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별별 박사가 많지만 백제에는 와박사(瓦博士)가 있었다. 와박사는 기와를 전문으로 만드는 기술자 중에서 재능이 뛰어난 장인에게 준 벼슬이다. 백제와 일본의 문화 교류를 설명할 때 와박사는 단골로 등장한다. 6세기 후반 백제는 일본에 불교를 전해 주면서 아스카데라(飛鳥寺)라는 절을 건립해 주었다. 그때 4명의 와박사를 함께 파견했는데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기와집이 세워졌다. 와박사들은 일본의 토기 굽는 공인들에게 기와 만드는 기술을 가르쳤다. 백제에서 건너간 와박사와 그 후예들의 노력 덕분에 기와집은 이후 일본 각지로 퍼져 나갔다.
20세기 초부터 많은 연구자가 와박사의 고향이 어디인지 밝히려고 했다. 아스카데라를 창건할 때 만든 수막새와 똑같은 기와가 백제의 어딘가에서 발견될 것으로 믿었다. 처음에는 부여 부소산성이나 군수리사지(寺址)에 관심이 쏠렸고, 최근에는 왕흥사지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스카데라와 똑같은 무늬를 가진 수막새는 발견되지 않았다. 두 나라의 기와가 서로 비슷하기는 해도 똑같지는 않아 와박사의 원류를 밝히는 문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와박사를 보면서 우리는 일본에 대한 문화적 우월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 우리 조상들이 일본 고대 문화의 토대를 닦아주었다고. 하지만 백제가 진정 고수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백제는 그런 문화 교류를 통해 일본의 외교적인 협력과 군사적인 지원을 받았다. 660년 백제가 멸망했을 때 수만 명의 구원군이 일본에서 파견된 배경에는 예전 부터 지속된 두 나라의 밀접한 교류가 있었다.
오늘날도 그렇듯이 국제 관계에서 한 나라의 일방적인 지원은 있을 수 없다. 1400년 전 와박사가 보여준 백제 문화의 동류(東流)는 국제 외교에서 문화 교류가 갖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현재의 국가 간 정치·군사적 대립을 완화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문화 교류가 아닐까. 한류(韓流)의 가치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