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교육헌장’은 6,70년대 권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유산 중 하나이다. 4,5,60대들은 어릴적 학교에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중략”으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무조건 암기해야 했다. 교실 칠판 옆에는 국민교육헌장이 큰 종이로 인쇄되어 붙어 있었다. 그 당시 학생들은 국민교육헌장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채 그저 외우고 보았다. 국민교육헌장은 과거 우리를 보여주는 시대상이자 사회상이었다.
1973년 전교생 필사본 타임캡슐처럼 보관
권위주의 시대 무조건 외우고 암송해야 했던 국민교육헌장 필사본이 시립박물관의 기증 유물이 되었다. 이 필사본은 인천의 명문고인 제물포고에 1973년 입학한 제 20회 졸업생 6백여 명이 작성한 것이다. 학생들은 A4용지 반 정도 크기의 갱지에 볼펜이나 만년필로 꾹꾹 눌러썼다. 국민교육헌장 전문과 반, 번호, 이름과 쓴 날짜를 기록했는데 1973년 7월 9일 또는 10일로 적혀있다. 또 전문을 다 쓰고 마지막에는 국민교육헌장이 반포되었던 1968년 12월 5일을 적었다. 당시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쓴 이 필사본을 반별로 묵었다. 학교는 1973년 국민교육헌장기념탑을 세우면서 기단 밑에 3개의 항아리에 학년별 필사본을 넣어 ‘타임캡슐’처럼 보관했다.
이 필사본을 인천시립박물관에 기증하는데 앞장섰던 조명진(59)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국민교육헌장 필사는 1학년뿐 만 아니라 2,3학년까지 전교생이 다 썼고, 학교는 이것을 다 함께 보관했다. 1973년 쓴 국민교육헌장 필사본에는 유정복 인천시장 것도 포함되어 있다. 전문을 또박또박 써내려간 청소년기 유정복 시장의 필체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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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1학년 시절(1973년) 유정복 인천시장이 쓴 국민교육헌장 필사본. 당시 1학년 뿐만 아니라 2,3학년 전교생이 국민교육헌장을 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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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기념탑 철거로 세상에 다시 나와
1973년 제물포고등학교 강당(성덕당)앞에 세웠던 이 비석은 2007년 6월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시대상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거 된다. 필사본도 30년도 넘게 땅 밑에 꽁꽁 숨어있다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조명진 선생에 의하면 기념탑을 철거하는 날 학교측은 당시 졸업생 18,19.20기 대표들을 불러 필사본을 가져가게 했다고 한다. 조명진 선생은 친구들이 썼던 국민교육헌장 필사본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는데, '아 그때 그런 것을 썼지‘하며 기억하거나, 아예 ’그런 것이 있었냐‘며 아예 기억조차 못하는 등 친구들의 반응도 제각각 이었다고 전했다. 조 선생은 필체를 보면서 당시 친구들의 옛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필체는 그 사람의 성격, 모습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조 선생은 역사의 한 부분을 담고 있는 필사본을 그냥 버리거나 폐기하는 것이 아까워 고민 끝에 시립박물관과 상의해 2012년 기증 했다. 시립박물관은 필사본을 본 후 국민교육헌장을 새긴 기념판도 같이 보관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선생은 다시 모교에 협조를 요청 후 기념판을 가져올 수 있었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조 선생은 국민교육헌장이 갖고 있는 시대성과 역사성에 주목했다.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찬반논란이나 호불호를 떠나 한 시대의 교육사, 사회상, 시대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자료였기 때문이다. 갱지로 쓴 필사본은 지금도 어제 쓴 것처럼 보존이 잘 되어 있다. 그는 기증유물이 박물관에 있으면 후손들이 두고두고 그 시대를 생각하고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귀한 유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컸다. 조 선생은 필사본을 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동문회에서 공로패를 받았다.
그는 시립박물관에 20기 동기생들의 필사본만 기증했지만 선배기수인 18,19기의 필사본이 아직 있다면 수소문해 기증을 논의해 볼 생각이다. 또 이 필사본이 시립박물관의 기획전이나 특별전에서 시민들과 만나는 기회가 있다면 더 의미를 가질 것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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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고등학교 교정에서, 조명진 기증자 (맨 오른쪽)
박물관 기획전, 특별전에서 시민 만났으면…
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출처:인천시 I-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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