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투르크 계통과 같아 발해의 초원 문화 유입된 증거" 콕샤롭카 유적에선 위구르 토기 "발해, 초원과 교역하려 北진출"
고대 유라시아 초원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원시 악기인 바르간(口琴)이 러시아 연해주의 발해 유적에서 처음으로 출토됐다.
강인욱 경희대 교수(북방고고학)는 "러시아과학원 극동지부가 연차 발굴 중인 연해주 중부의 발해 유적 니콜라예프카(Nikolaevka) 성터에서 9세기 무렵의 철제 바르간이 2013년 출토됐다"며 "최근 발굴 현장을 답사하고 연구소에서 유물을 직접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발해뿐 아니라 만주 지역에서 바르간이 출토된 것은 처음인 데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출토된 철제 바르간 중 최고(最古)의 실물 자료다.
◇"발해에 초원 문화가 유입된 증거"
'입으로 부는 하프'라 불리는 바르간은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는 악기다. 유럽에서 시베리아 일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에까지 분포하며 주로 야쿠트, 알타이족 등 시베리아의 투르크 계통 민족들이 사용한다. 영어로는 유대인의 하프라는 뜻의 'jew's harp'(유대인 기원이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말로는 '구금(口琴)'이라 불린다. 손가락만 한 크기의 편자형으로 테두리가 돼 있고 그 안에 기다란 철판을 단 형태다. 입에 물고 가볍게 철판의 현을 튕겨 소리를 내는데 관악기와 현악기가 결합된 특이한 악기다.
러시아 연해주의 발해 유적인 니콜라예프카 성터에서 출토된 바르간(위사진 위부터 앞·옆·뒷면). 손가락만 한 작은 크기이며 입에 물고 가볍게 철판의 현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로 ‘입으로 부는 하프’라 불린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바르간을 실제 연주하는 모습, 왼쪽은 바르간 사진이다. /니나 레센코 박사·강인욱 교수 제공
강 교수는 "이번에 발해에서 출토된 바르간은 심하게 녹이 슬었고 가운데 철판은 유실됐지만 전체 크기와 형태는 시베리아 투르크 계통 주민들이 사용하는 바르간과 똑같은 형태"라며 "한반도는 물론 만주 지역에서도 한 번도 출토된 적 없는 초원의 유물이 발해에서 나왔다는 건 발해에 초원 문화가 직접 유입된 증거이며 발해 안에서도 투르크 계통 사람들이 직접 거주하거나 교류했던 흔적"이라고 했다.
◇"발해는 유라시아 초원과 교역하기 위해 북쪽으로 진출"
강 교수는 11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경희대 인문학연구원 한국고대사 고고학연구소가 주최하는 '고대 북방 제민족의 고고학' 학술발표회에서 '발해의 북변 확장과 유라시아 초원 지역과의 교류-최신 고고학적 자료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한다.
강 교수는 "국내에서는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 국가라는 쪽에만 관심을 두지만 사실 발해는 극동 지역에서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제국이었다. 그들이 당나라·일본·신라는 물론 초원 지역과도 적극적인 교류를 했기 때문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8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러시아과학원 극동지부와 공동으로 연차 발굴 중인 러시아 연해주 콕샤롭카 발해 유적에서 위구르 토기가 발견된 것도 발해가 몽골의 위구르제국과 교류했다는 증거다. 강 교수는 "발해에서는 출토된 적 없는 기대(器臺·그릇 받침)가 콕샤롭카에서 처음으로 대량 출토됐는데, 이런 형태의 기대는 당나라의 북방 이민족이 많은 내몽고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 주로 발견된다"며 "이 지역의 발해인들이 당나라 북방의 주민들과 교류했으며 다양한 집단의 이민으로 구성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강 교수는 "콕샤롭카는 발해가 동북지역으로 확장하는 가운데 만든 성(城)으로 모피, 인삼 등 산악 지역의 산물을 채취해 주변과 거래하는 곳이었다"고 했다. 발해는 유라시아 초원과의 교역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북쪽으로 진출했다는 것이다. 니콜라예프카 성터에서는 2013년 뼈로 만든 인삼 채취 도구가 출토됐다. 강 교수는 "인삼은 발해가 주변 나라와 교역할 때 가장 선호했던 물품이었고 일본에까지 전파됐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