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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곡 최순우의 생전 모습. (이하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News1 |
혜곡(兮谷) 최순우는 평생 한국미를 탐색한 미술사학자다. 1945년 개성부립박물관을 시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하며 문화재 수집과 조사, 연구, 전시, 교육 등에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전쟁 중에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1965년 한일협정 후, 우리 문화재의 반환을 위해 애썼다. 나아가 '한국미술오천년전'과 같은 국외순회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한국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독자성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1974년에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취임해 1984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도자기, 목공예, 회화 분야에서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그가 저술한 글은 '최순우 전집'(전5권)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등의 책으로 엮여 독자와 만났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우리 문화재에 대한 최순우의 남다른 심미안과 탁월한 해석은 지금까지도 학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문화재에 대한 문학적인 비유와 아름다운 어휘로 보는 이의 상상력을 크게 넓혀줬다. 일례로 국보 제92호 '물가풍경무늬 정병'에 대해 저서 '한국미(韓國美) 한국의 마음'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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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가풍경무늬 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고려 12세기, 높이 37.5 ㎝, 입지름 1.1 ㎝, 몸통지름 12.9㎝, 바닥지름 8.6 ㎝, 국보92호 © News1 |
"'맵자하다'(날씬하고 세련된 모양)는 말을 에누리 없이 쓴다면 아마 이러한 고려 청동정병이 지니는 날씬하고 세련된 매무새 같은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 정병은 청동 바탕에 은실로 호수 언저리의 한가로운 자연 정취를 새겨놓은 보기 드문 가작으로 지금은 녹이 나서 연두색으로 변색한 바탕에 수놓아진 은색의 산뜻한 색채 조화가 우선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한다. 수양버들 긴 가지들이 산들바람에 나부끼는 늪가에는 갈대숲이 듬성듬성 우거지고, 물 위에는 한가로이 떠 있는 산오리들, 늪으로 날아들고 날아가는 기러기떼들이 동양화다운 포치로 아취있게 새겨져 있다."
특히 우리 도자에 대한 최순우의 심미안적 해석은 탁월했다. 그는 분청사기의 추상무늬와 물고기무늬에서 기교를 부리지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20세기 화가들의 소묘와 같은 근대적 감각을 읽어냈다. 또 18세기 '달항아리'의 흰빛과 완벽하지 않은 원의 조형을 우리 민족의 어진 마음에 빗대어 풀어내기도 했다.
"한국의 흰 빛깔과 공예 미술에 표현된 둥근 맛은 한국적인 조형미의 특이한 체질의 하나이다. 더구나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백자 항아리의 흰색은 우리 민족의 성정과 그들이 즐기는 색채를 잘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백의민족이라 스스로 불러 보기도 했는데, 우리네의 흰 의복과 백자항아리의 흰색은 같은 마음씨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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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항아리[白磁壺], 조선 18세기, 높이 46.0cm, 입지름 20.3cm, 바닥지름 15.0cm, 몸통지름 46.0㎝© News1 |
최순우의 글을 읽으면 그가 문화재에서 발견한 순응, 해학, 파격, 소박, 품격, 조화의 미에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최순우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 프로그램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을 오는 26일부터 올해 말까지 '통일신라실' '회화실' '불교조각실' '백자실' 등 9개 상설전시실에서 진행한다.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은 최순우가 아끼고 좋아했던 작품들을 그의 글과 함께 소개해 우리 문화재에 대한 그의 생각과 애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별도 전시실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상설전시실에서 최순우가 좋아했던 총 21점 문화재에 최순우의 해설을 곁들여 볼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1층 '통일신라실'의 '돌함과 뼈단지'는 일제강점기에 약탈당했다가 1965년 한일협정을 계기로 우리나라로 돌아온 문화재다. 한일협정 당시 문화재 조사를 담당했던 최순우는 이 뼈단지와 관련된 글을 쓰며 신라인이 가진 형과 선에 대한 감각을 높게 평가했다. 그가 기대했던 대로 돌함과 뼈단지는 1967년 국보125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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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도의 글씨첩[金弘道筆書帖], 조선 18-19세기 초, 세로 34.9 ㎝, 가로 23.6 ㎝. © News1 |
2층 '서화관'에서는 '김홍도서첩', 김두량의 '긁는 개', 김명국의 '달마도' '나전칠 봉황 꽃 새 소나무무늬 빗접' 등을 찾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특히 "'김홍도서첩'과 '긁는 개'는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특별히 새롭게 전시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최순우는 '김홍도서첩'을 조사해 김홍도의 생몰년을 새롭게 밝혔고, 서첩에 포함된 '오수당'(午睡堂) 글자를 판각해 자신의 사랑방 현판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서예실에는 '김홍도서첩'과 함께 최순우의 1977년 신안해저문화재국제학술대회 폐회사 육필 원고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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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량, '긁는 개'(黑狗圖), 조선 18세기,세로 23.0 ㎝, 가로 26.3 ㎝© News1 |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은 3층 조각·공예관으로도 계속 이어져 반가사유상, 철조불두, 물가풍경무늬 정병, 인삼잎무늬 매병, 연꽃 물고기무늬 병, 달항아리 등 15건의 전시품을 만날 수 있다. 최순우는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의 미덕을 “슬픈 얼굴인가 하고 보면 슬픈 것같이 보이지 않고, 미소 짓고 계신가 하고 바라보면 준엄한 기운이 입가에 간신히 흐르는 미소를 누르고 있어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이라고 표현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5월 18일 이번 프로그램 연계 특별 강연으로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최순우 선생의 박물관 사업과 한국 미술사 연구의 의의' 행사도 연다. 문의 (02)2077-9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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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동반가사유상(金銅半跏思惟像), 삼국 7세기 전반, 국보83호 © News1 |
박창욱 기자(cup@)
출처:뉴스 1
http://news1.kr/articles/?26445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