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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훈의 ‘해동고승전’ 불교 전래사 기술
고승 업적 찬양·호교론적 서술 대부분
일연의 ‘삼국유사’ 韓 고대 실상 그려
단군, 한반도 역사 공동체 시조 ‘부상’
고대 한인 문화 살펴보는 사료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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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시대 고승인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를 기술했다. 〈삼국유사〉는 고대 한국인의 생활상과 문화, 관습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변방에 있던 단군을 한반도 역사공동체의 시조로 부상시켰다. | 한국불교의 자화상은 이른 시기부터 그려지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승전류 불교사서는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초에 〈계림잡전〉의 저자 김대문이 펴낸 〈고승전〉이었는데, 이는 현존하지는 않는다. 9세기 후반 최치원도 여러 고승들의 비문과 전기를 짓는 등 한국불교사의 조형에 필수적인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고려시대에도 승전류와 불교사서가 편술되었는데, 11세기 후반 의천이 읽었다는 〈해동승전〉의 명칭이 확인되며, 여기서 다룰 각훈(?~1230)의 〈해동고승전〉과 일연(1206~1289)의 〈삼국유사〉가 나왔다. 또 13세기에 활동한 천태종 진정국사 천책이 1268년 무렵에 편찬한 〈해동법화전홍록〉4권은 법화신앙의 영험담을 수록한 책이다.
한편 근대기 송광사의 학승 금명 보정(1861~1930)의 〈조계고승전〉 ‘서문’에는 중국과 한국의 역대 승전 내역이 소개되어 있다. 보정은 고승전 편찬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중국 남조 양의 혜교가 펴낸 〈(양)고승전〉, 보창의 〈명승전〉, 당의 의정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 도선의 〈속고승전〉, 송의 찬영이 편찬한 〈송고승전〉, 금의 세종이 쓴 어제 40권, 원대 담악의 〈육학승전〉 등 중국의 승전류를 소개하였다. 이어 한국에서도 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었지만 승전류가 별로 없다고 하면서 신라 원효의 〈신승전〉과 각훈의 〈해동고승전〉 등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원효의 〈신승전〉은 전하지 않으며 그 실체조차 불분명하다.
여기서는 현존하는 대표적 불교사서인 〈해동고승전〉과 〈삼국유사〉를 통해 고려시대 불교사 인식과 당시 조형된 한국불교의 자화상을 검토해 본다. 먼저 〈해동고승전〉은 1215년 각훈이 고려 고종의 왕명을 받아 편찬하였다. 각훈은 개경의 흥왕사와 영통사에 주석했던 화엄종 승려였고 교종의 최고위 승계인 승통의 바로 아래 수좌에 오른 고승이었다. 그는 이인로, 임춘 등 당대 일류 문사들과 교류하였고 입적하였을 때 이규보가 “법문의 대들보가 꺾였으니 후학들은 누구에 의지해 화엄의 십현 연기의 이치를 따지고 궁구하겠는가?”라고 아쉬워했을 정도로 당시 화엄종을 대표하는 승려였다. 하지만 그의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아 알 수 없다.
〈해동고승전〉은 유통편 일부만 남아있는 잔본이지만, 불교 전래 후 당시까지 약 800여 년간의 고승들의 전기를 모아 서술한 책이다. 현존하는 유통편에는 앞에 한국의 불교 유통을 개관하는 글이 나오고 이어 삼국의 불교 공인, 구법 및 교학과 관련된 35명 고승들의 행록, 11개의 찬이 수록되어 있다. 35명의 고승 가운데 정전은 18명, 방전은 17명으로 정전에는 삼국에 불교를 전한 순도, 마라난타, 아도와 교학승 원광 등이 실려 있고 방전에는 불교의 신라 전래와 관련된 묵호자를 비롯해 서역과 중국 승려의 승전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구법 승려로 알려진 각덕, 안함 등은 중국에 유학을 갔고 아리야발마, 현태 등은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난 이들이었다.
〈해동고승전〉에는 〈속(당)고승전〉, 〈송고승전〉 등 중국의 대표적 고승전류는 물론 〈국사〉, 〈수이전〉 등 신라의 고문헌, 비문 등 다양한 형태의 자료들이 인용되어 있다. 하지만 여러 기록들의 차이점을 비교해 사실 여부를 밝히는 데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주로 고승들의 업적을 선양하고 해동불교의 위대한 역사를 설명하는데 의미를 두었다. 즉 이 책에는 전법과 교화를 통해 해동에 불법이 퍼지고 불교가 유통되면서 선행과 공덕이 쌓이고 문화가 발전했다는 호교론적 인식이 주를 이룬다.
