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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화승총을 아시나요?

커피로 그리는 인천萬畵

인천시민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그 양요들이 인천과 강화도를 무대로 벌어진 전쟁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사용된 우리 조선군의 주력 개인화기가 강화화승총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역시 드물다. 또한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조차 화승총이 어떤 총인지 잘 모른다. 그나마 ‘징비록’ 등의 사극에 자주 등장한 탓에 대충 ‘화승총’이라는 이름만 얼핏 알고 있을 정도다. 물론 사극에 등장하는, 고증되지 않은 엉터리 화승총 소품 탓에 한류드라마의 위상이 비웃음을 사고 있는 현실은 차치하자.

커피로 그린 강화화승총

화승총이란 화승(火繩), 즉 불붙인 노끈으로 화약을 터트려 연자(납총알)를 발사하는 구닥다리 총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하여 ‘조총(鳥銃)’이라 불렸지만, 유효사거리가 고작 20~30여 미터에 불과하고, 전장식 활강총인 까닭에 명중률은 신통치 않았다. 게다가 한발 발사한 다음 재장전에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그마저도 사격이 불가능한,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작대기보다 조금 나은 총이다.
하지만 이 총은 16세기경 대표적 해양진출 세력이던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에서 처음 발명된 이후, 칼과 창으로 치러내던 세계전쟁사를 일거에 바꿔놓은 혁명적인 물건이다.

커피로 그린 강화화승총-화승에 불이 붙어 연기를 내고 있다

이 화승총의 제조기술이 일본에 전래된 것은 1543년 포르투갈 상인이 탄 배가 폭풍을 만나 일본의 ‘타네가시마(種子島)’에 피항(避航)하게 되면서다. 니폰도(日本刀)를 만들던 뛰어난 단조기술을 보유한 일본은 우여곡절 끝에 화승총의 대량복제에 성공했고, 이 화승총으로 무장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기어코 조선을 침공하기에 이른다. 1592년의 임진왜란이 그것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3년 전에 대마도 도주 타이라 요시모토(平義智)가 화승총 3자루를 조선조정에 보내 일본 본도의 전쟁야심을 넌지시 고했으나, 선조임금은 이 총을 그저 군기시에 보관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그 결과는 너무도 참혹했다. 수많은 백성들의 희생과 이순신장군과 같은 불세출의 영웅들로 인해 겨우 종묘사직을 건진 선조임금은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전력으로 화승총 무장을 독려했다. 그러나 ‘주물방식’에 의존한 조선의 화승총 대량복제생산은 그 기술력의 한계로 지난하기만 했다.

어쨌든 그렇게 조선군의 주력 개인화기로 자리 잡은 화승총은 이후 병자호란 등의 전쟁을 치러내면서도 별다른 개선이나 기술발전 없이 무려 300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결국 1866년 프랑스와 1871년 미국의 최신식 강선형 후장식 연발 라이플과 맞선다. 바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다. 전쟁은 일방적이었지만, 당시 러시아에까지 위용을 떨치던 백두산 범포수들의 손에 굳게 쥐어진 이 눈물겨운 구닥다리총은 이 땅과 민족을 지켜내기 위해 총열이 찢겨나갈 정도로 매캐한 화약연기와 불똥을 쉴 새 없이 뿜어댔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군과 의병들의 손에 쥐어져 만주벌판을 누비기도 했던 이 총은 그러나 새롭게 진화한 신형무기들에 밀려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현재 여느 전쟁박물관에나 한두 자루쯤 소장되어 있는 화승총은 사실 대부분 그 출처가 불확실하다. 그나마 개인들이 은밀히 소장하던 화승총들도 태평양전쟁 막바지 전쟁물자가 부족했던 일제의 쇠붙이 공출등살에 땅속으로 묻히거나 사라져 그 씨가 말라버렸다. 현재 유물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존재하는 화승총들은 거개가 일본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일본식 화승총일 개연성이 크다.
그런 가운데 그 출처가 분명하게 명시된 화승총 한 자루가 갑자기 등장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바로 2010년 3월 4일 재일교포 이석조선생(70세 일본이름: 기모토 토시오-木元敏夫)이 국립박물관에 기증한 화승총이다.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강화화승총

이 화승총에는 ‘신축개비강화고장(辛丑改備江華庫藏)-신축년에 강화무기고를 고쳐 만들며 격납하다’는 명문이 먹글씨로 분명하게 씌어 있고, 조선황실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또한 총열의 콧등부분에는 무(武)라는 글자가 황동으로 상감되어져 있다. 개머리판 부분에는 황동 판이 덧대어져 있어서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수려한 외형을 갖추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들로 인해 혹자는 이 화승총이 실전용이 아니라 장식용이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가 국립박물관의 무기수장고에서 이 화승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본 결과, 화명(선약접시)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화약폭발 자국과 시커멓게 그을린 총구 등에서 여러 차례 사격한 흔적이 선명하였다. 결코 장식용이라고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는 증거들이다.

강화화승총의 화명(선약접시) 부분에 얼룩진 화약폭발 자국이 선명하다

하지만 국립박물관의 화승총이 장식용이었는지 실전용이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까지 시기와 출처가 분명한 최초이자 유일한 조선의 화승총이라는 사실, 그것이 현재 국내에 존재하는 그 어떤 화승총보다 가치 있고 소중한 이유다.

1901년의 그 암울했던 격동의 시기에 인천의 강화도에서 조선의 이름 모를 병사가 이 총을 움켜잡고, 기울어 가던 나라를 되살리고자 뜨거운 불똥을 통곡처럼 인천 앞바다를 향해 쏟아냈으리라.
지금 인터넷에서는 이 화승총을 ‘강화화승총’이라 명명하고 이 총을 복원하여 이 총의 정신을 되살리자는 시민모임이 물밑에서 서서히 불붙는 중이다.

글, 커피그림 유사랑 I-View객원기자 youliebe7@naver.com

출처:인천시 I-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