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파인더 이기순 기자] 겨울바다의 싸늘한 바람은 한편으론 가슴 후련한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겨울 추위에도 겨울바다를 동경하며 나름의 낭만을 찾는 게 아닐까? 

애초에 바다가 목적지가 아니었다. 강원도 여행길의 동선상 잠시 들렀다 가도 좋겠다 싶어 도착한 곳이 낙산해수욕장이다. 계획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당면했을 때 예상치 않은 만족감을 얻는 기쁨은 처음부터 그곳을 기대하고 왔던 곳에서 받는 만족의 두 세배는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낙산해수욕장이 그랬다. 푸른 바다의 배경이 되어준 낮게 깔린 구름이 인적 드문 겨울바다의 묵직한 고요함에 일조를 한다.

태어나 처음 보는 바다도 아니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동해바다, 서해바다, 남해바다 등 수없이 다양한 모습을 바다를 대하게 되지만 참 단조로운 것 같으면서도 참 다양한 느낌을 주는 곳이 바다인 것 같다. 한여름 휴가철이면 파도가 밀고 온 포말이 모래사장에 하얗게 부서지면서 밀려온 고운 자취를 음미해 볼 틈도 없이 더위를 피해 바닷가로 피서 온 행락인파로 그야말로 발 딪을 틈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한 숨막히는 모습이라면 겨울바다는 가슴속에 쌓인 무언가를 파도가 저 멀리 싹 쓸고 가버리는 듯한 후련함을 준다. 이래서 사람들은 겨울바다, 겨울바다 노래를 부르며 겨울바다를 동경하나 보다.

낙산해수욕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경, 잠시 파도의 물거품이 남기고 간 바닷가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낙산사 쪽으로 향하다 보니 어느덧 겨울 바닷가는 노을 빛이 물들기 시작한다. 모래사장을 걸어 연결된 낙산사 후문에 도착하여 거금 3,000원의 문화재 관람료를 내고 낙산사 경내를 둘러본다. 낙산사쪽으로 여행을 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2005년 4월 산불로 낙산사 전 가람이 소실된 후 수년에 걸쳐 다시 중창 복원된 낙산사 경내를 입장료를 내고 제대로 둘러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행 방향을 질서 있게 안내하는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저물어가는 태양은 절벽 위의 소나무와 의상대를 실루엣으로 그려내기 시작하며 노을 빛을 배경으로 깔고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한 폭의 신비한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낙산사에서 표를 끊고 들어오면 화살표 진행방향대로 걷다 보면 낙산사 경내의 중요한 사적이나 보물들을 포함하여 경내 사찰도량들을 놓치는 것 없이 빠짐없이 다 둘러볼 수 있게 되어있다. 경내를 화살표 방향으로 걷다보니 마치 둘레길을 걷고 있는듯한 느낌이들 정도의 그 규모도 풍광도 대단한 곳이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대웅전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도량들이 어느 정도 규모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과는 달리 낙산사이 위치한 오봉산 자락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사찰이란 느낌이 든다.

또한 낙산 하면 떠오르는 대표이미지인 해수관음상을 배경으로 노을 지는 풍경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검고 무겁게 내려앉는 하늘과 어둠이 내려앉는 지상을 가르고 신비한 황금빛 환희의 세상을 열어주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 순간의 내 느낌은 그랬다.개인적으로 낙산사 경내를 둘러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홍련암과 해수관음상과 관음전 그리고 원통보전이었다. 그 중 법당 바닥에 네모난 작은 유리창을 통해 홍련암이 위치한 절벽아래 동굴로 바닷물이 파도 치며 밀려들었다 나갔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홍련암은 서해 석모도의 보리암과,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 중 하나라고 한다. 관음성지란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한다는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곳을 말한다고 하며 대부분의 관음성지는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해수관음상을 지나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원통보전에 이르는데 도량이나 지붕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담과 마당까지 마치 중국무협영화의 촬영지가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해수관음상이 마주하고 있는 곳은 해수관음전이다. 해수관음전 법당에는 불상이 없다. 대신 불상이 위치할 곳의 창을 통해서 이 해수관음상의 모습을 보면서 기도하고 수행하는 형태로 되어있는데 비슷한 형태로 문경의 윤필암이 법당의 창을 통해서 멀리 반대편 산자락에 보살상을 닮은 바위를 보고 기도하고 수행하는 형태로 되어있던 게 기억난다.

참고로, 유명 관광지의 문화재급 유적지라면 그저 의례히 내야 하는 돈이란 생각에 돈이 아깝단 생각이 들정도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은 곳이 대부분인데 많은 관람객의 붐비는 동선을 얽히지 않게 배려해 사찰 경내 구석구석을 제대로 둘러볼 수 있게 신경써 잘 다듬어 놓은 낙산사의 문화재 관람료 3,000원은 전혀 돈이 아깝지 않았다.단어 자체로도 낭만인 겨울바다, 그리고 석양이 너무나 아름답게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낙산사의 의상대와 해수관음상을 비롯 둘레길을 걸으면 저절로 몸과 마음을 힐링 되는 곳, 바로 낙산사였다.

별다른 계획 없이 그냥 지나다 불쑥 들러본 낙산해변의 가슴 확 트이는 겨울바다 풍경과 낙산사의 노을은 덤으로 얹은 선물 같은 여행의 즐거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