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대제는 땅과 곡식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사(社)는 땅의 신을, 직(稷)은 곡식의 신을 의미한다. 사직에 관한 옛 제도는 『주례(周禮)』와 『예기(禮記)』에 보인다. <춘관종백(春官宗伯)>에는 ‘우사직 좌종묘(右社稷左宗廟)’라 하고, <제의(祭儀)>에는 ‘좌묘우사(左廟右社)’라 하여, 제왕이 도성을 건설할 때 궁궐 왼쪽엔 종묘를, 오른쪽엔 사직단을 세웠다. 이러한 제도는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태조 이성계(1335~1408)는 정궁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우에 종묘와 사직을 세우고, 음력 2월 중춘(仲春)과 음력 8월 중추(仲秋), 동지(冬至) 뒤의 셋째 술일(戌日)인 납일(臘日)에, 사신(社神)과 직신(稷神)을 정위(正位)로 하고, 후토(后土)와 후직(后稷)을 배향 신으로 삼아 대향사(大享祀)를 올렸다. 이외에도 정월의 기곡제(祈穀祭), 가뭄 때의 기우제(祈雨祭) 등 때때마다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정성껏 지냈다.

사직대제의 의미와 보존 가치

유교적 제례문화의 소중한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사직대제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역사적으로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의의를 전하고 있는데, 첫째는 농업의 중요성과 농업가치의 재발견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농업을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으로 여겼다. 하지만 먹거리는 늘 부족하고 허기진 배를 움켜줄 수밖에 없었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정조 임금께 드리는 『농책(農策)』에서, “대저 농(農)이란 천하의 가장 큰 근본으로써 때(天時)와 땅(地利)과 사람(人和)의 화합을 기해야 그 힘이 온전하게 되고, 심고 기르는 것이 왕성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낳는 것은 하늘이고, 기르는 것은 땅이며, 키우는 것은 사람이다. 이 3재(三才)의 도(道)가 하나로 모인 다음에야 농사일과 나랏일에 모자람이 없게 된다”고 했다.

다산의 말처럼 농사일은 땅의 힘만으로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늘에서 제때에 비와 바람과 햇볕을 고루 내리 쫴줘야 하고, 여기에 사람의 노력이 없이는 결코 한줌의 곡식도 내어 줄 수 없다는 대자연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농사일을 천직으로 아는 농군들은 자연과 소통하고 타협할 줄 안다. 하늘신과 사직신이 내어주는 만큼 감사할 줄 알고 만족해하며 올해 부족하면 다음해를 기약하는 겸양과 검소의 미덕을 농심으로 여기며 산다.

둘째는 스스로 몸가짐을 바르게하고 경계하는 일이다. 그 옛날 탕(湯) 임금은 칠년대한(七年大旱)을 만나 스스로 자기 몸을 희생으로 삼아 상림(桑林)의 들에서 기우제를 지낼 적에 여섯 가지 일을 들어 자신을 책망했다. 예컨대 ① “정사가 절도를 잃었는가 ② 백성이 직업을 잃었는가 ③ 궁실이 높은가 ④ 부녀자의 청탁이 성한가 ⑤ 뇌물이 행해지는가 ⑥ 아첨하는 무리가 많은가[政不節歟 民失職歟 宮室崇歟 女謁盛歟 苞苴行歟 讒夫昌歟]”라고 하자,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 천리 지방에 큰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는 스스로 되돌아보는 자기반성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시사하는 사직대제의 또 다른 의의이다. 따라서 나라의 안위(安危)를 맡은 중신(重臣)을 가리켜 사직지신(社稷之臣)이라 했듯이, 사직대제를 받드는 내면에는 무엇보다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의를 받드는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자기 자신을 바르게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는 자연에 감사하고 순응하며 진실해야 한다. 사직대제는 봄에 파종해 그것이 무사하게 성장이 잘 되기를 빌고, 가을에는 곡물이 자라나 많은 수확을 거둬 이를 감사하는 제사이다.

우리말에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무더운 여름 내내 간난 아이 돌보듯 곡식과 씨름하는 자만이 알찬 결과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가을은 인간이 노력한 만큼 거두고 보상 받는다는 진리를 가르쳐 준다. 뿐만 아니라, 진실한 삶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땅은 속이지 않는다’는 옛말을 철떡 같이 믿고, 눈속임 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법칙을 터득했는지 모른다.

글 김세종(동국대학교 겸임교수)