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마섬이 세계유산 되던 날, 나는 그곳에 있었다

“헤이, 귀요미. 네가 유네스코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니?”

by 안현선

무한도전으로 다시 하시마섬, 군함도가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탄광산업이 발달한 곳,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선 일본 근대화를 상징하는 의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그곳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뼈아픈 역사가 감춰져 있다.

하시마섬의 등재 여부가 결정되던 2015년 7월 5일, 나는 독일 본 시티의 유네스코 단체협의장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이상 고온으로 그늘 없이는 밖에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었다. 나는 왼팔에는 재독일 한국 단체에서 부탁 받은 전단지를 들고 흐르는 땀을 연신 닦으며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회의장 앞에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 각국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위원회 대표들에게 한 번 읽어봐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초 7월초에 가족과 미국을 여행하며 대학 투어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던 차에 국내 NGO 단체가 제작한 한국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동영상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돕게 됐다. 일본이 자국의 근대화에 큰 공헌을 한 23개의 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의 문제점도 알게 되었다. 그중에는 나가사키 조선소의 제3센쿄, 대형크레인과 옛 목형장 3곳, 다키시마 과업소의 다카시마 탄광, 하시마 탄광, 미이케 탄광, 야하타 제철소 등 7개소가 포함됐다. 모두 태평양 전쟁 중에 총 5만 7900여 명의 조선인이 강제징용된 곳이다. 이에 한국 정부는 등재 저지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했다.

나도 힘이 되고 싶었다. 미국 대학 투어를 포기하고 수요집회에서 만나 함께 번역 봉사를 했던 청소년인권단체 HOPE 친구들과 독일로 떠났다. 정확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누구를 만날지도 몰랐지만 우리는 무조건 가고 싶었다. 그리고 도착한 ‘UN의 도시’ 독일 본시티는 아무 일도 없는 듯 고요했다. 도착 다음 날, 우리는 민족 문제 연구소에서 연 전시회를 찾아 각종 영상 자료와 포시터들, 전달지들을 보며 더 현실적이고, 숨어 있던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전시물들이 영어로 제작되어 있었는데, 이를 보며 외국어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다행히 영어에 능했던 우리들은 간혹 들어오는 외국인 관람자들에게 간단하게 소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유네스코 대표단들이 머무르는 호텔에서 개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거의 보기 힘들었고, 가끔씩 방문한 사람들도 그다지 큰 관심은 없어 보여 속상했다. 그래서 우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건물로 가보기로 했다.

건물 앞에는 작은 시위용 천막이 있었고, 십여 명 정도 나이가 지긋한 한국 분들이 모여 계셨다. 그분들은 어린 우리가 신기한 듯 가까이 오라고 부르셨다. 바로 얼마 전 많은 인기를 끌었던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들이었다.

간호사로 파견 나왔다가 독일에 정착한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랜 시간 한국을 못 가보았지만, 이번 소식을 듣고 시위에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하시마 섬의 등재를 저지하기 위해 몇 시간씩 기차를 타고 오신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는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아주 뿌듯하게 생각하셨다.

우리에게 손수 준비하신 김밥과 음료수를 나눠 주고, 질문을 하며 젊은이들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당부하셨다. 이분들이 부탁하신 전단지를 받아 들고 우리는 건물 앞으로 다가갔다. 폴리스 라인이 있어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회의를 끝내고 나오는 각국 대표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때 멀리서 열명 정도 되는 무리의 태국대표단이 우리를 향해 왔다.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동질감으로 나는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hi,  이 전단지 좀 읽어봐주세요”

“well, how cute. 네가 유네스코를 바꿀수 있다고 생각하니?”

