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뉴스&아츠앤컬쳐 문화기획] 작품 수가 너무 많아 일주일 내내 관람한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작품 감상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는 루브르 박물관(Musee du Louvre)에는 전시작품의 다섯 배가 넘는 작품들이 전시공간을 찾지 못해 창고에 잠들어 있다고 한다.
궁전으로 쓰이던 루브르가 최초로 박물관이 된 것은, 1793년 파리 생활에 싫증이 난 루이 16세가 베르사유에 화려한 궁전을 짓고 거처를 옮긴 뒤였다.
초기에는 왕실이 수집한 각종 미술품을 보관, 전시하는 소극적 의미로서의 미술 전시관이었으나 나폴레옹 집권 후 수없이 많은 예술품의 약탈 등으로 대규모 박물관으로서의 루브르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약탈했던 문화재 대부분이 창고에 보관되어 있지만 프랑스 작가나 프랑스에서 활동한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부지런히 구입한 성의를 보인 덕에 심한 비난을 살짝 모면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풍요로운 예술 작품은 대부분 나폴레옹 시대 점령지에서 약탈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약탈자는 탐욕스러운 장군이 아닌 호기심으로 가득 찬 영민한 한 사람이었다. 바로 제1 제정 시대에 지금의 루브르 박물관을 설립한 도미니크 비방 드농(Dominique Vivant Denon, 1747~1825) 남작이다.
나폴레옹 군대를 따라다니며 예술품을 긁어모았던 이 남자는 당연히 그의 행위를 ‘약탈’이 아닌 ‘수집’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드농의 약탈행위는 루브르 박물관의 확대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1804년 나폴레옹에게 루브르 박물관 관장으로 임명받아 1815년까지 재직했다.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스페인·폴란드를 원정할 때 박물관장 자격으로 따라가, 정복한 여러 나라에서 어떤 예술품을 약탈해 올 것인가를 조언하기도 했고, 나폴레옹이 점령한 나라에서 직접 그림과 조각을 약탈했다.
그의 수집품 가운데는 파라클레에 있는 묘지에서 가져온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뼛조각, 몰리에르와 라퐁텐의 뼛조각,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수염 일부 등이 있었다.
루브르의 작품 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은 그의 노력 덕분이다. 그는 이 귀한 유물을 모아 루브르 박물관을 만들었고 루브르는 예술에 대한 식견을 가진 방문객이 몰려드는 명소가 됐다.
프랑스가 1816년 강화도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한 것도 전혀 우연이 아니다. 나폴레옹 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질적인 문화재 약탈 전통 때문이다.
그런데 약탈문화재는 환수하지는 못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법률에 따르면 문화재가 약탈당하더라도 소유권이 이전되는 것은 아니다. 즉, 외규장각도서의 경우에도 원래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소유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소유이지만 프랑스에 있는 것뿐이다.
즉, 우리나라에서 소유권자에게 당연히 반환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논리로 반환을 요청하면 쉽게 해결될 것도 같다.
그러나 프랑스는 프랑스 문화재법 상 외규장각 도서는 공공재산으로 분류되어 양도가 불가능하며, 국보급 문화재의 해외 대여, 전시 등 유출 행위도 한시적으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즉, 문화재 반환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서로 각자의 국내 법률에 따라 주장을 하게 되면, 한국과 프랑스의 국내법 간에 충돌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한 어느 민간단체에서 국내법상의 소유권 문제로 접근하여 프랑스 법원에 소를 제기하기도 하였으나, 프랑스 법원은 문화재의 한시적인 해외반출만을 허가하는 자국법에 따라 이를 기각하여 대립이 지속되기도 하였다.
이는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그래서 대부분 국제적으로 문화재 반환 문제는 소유권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해당 문화재의 물리적 반환(physical return) 차원에서 논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외규장각 도서의 경우, 1993년에 한불정상회담을 통해 "교류와 대여원칙"에 따라 해결하기로 합의하였으며 소유권 문제보다는 외규장각 도서의 물리적 반환 차원에서 합의한 것이다.
즉, 프랑스는 한시적 대여는 자국법으로 가능하므로 외규장각 도서를 대한민국에 한시적 대여 형태로 반출하되 한시적 대여를 지속적으로 갱신하는 방법을 활용하고(합의사항에 따르면 갱신횟수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갱신을 무한히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어쨌든 소유권자인 우리?라가 외규장각 도서를 보관할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런 복잡한 법적 논리로 간신히 문제를 해결하게 만든 장본인인 드농은 오늘날에도 루브르 박물관 입구에서 만날 수 있다.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실은 드농 관, 리슐리외 관, 쉴리 관의 세 전시관으로 구분되어 전시되기 때문이다. 초대 박물관장이기도 했던 드농의 공적을 기려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도 드농관까지 이름을 붙여주기는 했지만 실제 공개적으로 그를 기리거나 그에 대한 행적을 교육하지 않는다고 한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가 ‘프랑스 사람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지적한, 역사 속의 한 사람이 바로 드농이다.
그는 유례가 없는 악랄한 문화재 약탈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이 버젓이 붙어 있으면서도 또 그가 누군지 모른다는 프랑스의 상황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재훈/ 문화칼럼니스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변호사 변리사
출처:데이터뉴스
http://www.datanews.co.kr/site/datanews/DTWork.asp?aID=201505102051007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