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인뉴스 강주영]
현대 소설에 위에 우리 가락을 살짝 얹어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만남, ‘두산 아트랩’. 40세 이하의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실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보통은 쇼 케이스 형식으로 진행된다. 무대도 완성되기 전의 모습으로 최소한의 필요로 갖춰 간소화 돼 있다. 그렇기에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민낯에 어딘가 어색하기도하고, 부족해 보이는 부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들로 가득한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 같아 재미있다. 톡톡 튀는 생각들과 용기 도전이 창작의 범위를 넓혀가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간다. 그런 의미에서 근현대의 짧은 단편들로 꾸준히 판소리를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이자람’을 높이 산다.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잊혀져가는 우리 문학의 한 장르를 새롭게 개척해 가는 그녀의 노력에 박수를.
판소리를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 사람이 모든 몫의 연기를 하기에 새롭게 전환 되는 부분이 적어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작창자 역시 혼자서 긴 시간 동안 그 많은 이야기를 하며 다양한 인물들을 표현해 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자체가 문화재이며, 장인이다. 거기에 창이 들어가는데 고수가 북만으로 반주를 한다.
물론 그만으로도 깊이 있고 특색 있는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을 것도 같다. 또 ‘판소리!’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다섯 개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도 함정이다. 국어시간에 열심히 외운 다섯 작품들, 기억은 나시려나? 여전히 지혜는 넘치지만 새로움은 아쉽다.
이자람은 이런 판소리에 우리의 단편 소설을 담았다. 짧고 강하게 흘러가는 단문과 시대의 모습을 담은 주제들은 지금 우리 삶에 가까이 닿아 있다. 재치 있는 대사와 어우러지는 장단과 비트는 판소리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도 재미를 준다. 그리고 간소하지만 다양한 무대 장치와 도구들을 사용해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재미를 높였다. <추물/살인>에서 보았던 예쁜 병풍과 한복 저고리를 기억한다. 그 자체가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졌던.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무대
이번에는 김애란의 소설이다. 최근 사소한 일상과 소재들에 새롭고 독특한 시작으로 허를 지르게 한다.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우리가 꿈꾸는 기존의 드라마 주인공과는 다르다. 그냥 사람들, 너무 평범한 나와 내 이웃이다. 거기에 질리도록 사실적이고 치밀한 관찰은 볼품없는 우리의 인생의 일면을 객관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까발려진 스스로의 모습에 놀란다.
판소리 <여보세요>는 소리만 남고 소통은 사라진 우리 현대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사회가 축소되어 한 하숙집으로 응축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한 평범한 여대생의 삶으로 대변된다. 졸업 후 취업 걱정에 휴학을 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녀가 쓰는 화장품과 그녀가 신는 운동화, 그녀의 방과 하루 일과는 지금 당신의 모습과 같다. 당신 가방에 들어있는 그 브랜드, 당신이 신은 신발 모양, 당신이 아침에 펼쳐두고 나온 이불 커버, 지금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 그 이어폰으로 나오는 노래, 카톡 메시지.
무대에는 마치 사물함과 같은 모양의 상자 12개가 ㄱ자 모양으로 하수에 모서리처럼 2층으로 쌓여 있다. 그 위에는 메트로놈이 있다. 이것은 주인공이 사는 하숙집을 형상화 해 놓은 것이다. 상수에는 고수(이향하)가 있는데 북을 메인으로 하되 그 밖에도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소리를 연출한다. 유리 물병부터 밥공기, 목탁까지 여러 가지 도구가 소리를 만든다. 마치 소리꾼과 하나가 된 듯 죽이 잘 맞는다.
소리꾼 ‘이승희’는 전에 다른 작품에서도 만났었다. 참으로 단아한 외모에 걸쭉한 소리가 매력적이다. 그녀는 캐주얼해 보이는 편한 차림에 조끼 형식의 짧은 앞치마를 입었다. 그 주머니에 필요한 소품을 담아 두었다 사용한다. 우리의 주인공 ‘승하’(이 작품의 주인공은 누구나이기 때문에 이름은 자신의 이름과 고수의 이름에서 하나씩 땄단다.) 연기 뿐 아니라 주인집 아주머니, 이름도 얼굴도 모를 하숙집 언니들까지 해낸다. 그 긴 이야기를 어떻게 다 외웠을까 대단하다. 관객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는 배우, 그리고 작품이었다. ‘옛날 사람들이 이런 재미로 판소리를 들었, 아니 봤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숙집에서는 누군가 정해놓은 적 없지만 누구나 지키는 규칙 같은 것이 있다. ‘절대 마주치지 말기’ 모두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생활하지만, 소통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포스트잇’ 경고만이 있을 뿐이다. 하루 종일 스팸 메시지, 플친의 광고 카톡이 온다. 하지만 답장을 보낼 곳은 없다. 일방통행. 조명과 소리를 통해 다양하게 연출된 장면들도 많았는데 특히 마지막이 인상적이었다.
‘승하’가 모든 사람들의 방을 하나씩 다 들어가 보고, 마치 붙여 넣은 듯 똑같은 방의 모습은 그녀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승하는 극심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녀가 문을 열 때마다 움직이기 시작한 메트로놈은 마치 끝을 향해 가는 시계소리 같이 분위기를 초조하게 만든다. 5대의 메트로놈, 그리고 녹음되어 반복되는 자신의 소리는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 주었다. 어두운 조명은 그런 주인공의 심정을 더 조인다. 그 순간의 소리와 빛이 만들어낸 몰입감은 훌륭했다. 꽤 재미있다. 원작도 탄탄하려니와 연출과 배우들의 해석과 이해도 잘 맞았던 것 같다. 사진제공 : 두산아트센터
※ 두산 아트 랩
기간 : 2016. 2.18(목)~3.19(토)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가격 : 무료(1인 1장, 선착순 마감) 두산아트센터 doosanartcenter.com
문의 : 두산아트센터 02-708-5001
공연
02.18(목)~02.20(토) / 이승희, 이향하 / 판소리 <여보세요>
02.25(목)~02.27(토) / 황이선 / 연극 <앨리스를 찾아서>
03.03(목)~03.05(토) / 정동욱 / 다원 <디지털 네이션>
03.10(목)~03.12(토) / 신유청 / 연극 <소리의 威力위력>
03.17(목)~03.19(토) / 장현준 /다원 <몸으로 거론한다는 것>
강주영 withinnews@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