따뜻한 격려는커녕 한심하다는 얼굴로 쳐다보며 그 여자 대표는 한국의 시위대를 비웃었다. 나는 잠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오케이” 라는 애매한 인사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렇게 전단지를 모두 나눠주고 호텔로 돌아왔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들의 기분은 좋았다, 싫었다 물결치듯 바뀌었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역겨운 냄새가 나는 콩갯묵과 고구마 줄기를 끓인 죽을 먹으며 간신히 연명하던 곳으로, 강제징용 생존자 중 한 분인 김한수(95) 선생의 말씀처럼 “죄 없는 조선인들이 체인에 끌려 발가락이 부러져도 일어나 일을 하며 이유 없이 난타질을 당했던” 바로 그곳이 지금은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자국 근대화 이바지한 산업시설이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도 않은 채 우리의 고통의 장소가 그들의 발전의 기념물이 되게 할 수는 없었다. 나쁜 역사도 역사이므로 기억할 가치가 있다는 말을 이해하지만, 그 전에 그것은 ‘나쁜 역사’였다는 인식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결국 “강제징용”이라는 표현을 주석에 달기로 한 한일 협의가 발표되고 만장일치로 일본의 요구대로 일본 근대화 시설 23곳이 등재되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한국과 일본은 다시 “강제징용”이라는 영어 표현을 두고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역사의 시대적 후퇴를 경험하는 느낌이 들었다. 왜 한일간의 일들은 이렇게 항상 애매모호한 결과를 내는 걸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과 일본의 전후 보상과 전범 처리에 대한 태도는 자주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한 일본 관리는 독일의 유대인 탄압은 자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탄압이었고, 일본의 조선인 탄압은 자국의 제2시민에 대한 탄압이었기 때문에 서로 경우가 다르다고 말이다.

미쯔비시 사장은 중국과 미국 해외 강제노역 복무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고 보상을 약속했다. 단, 한국만 제외되었다. 당시 조선인은 일본의 시민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다르게 생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인이 일본의 제2시민이라는 논리가 반복된다.

하지만 조선인이 일본의 제2시민이기 때문에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건의 재해석”이고, 우리가 원하는 “조선인의 인권 침해에 대한 인정”은 바로 “역사적 사건의 진실”이다.

일본은 끊임없이 그들의 과거를 미화하고, 작은 반성과 미래의 큰 희망을 대조시키며 잘못을 지워나간다. 아무리 지워도 흔적은 남는다. 아무리 외면하고 회피해도 이 사실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이 존재하지는 지도 모르던 내가, 무명의 한국 고등학생이 그날, 2015년 7월 5일에 그곳에 서 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난 그들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목격했다. 나는 그들이 찬란하게 밝히고 싶어하는 미래를 함께할 세대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주장에 담긴 모순과 얄팍한 수법 등이 전부였다. 나는 지금의 그들의 주장과 접근법을 정확히 목격하고 기억해 이 사건의 진실을 미래에 알리고 싶다.

30년 전 어머니 세대에 우리 밥상을 풍미했던 코끼리 밥솥은 이제 한국의 쿠쿠가 앞질렀고,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던 소니의 TV와 워크맨은 지금 삼성과 LG가 앞질렀다. 그 당시에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일이 불과 30년 만에 일어났다. 따라서 앞으로 30년 동안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어떤 일이 생길 것이다. 유네스코 건물 앞에서 많은 대표단 사람들은 나에게 흥미를 보였다. 내가 묻기도 전에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를 꺼낸 이도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니다, 나는 유네스코를 바꾸려고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실제로 당시 일본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고 싶었고, 한국의 젊은이들이 지금의 상황을 알고 있으며, 우리 역사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기억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당신에게 내가 알려주고 있는 것을, 당신이 앞으로 나를 기억할 것처럼 말이다.’

태국의 대표단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이러한 노력을 이어가기 위해 나는 친구들과 함께 인권 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 교육자들의 유럽 연합회의 간부와 이야기를 나누며 다가오는 겨울, 암스테르담을 방문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곳에서 많은 유럽 젊은이들을 만나 우리의 역사와 진실을 알리고 그들의 생각과 관심을 이끌어내는 노력을 할 것이다. 사라져가는 역사의 흔적이 나를 통해 새로운 발자국으로 깊게 새겨지도록 만들 것이다. 나는 ‘우리의 문제’를 세계적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해결하는 세계 시민의 자세를 갖추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신인류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글=안현선(서울국제학교 3) TONG청소년기자, 청소년사회문제연구소 본부

hyunsun.ahn16@gmail.com

도움=이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