〈해동고승전〉은 뒤에 나온 〈삼국유사〉나 〈법화영험전〉 등 불교사서에서 인용하고 있고 조선후기인 1637년에 편찬된 〈해동문헌총록〉에도 서명이 기재되어 있다. 하지만 이후 널리 유통되거나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10년대에 해인사 주지 이회광에 의해 2권 1책의 사본 일부가 공개되었고 이때 필사된 책이 일본에 건너가 〈대정신수대장경〉에도 수록되었다.
〈삼국유사〉는 역사와 지리, 언어와 문학, 사상과 종교, 민속과 문화, 미술과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고대 한국의 실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 통로를 제공한 책이다. 한국불교사는 물론 고대 한국인의 가치관, 생활상, 문화적 양태를 이해하려 할 때 가장 요긴한 기록물인 것이다. 저자 일연은 선과 교에 정통한 선승이자 학승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마치 역사학자처럼 현지를 직접 발로 뛰면서 고문헌, 금석문, 고문서, 사지, 설화, 향가 등 수많은 자료들을 조사, 수집하였다.
〈삼국유사〉에는 그가 눈으로 직접 본 유물 및 유적의 실태 등 생생한 현장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다만 일연의 주요 활동무대가 경상도였고 그가 입수한 자료의 지역적 범위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신라 중심의 서술이 된 점은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일연의 호는 목암, 시호는 보각으로 선종의 승계 가운데 가장 높은 대선사를 받았다. 원효와 같은 경상북도 경산 출신으로 1219년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에서 출가했는데 이곳은 821년 남종선을 처음 전래한 도의선사가 주석했던 곳이다.
일연은 1227년 선종 승과에 수석으로 합격하고 대구 비슬산 보당암에서 참선에 매진하였다. 1236년 몽골군의 3차 침입 때는 문수보살의 계시를 받아 북쪽 무주암으로 거처를 옮겨서 깨우침을 얻었다. 1249년에는 남해의 정림사에 머물면서 분사대장도감에서 주도한 재조대장경 판각 사업에 3년간 참여하였으며 이후 조정에서 주관한 대장경 낙성 회향 법회를 주관하였다. 영일의 오어사, 비슬산의 인흥사와 용천사에 주석하였고 불일결사를 조직하기도 했다.
1277년부터 청도 운문사에 있었는데 이때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1281년에는 충렬왕의 경주 행차 때 동행하여 몽골군이 불태운 황룡사의 폐허를 목도하였고 1282년부터는 왕명으로 개경 광명사로 옮겼고 다음 해에는 이전의 국사에 해당하는 국존으로 책봉되었다. 1284년 군위의 인각사를 중수하고 구산선문 문도회를 두 차례 개최하였다. 이때부터 1289년 입적 전까지 〈삼국유사〉 찬술이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저술로는 선종의 법맥을 그린 〈조파도〉 2권, 〈중편조동오위〉 2권, 〈조정사원〉 30권, 〈선문염송사원〉 30권 등 다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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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제306-2호 〈삼국유사> |
〈삼국유사〉 5권은 왕력, 기이,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의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한국고대사에 해당하는 왕력과 기이편, 불교사에 관한 흥법편 이하로 나눌 수 있다.
왕력은 역대 왕조의 연혁을 간략히 기재한 것이고 신이한 일들을 기록한다는 뜻의 기이편은 항목 수로는 〈삼국유사〉 전체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이편은 고조선, 삼국과 가야, 통일신라와 후삼국까지를 다루었고 현존하는 역사서 가운데 최초로 고조선과 단군을 수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의해편, 감통편은 중국의 고승전 체제에서 영향을 받은 편목이지만 탑상편과 효선편은 여타 불교사서나 승전류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삼국유사〉만의 독특한 편제였다.
