽃을 보며 염원했던 것처럼, 우리네 어린 시절의 종이접기처럼, 전통의 아름다움과 덕담을 꾹꾹 눌러 담은 작품으로나마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어요.”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으로 새로움을 창조하다
일상이 지루한 이유는 우리가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아서인지 모른다. 제미영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회화적인 순간을 포착한 뒤 오늘을 살아낼 언어의 그림을 그린다. 캔버스 안에 색실로 지은 집은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새로 태어나고, 우리네 일상 속에서 긴 호흡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씨실과 날실 속에 제미영 작가가 한 땀 한 땀 숨겨놓은 이야기들을 찾아 읽다 보면, 한국미를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라고 정의한 미학자 고유섭의 말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의도하지 않은 조각들의 만남, 그리고 이들을 다시 잘라내고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제미영 작가의 작업은 한눈에 보기에도 고생 길이다. 고된 과정에도 지치지 않고 바늘땀을 옮기는 이유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의 얼을 지키고, 또 재생산하고 싶어서다. 전통적인 방식대로 꿰매고, 도로 뜯고, 다시 이어나가는 과정을 반복하며 완성한 오방색의 조각보 풍경은 마치 끊임없이 해체되고 채워지는 시간처럼 우리네 일상을 촘촘히 수놓는다.
작품
<모란>(2014, 130x162cm) 속 비즈들은 손이 닿아야만 비로소 의미를 드러내는 점자(點字)로 여백을 메우고 있다. 수줍게 빛나고 있는 구슬들을 더듬어 문장을 읽고 나면, 감춰졌던 전통미의 속살을 훔쳐본 듯한 기분마저 든다. 쉽게 읽히지 않는 점자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메시지는 희망적이다.
“선조들의 믿음처럼 꽃이라는 존재가 풍요로운 마음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길상이라면, 저는 그 꽃을 우리 세상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싶어요. 우리의 삶도 그리운 집처럼, 따뜻하고 화사한 꽃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고 기대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비록 그림 속 풍경이고, 만들어진 꽃일지라도 말예요.”
글‧윤진아 사진‧안지섭
출처:월간 문화재사랑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