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날 세 번에 걸쳐 빚어낸 명주

조선시대에는 삼해주를 빚는 데 쌀 소비가 너무 많아, 빚지 못하게 해달라는 상소문이 빗발쳤다. 급기야 금주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데, 여타의 술에 비해 삼해주가 두 차례에 걸쳐 덧술을 하는 까닭에 그만큼 식량이 많이 소비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삼해주는 “해일(亥日) 3차례에 걸쳐 술을 빚는다”는 뜻에서 유래한 주(酒)명이다. 명주로 알려진 주품들의 상당수가 돼지날(亥日)에 빚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돼지의 피가 맑고 밝은 연지빛 같아 이날 술을 빚게 되면 맑고 깨끗한 좋은 술이 된다”는 데에서 유래한 풍속이다.

삼해주는 새해가 되어 처음 맞이하는 돼지날에 첫술(밑술)을 빚은 후, 12일이나 36일 간격으로 돌아오는 다음 돼지날에 덧술을 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돼지날에 세 번째 술을 해 넣는 까닭에 술이 익기까지 최소 36~96일이 걸려 ‘백일주’라고도 불렸다. “한겨울에 술을 빚어두었다가 이른 봄 버들강아지가 필 때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고 하여 ‘유서춘(柳絮春)’이라는 낭만적인 별명과 함께 세시주(歲時酒)이자 계절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조선 초기에는 대중적 인기를 얻어 장안의 주가(酒價)를 좌우했는데, 서울 동막 근처가 물맛이 좋아 명산지로 알려졌으며, 약주 삼해주와 소주 삼해주가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헌 속, 기록으로 읽는 삼해주

양주 관련 문헌 가운데 가장 앞선 기록으로 알려진 <산가요록> 을 보면, “정월 첫 해일에 찹쌀 1말을 물에 담가 곱게 가루 내어 푹찐다. 또 끓는 물 11사발과 떡을 합해 죽 쑤어 식히고 누룩가루 7되, 밀가루 3되를 섞어 항에 넣는다. 둘째 해일에 멥쌀 7말 물에 담가 하룻밤 두었다가 가루 내어 끓는 물 8병으로 죽 쑤어 식힌다. 누룩이 없으면 앞의 항아리에 섞어 넣는다. 셋째 해일에 멥쌀 12말 물에 담갔다가 가루 내고 끓는 물 12병으로 죽 쑤어 식혀 항에 넣고 밀봉했다가 버들가지가 처음 날릴 때 열어 쓴다. 이 밖에도 또 두 가지 방법이 있으나 대동소이하다”고 했다.

이를 통해 삼해주에 사용되는 쌀의 양이 12말(斗)임을 알 수 있으며 이는 당시 쌀 생산량과 생활수준을 생각하면 서민층에서 접근할 수 있는 술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대부나 부유층의 술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또한 조선 초기, 이미 저온장기발효를 위한 양주시기로 음력 정월이 선호되었음을 알 수 있고, 단양주법(單釀酒法)의 서양 포도주나 맥주와는 달리 고급 주품을 위한 삼양주법(三釀酒法)의 양주기술이 확립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삼해주는 한 가지 쌀을 사용하면서도 가공방법을 달리함으로써, 알코올 도수는 물론이고 맛과 색, 향취가 다른 술을 얻고자 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사모아의 샐러드 ‘오카’와 곁들인 한 잔

삼해주는 ‘매우 부드럽고 향기로운 순후(醇厚)한 맛’이라 할 수 있다. 순후한 맛을 특징짓는 요인은 삼양주이면서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숙성시킨 때문이다. 소위 ‘명주(名酒)’니 ‘춘주(春酒)’니 하는 별칭이 삼해주에 따라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그에 어울리는 안주 또한 고단백 저지방의 생선회나 민어탕, 진구절판과 같이 담백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안주를 곁들이면 그 맛과 향을 한껏 즐길 수 있다.

삼해주의 칼로리가 다소 높은 관계로 흰살 생선을 활용한 퓨전음식을 찾던 중,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신비의 나라 ‘사모아’의 샐러드를 발견했다. 전통 샐러드인 오카(Okq)는 본래 참치회를 사용하나 좀 더 담백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광어로 바꿔봤다. 깍둑썰기로 잘라놓은 광어회의 비릿한 향을 잡기 위해 라임즙에 재워둔다. 잘게 다진 샐러리와 양파, 파프리카는 재워뒀던 생선회와 한데 넣고 코코넛 크림으로 버무린 후 소금 후추로 간단히 간을 맞추면, 이국적인 사모아 전통 샐러드 오카가 완성된다. 입안가득 번지는 삼해주의 부드러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상큼하고 신선한 생선의 풍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 맛의 궁합이 상당하다. 봄날의 하늘거리는 바람과 꼭 닮은 가볍고도 맑은 한상 차림이다.

글‧박록담(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 사진‧안지섭

출처:월간 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