흥법편은 불교 수용과 성행 양상에 대한 기술로서 고구려의 순도, 백제의 마라난타, 신라의 아도에 의한 불교 전래와 이차돈과 법흥왕의 불교 공인, 흥륜사 금당의 10성인 등 주로 신라불교의 양상을 다루었다. 탑상편은 탑과 불상 관련 사실들과 설화를 실었고 의해편에서는 원광, 양지, 혜숙, 혜공, 자장, 원효, 의상, 진표, 태현 등의 전기를 간략히 서술하였으며 서역 구법승도 언급하였다. 신주편은 밀본, 혜통, 명랑 등 신이한 행적을 보인 밀교 승려들의 이적을 소개하였고 외적의 침입을 막아낸 호국불교의 영험함을 강조하였다. 감통편에서는 불교신앙과 영이한 감응을 소개하였는데, 현실의 고통을 구제하고 이로움을 주는 관음보살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피은편은 은둔하며 수행한 이들의 행적을 다룬 것으로 일연이 주로 머무른 비슬산에 숨어 지냈던 신라의 관기와 도성, 벼슬을 버리고 지리산 단속사로 들어가 수행한 신충의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효선편에는 각종 효행 사례와 불교의 효 관념을 제시하였다.
〈삼국유사〉는 1280년대 후반에 저술이 완료되어 1310년대에 무극에 의해 처음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해당 판본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조선 초에 초간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었다. 현존 판본 중에는 1512년 경주부윤 이계복이 5권 2책으로 중간한 중종 임신본(정덕본)이 완질본으로서 대표성을 갖는다. 당시 여러 곳에서 나누어 판각을 했던 관계로 같은 판본이지만 서법이나 각법에서 서로 다른 부분이 나온다.
중종 임신본의 인본으로는 초기에 찍은 고려대 중앙도서관본, 완본이지만 약간의 가필이 있는 서울대본, 그리고 만송문고본, 순암수택본(일본 텐리대학 도서관) 등이 있다. 이밖에도 조선 초기 것으로 추정되는 석남본, 송은본(곽영대본), 니산본(성암고서박물관), 조종업본, 범어사본, 파른본(손보기본) 등 여러 판본이 잔본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에서 일연은 한국의 역사전통을 불교를 중심으로 파악하였다. ‘황룡사구층탑’ 항목에서 불법의 위력으로 삼국이 통일되고 한 나라가 되었음을 강조하였고, ‘고조선’ 항목에서는 단군신화를 서술하면서 환인을 불교의 제석, 환웅을 천왕으로 설명하였다.
〈삼국유사〉에는 〈해동고승전〉이 10여 군데 인용되었으며 중국과 한국의 여러 불교사서와 승전 기록을 섭렵하여 그 내용을 반영하였는데, 이는 고대의 한국불교사를 집성하려는 원대한 목표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만 자료의 출전이나 근거를 밝히지 않은 항목도 반 가까이 되어 해당 기록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 고승전에 실린 신라 승려들 가운데 순경, 원표 등 몇몇 인물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거나 신라 하대의 선종 수용에 대한 서술이 없다는 점도 이 책의 한계로 지적되었다.
〈삼국유사〉는 ‘유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의 정사에서 생략되거나 배제된 역사를 추가하고 보완하려는 의도에서 저술되었다. 정치사와 관련된 왕력과 기이편이 책의 절반 분량을 차지하고, 유교사관에 입각한 〈삼국사기〉를 다수 인용하면서도 이적과 영험을 담은 기록이나 내용을 다수 수록한 것은 그의 저술 목적을 잘 보여준다.
일연은 기이편 서문에서 “성인이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로 가르침을 베푸는데 있어 괴력난신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일어날 때는 천명을 받고 상서를 받아서 반드시 남과 다른 점이 있어야 큰 변화를 타고 대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한 데서 나왔다는 것이 과연 무엇이 괴이하겠는가?”라고 하여, 고대국가 창업주들의 기이하고 상서로운 행적을 당당히 역사서술에 반영해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였다.
일연은 무인정권과 대몽항쟁, 원간섭기의 극심한 혼란기를 겪으면서 고려의 민족공동체와 문화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과 자각을 하였다. 그 결과 고려의 오랜 역사와 자랑스러운 불교 전통을 역사서로 남기려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삼국유사〉를 통해 그 이전에 지역 수호신 차원에 머물던 단군이 역사공동체의 시조라는 전국구 스타로 화려하게 부상하였고 고려는 단군을 통해 중국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대등한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일연은 고대로부터 전해진 설화와 영험담을 그대로 수록하여 불교신앙의 종교적 경건함을 되살렸고 무엇보다 고대 한국의 생생한 모습을 담아 가감 없이 후세에 전하였다.
출처:현대불교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54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